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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달 뮤지엄(Randall museum) 갑시다.

당신도 감사의 기도를 하고 있나요?

by 한혜령

"거기 한번 가볼래? 작은 동물원도 있고 기차 레일이 길게 있어서 아마 진우가 좋아할걸?"

"공짜야."

남편의 추천으로 소진 남매와 랜달 뮤지엄으로 향했다. 진우는 기차가 있다는 말에 신이 났고 소윤이는 작은 동물원이 있다는 말에 흥분했고 난 공짜라는 말에 만족했다. 지난주 갔던 돌로레스 파크에서 차로 십 분 정도 서쪽으로 이동하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돌로레스 파크부터 시작해 샌프란시스코의 한 구역 한 구역을 소싯적 땅따먹기 하듯 여행 해볼 요량이다. 뮤지엄으로 가는 길 역시 '언덕의 도시 샌프란시스코'를 떠올리게 했다. 엑셀레이터를 깊숙이 밟아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



한참을 빙글 뱅글 돌고 돌아 언덕 중간 즈음에 자리한 랜달 뮤지엄에 도착했다. 산 중간쯤에 있어서 등산하는 사람들이 머리 위로 가까이 보였다.

'저기서 내 휑한 가르마까지 보이진 않겠지?'


우리 엄마 가르마만 휑한 줄 알았다. 머리숱이 없어서 고민하는 사람이 내가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어느새 내 정수리엔 눈 덮인 8차선 고속도로가 생겼다. 나이가 들어가는 건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니 눈 언저리에, 입 언저리에 그려지는 주름들이 서글프진 않다. 살아온 세월을 다 드러내는 얼굴에 이왕 생길 거 주름이라도 이뻐보이려고 눈을 반달로 해보고 입꼬리를 올려가며 노력할 뿐이다. 허나 머리칼은 얘기가 다르다. 나만 유독 많이 빠지고 하얗게 샜다. 세월의 부침을 남들보다 많이 겪는 것처럼. 설사 그렇다 해도 하얗게 샌 머리칼로 광고하는 것 같아 언젠가부터 머리를 숙이는 일에 신경이 쓰인다.


남들보다 생체시계가 빠르게 돌아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진다. 그래서 지금 이 여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진우야 인상 좀 펴라.


샌프란시스코의 멋진 전경이 펼쳐진다


미국에서 걸스카우트를 처음으로 조직한 랜달의 노력으로 1951년 문을 연 뮤지엄이 시초로 자연사박물관, 과학박물관 및 예술센터가 어우러진 주니어 뮤지엄이다. 2017년 리모델링이 되어서 실내뿐만 아니라 실외까지 깔끔한 인상을 준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주말엔 아이들을 위한 수업이 열리고 있어 아이들과 오기에 더없이 좋다.

하지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도네이션 통이 딱 있다는 것. 1인당 1불이라고 눈에 잘 보이게 붙어 있다는 것. 내야 한다. 입장료는 아니지만 입장료 같은 도네이션을. 각자의 양심에 따라.



들어가서 바로 보이는 작은 동물원에는 너구리, 거북이, 오리우리, 새, 뱀과 도마뱀 등 약간의 파충류, 그리고 물고기가 있었다. 소진 남매와 한 바퀴 천천히 둘러보는데 10~20분 정도 걸리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구경이 싱겁지는 않았다.



덩치가 제법 큰 너구리가 푹 퍼진 채 유리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귀찮다는 듯이 사람이 와도 어색해하지 않는 너구리가 놀라우면서고 안쓰러웠다. 사람 좋아하는 개들도 한평 남짓 허용된 유리 우리에 갇혀있다면 저런 표정이 나오지 않을까. 동물원은 안 가는 게 맞다. 거지한테 돈 주면 거지 생활 못 벗어나듯이 동물원도 우리가 계속 가면 없어지지 않는다. 다 같은 동물 주제에 누가 누굴 구경한다고.



동물원을 한 바퀴 휙 돌고 나와 기차가 있는 지하로 향했다.

"와! 엄마! 칙칙폭폭!"

진우가 진짜 기차라도 타러 가는 것처럼 온 얼굴에 생기가 가득이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자세히 보면 그 디테일이 허접하진 않았다. 진우는 기차를 따라 연방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한참을 놀았다.




"자 이제 다른데도 가보자."

소윤이가 5분도 안돼서 다른 곳도 보자며 내 옆구리를 쿡쿡 쑤신다.




아이들에게 친숙한 레고를 이용해 지진을 설명하는 곳이다.


위에 걸린 티브이에서 빨간색 점이 촘촘히 찍혀 있는 일본과 그래도 점 없이 깨끗한 한국 지도가 한 화면에 보이고 있었다. 우리나라를 랜달 뮤지엄에서 보게 돼서 반가웠고 우리는 깨끗한 나라임에 흐뭇했고 지진이 많이 나는 나라와 같이 비치고 있는 현실에 마음이 불편했다.



Koreas 는 뭘까?


나도 미국에 와서 지진을 겪었다. 한밤 중에 머리맡 바깥쪽에서 커다란 굉음이 '쿵'나더니 침대를 누가 이리저리 흔들었다. 놀라 잠에서 깨서 무슨 일인지 알아차리기까지는 몇 초의 시간이 걸렸다.

'이게 뭐지? 아! 지진이 이런 거구나.'

그 날 지진의 두려움에 잠을 더 이상 자지 못했다. 그 후로도 그 느낌이 두려워 지진 비상 가방을 검색해보고 혹시나 지진이 왔을 때 떨어져서 깨질 만한 것들이 있는지 살폈다. 침대 밑 서랍장에 비상 신발을 챙겨둔 것도 그때부터였다. 살짝 흔들렸을 뿐인데도 이런 공포가 밀려오는데 심한 지진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을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다.


내가 있는 캘리포니아주는 안드레아스 지진대가 지나고 있는 불의 고리의 지역이다. 100년이니 50년이니 주기설을 토대로 올 해냐 내년이냐 말이 많다. 자연 앞에서 작은 티끌 같은 인간이 자연재해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나이를 먹는 것처럼 사람의 죽고 사는 것도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한다 한들 자연재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그저 주어진 하루를 감사히 살고 하루하루 눈뜰수 있는 은혜에 감사하다는 기도를 하는 것밖에는.


'오늘 하루도 이 세상에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순조롭게 뮤지엄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태평양의 매몰찬 바다 바람이 사정없이 불어대고 있었다. 언덕 꼭대기에서 무방비로 바람을 맞으니 몸이 휘청거렸다. 눈 코 입으로 들이닥치는 바람에 눈물 콧물 침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소진 남매는 가만히 서 있는 것도 위태로워 보였다.

경치 구경은 차치하고 안전을 위해 차에서 피크닉을 하기로 했다. 차 트렁크에서 하는 피크닉은 그 나름의 멋이 있다. 좁고 궁상맞아 보일 수 있지만 해 본 사람은 안다. 그 맛을. 언젠가 정말 조그만 캠핑카를 사서 미국 일주를 해보고 싶다. 소진 남매는 차 안에서 캠핑(?)하는 것이 좋다고 들떴다.

"다음엔 차에서 잠도 자볼까?"

"아니"

그래. 아직 차에서 자는 건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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