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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여진 Apr 17. 2023

양자역학의 다정함

a.k.a 시간이 다 해결해 준다는 소리가 지겨울 때


무얼 해도 무의미하게-, 무기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요 근래 내 상태에서, 그나마 ‘에브리씽 에브리웨얼 올앳원스’(이하 ‘에에올)를 보고 그 조부 타바키의 허무주의(everything bagel)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모든 것들에서 욕심부리다 보니 체한 상황에서 멈춰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욕심을 좀 줄이고 내가 사랑하는 것을을 다시 시작하려고 했다. 불필요한 것들을 배제하고,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조금 더 우선순위에 두기로. 사회생활이든, 인간관계든 뭐든 어쨌든 간 한 번쯤은 터닝포인트가 필요한 참이었다.


그래서, 결국, 내 매번의 터닝포인트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다다랐다. 세상의 만물에 대해서 공부하고, 여러 방면에서 더 사랑스러운 내가 되는 길. 그러다 보니 다시금 양자역학으로 돌아오게 됐다. 언젠가 성인기에 힘들 때 칼 세이건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됐는데, 그 사람이 알고 있는 지식이 결국 be kind (‘에에올’에서의 핵심 교훈이랄까 뭐랄까)로 회귀되는 과정이 참 존경스러웠다. 칼 세이건뿐 아니라 스티븐 호킹**까지도. 우리나라로 치면 물리학자 김상욱이 될까. 그들이 단순이 과학뿐 아니라 철학적 관념에서도 꽤나 다정한 시선을 가진다는 게 놀라웠다. 아마 그걸 알게 된 이후부터는 문과의 머리로 양자역학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문과의 머리로는 당연히 양자역학의 개념을 요약 정리해 둔 것들로만 이해할 수밖에 없다. 세상 만물(양자)은 상호작용(관측)을 통해 존재(입자로)할 수 있다는 점(코펜하겐 해석). 수많은 우주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다세계 해석). 문과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걸 가지고 창의적인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뿐이다.


(**스티븐 호킹 관련된 나의 시선은 꽤나 편파적인데, 에디 레드메인 때문에 봤던 영화 ‘the theory of everything’에서 스티븐 호킹의 전기를 간접적으로 훔쳐보기도 했고, 스피치 도중 관객 한 명이 ‘만일 진짜 멀티버스가 있다면 자인이 원디렉션을 탈퇴하지 않은 세계도 있지 않을까’하는 질의에 꽤 유머러스 하지만 논리적인 답변을 낸 영상도 저장해두기도 했다. 이 두 가지 사례만으로도 나에게 그는 어떠한 다정한 지성인으로서 계속 존재하고 있다.)


혹, 양자역학에 대해 아예 모른다고 한다면, 그냥 다음과 같이 쉽게 이해하면 된다. 양자가 두 개의 구멍을 통과할 때, 관찰하는 사람이 있다면 입자로 1개의 구멍만 통과하여 실재하는 존재가 된다. 근데 관찰하는 사람이 없다면 파도와 같이 파동으로 두 개의 구멍을 다 통과하게 된다. 즉, 세상 만물 (양자)는 우리가 관측할 때에만 실재하게 된다. 아마 양자역학의 주요 골자일 것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과 같은 고전역학자가, 양자역학을 주창하는 보어에게 ’그렇다면 달은 우리가 관측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은 것이냐‘고 물으니, 보어가 ’그렇다’고 이야기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 코펜하겐 해석


그렇다면, 우리가 입자로 관측하지 않은 것들은 진짜로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일까? 입자로 관측되지 않은 확률, 즉 파동으로 보이지 않는 확률들이 다른 우주에서 관측되어 실재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도 양자역학의 일부이다. 이것 때문에 마블이라던지, 에에올에서 멀티버스를 이야기 하게 된다. - 다세계 해석


추가로, 양자얽힘 현상도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인데. 양자얽힘이란 양자끼리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의미하고, 이건 n광년을 떨어져 있어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양자 1,2가 있을 때, 우리가 양자 1을 관측하여 입자로 실재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 양자 2 또한 실재하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아니지, 실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자얽힘 상태를 통해 양자 1의 정보만 안다면 양자 2의 속성까지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양자의 상태(실재한다 아니다의 상태)는 물리적 속성이 아니라 정보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본다. - 정보 이론 해석


 문과가 쉽게 설명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 아래 영상 참고해도 될 것이다.

https://youtu.be/m9uGOc-gmwE

양자역학 제일 쉽게 이해하기 좋은 영상


https://youtu.be/tdw-qLKY6aI

정보 이론 해석 설명


말이 길어졌는데, 아무튼 요는 양자역학이 또 다시 나를 위로해 줬다는 말이다.


살면서 ‘시간이 다 해결해 준다’는 위로를 남에게서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서도, 그 문제의 핵에 있는 사람이 듣기에 그렇게 무책임한 말이 없다. 나는 지금 이렇게나 고군분투 하고 있는데,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을 듣는 순간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말의 동의어처럼 들려서 짜증만 난다. 그래서 나는 이걸 좀 더 양자역학적인 관점에서 풀어서 이해해보려고 했다.


