말은 함께였지만, 모든 문서는 내이름으로
나는 소박한 가정을 꿈꿨다. 국 한 그릇을 나눠 먹으면서도 웃을 수 있는, 부족해도 마음만은 따뜻한 그런 하루하루를 바랐다. 가족이라는 건, 서로를 향한 마음만 있다면 어떤 환경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 부부가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면, 천천히라도 함께 걸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그는 늘 말했다. “이대로는 안 돼. 더 벌어야지.” 나는 지금도 괜찮다고 느꼈지만, 남편은 언제나 더 큰 무언가를 바라봤다. 그 성급함이 벅차기도 했지만, 나는 남편을 믿어보기로 했다. 가정을 위해 애쓰는 그의 모습이 고마웠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남편은 창업을 하겠다며 말했다. 자신만의 가게를 열겠다고. 그리고 조심스레 내게 대출을 권했다. “부부잖아. 같이 갚으면 돼. 당신 이름으로 해 줘.” 나는 망설였지만 결국 승낙했다. 우리는 부부였고, 가정을 지키고 싶었으며 남편의 꿈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었다. 대출 서류에 내 이름을 적으면서도, 나는 이 선택이 우리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랐다.
그때부터 돈이 빠르게 나가기 시작했다. 인테리어, 장비, 물품, 홍보… 필요한 건 끝없이 생겨났고, 대출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신용카드, 마이너스 통장까지 손을 댔다. 그래도 오픈 날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남편은 오랜만에 웃었고 나도 그 웃음에 잠시 안도했다. “곧 나아지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그 반짝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달이 지나자 손님은 줄어들었고 수익보다 지출이 더 많아졌다. 결국 1년도 되기 전에 가게는 문을 닫았다.
남편은 다시 직장을 구해야 했고, 나는 세 아이를 돌보며 일상을 버텼다. 가정은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그 즈음, 나는 생활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 지인의 부탁으로 소소한 일을 도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금전 사고가 생겼다. 그저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용기 내어 남편에게 말했다. “이런 일이 있었어. 정말 미안해.”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대답도 없이 돌아섰고, 그날 이후 우리는 서로에게 침묵으로 대했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피하고, 말을 아꼈다. 대화는 사라지고, 하루는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지나갔다. 남편의 꿈은 그렇게 접혔고 우리 사이에 남은 건 내 이름으로 된 빚과 깊어진 거리감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 빚을 갚고 있다. 남편은 아이들에 대한 생활비만 보내주고 있다. 책임을 나누자던 말은 사라졌고, 모든 무게가 내 이름 앞으로 쏟아졌다. 부부니까 함께라고 믿었던 그 말, 그 말 하나에 기대어 사인했던 종이들이 이제는 내 어깨를 짓누른다.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빌려준 건 ‘이름’이었을까, ‘믿음’이었을까. 그리고 지금까지 돌려받지 못한 건 무엇일까. 그 질문 앞에 서면 왠지 모르게 목이 메인다. 말할 수 없는 서러움이, 내 이름으로 적힌 고지서 사이에서 묵묵히 나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