정보 이론 관점을 이해하자면 양자얽힘에 의해 양자 1이 존재한다는 걸 알면 양자 2도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하니까. 즉, 우리가 이렇게 잘 짜여진 이분법의 세상 속에서 사는 게 우주의 섭리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0과 1의 이진법으로 컴퓨터 세상이 존재하는 것도. 난자와 정자로 사람이라는 dna 정보가 만들어지는 것도. 그리고 이것은 ‘시뮬레이션 우주론’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누군가 만들어 놓은 시뮬레이션 게임 속에 npc로 존재하며 살고 있다는 것. 사실 나는 믿지는 않는데, 일론 머스크는 믿고 있다고 하니 뭐.


이 ‘시뮬레이션 우주론’에서 내가 배운 중요한 가치는, 어쨌든 간에 게임이 우주의 모든 정보를 기초로 그래픽화 했다는 것에 있다. 중력이라던지, 가속도라던지. 그중에서 당연히 가시화 하는 그래픽 렌더링의 경우에도 사람의 관측 시야를 바탕으로 한다. 여기서 다양한 렌더링 기법 중 누군지 모르는 게임 개발 천재가 만들어 낸 ’레이 트레이싱 기법‘은 가히 양자역학을 그대로 읊는 듯하다.


기존 게임은 실제 이용자가 가보지 않은 맵들도 전체적으로 렌더링 하는 방법을 사용해서 꽤 로딩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 제약이 컸었는데, 이 ‘레이 트레이싱 기법’은 이용자의 시야 범위에 있는 것들만 렌더링 하여 효율적으로(고화질 등) 게임을 진행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즉, 기존에 빛(광원)이 어딘가에 부딪혀 우리 눈에 들어오는 방식을 사용해서 사물들을 전체적으로 그래픽에서 존재하게 만들었다면, 레이 트레이싱 기법은 우리의 눈을 광원이라고 보고, 역방향으로 우리 눈에서 나오는 빛이 부딪혀 사물들이 존재하게 빛의 경로를 역추적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뭐 어려운 말들은 집어치우고,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주변의 그래픽들이 존재한다는 아주 양자역학적인 방식이라는 말이다. 이분법을 통해 만들어진 기기치고는 꽤 철학적인 고찰을 하게 만들지 않는가. 아, 이분법 또한 양자역학일까. 이처럼 만물은 연결되어 있다.


결론은 이거다. 시간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 1차원적 무언가가 어떻게 해결할까. 사실 4차원을 뛰어넘는 양자역학도 무언갈 해결해 주진 않는다. 다만,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나머지 것들이 존재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우리의 모든 인연은 필연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는, 결국 죽을 때까지 모든 고난과 번뇌는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될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상호작용(관측)하는 것들이 더 많아지고 필연적인 것들이 더 부가적으로 따라오게 된다. 게임이라고 치면 퀘스트를 더 깨서 더 많은 맵들이 열리게 되는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이제 조부 투바키처럼 허무주의, 무기력함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겠지. 마치 우주 앞에 인간이 한낱 먼지 같은 존재인 걸 알게 되는 순간 지성인들이 자살을 많이 선택했다는 썰처럼.


그럼 여기서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이기적으로 내 시선에서 사랑하며 살면 된다. 모순인 거 알지만 이만큼 양자역학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싶다. 내가 존재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고 내 고난이 존재하는 거라면, 그 모든 게 나에게서 나온 내 새끼들이라고 생각하면 쉽지 않을까 한다. 인터스텔라에서 우주가 사랑으로 이루어진 거라고 주창하는 것도, 스티븐 호킹이 블랙홀에 빠졌어도 다른 우주로 빠져나오라고 말을 한 것도 사실상 이런 뉘앙스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까 만약에 나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하라고 한다면, (1)기본적으로 너를 진심으로 사랑할 사람은 너밖에 없고, (2)니 주위 세상은 너 때문에 존재하고, (3)그래서 니 주위 세상 또한 니가 사랑해야 한다, (4)즉, 니 주위 세상은 너한테 개껌일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해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논리나 이성 따위 집어치우고, 단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막 살라는 이야기는 아닌 게, 내 주위에 사랑을 베풀수록 사랑에 직결된 필연들이 또 따라오지 않겠냐는 그런 말. 카르마-화엄경 등도 어쩌면 양자역할일 수도.)


나는 블랙홀에 한참을 빠져있었다. 아니 뭐, 빠져있기를 매번 반복했다. 그러고 나서는 다행히 새로운 차원으로의 우주로 매번 도약했던 것 같다. 블랙홀 안에서의 경험들로 많이 다른 차원의 내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이건 아마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변치 않아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이들이 양자역학 때문이더라도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해서 모두가 모두에게 새로운 사랑을 베풀 수 있는 힘이 길러지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본인의 믿음이 탄탄한(양자역학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을 정도의) 지성인들을 좋아한다. 나처럼 여기에 덕지덕지 예쁜 말들을 붙여넣는 문과생이어도 말이다. 자신과 타인의 존재성(관계성)에 대한 이유를 알고 있을 것만 같고, 시간이 1차원인 것 또한 계속 인지하고 있을 것만 같다. 이러한 비약은 내가 지금까지 지켜본 물리학자들과 철학자들에 의해서 생겨난 것인데, 아마 이것 조차도 나 같은 애가 존재하니까 그런 사람들 것만 계속 지켜보게 되는 거겠지 싶다.


‘에에올’을 처음 봤을 때 이유 모르게 펑펑 울었었다. 극도의 자극이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허무주의에 빠지기 쉬운 상태이다. 그러나,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우주의 섭리로 어떻게 이 땅에 떨어져서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이기적으로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우리 때문에 파생되는 모든 것들에 be kind 해질 필요가 있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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