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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갤럭시맘 Oct 22. 2020

아이 자존감보다 더 중요한 것


 아시아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

 영화 속 등장인물 기우와 기정 두 남매는 일을 꾸민다. 오빠인 기우가 부잣집 과외 쌤으로 잘 들어가도록 기정은 오빠에게 연세대학교 재학증명서를 위조해준다. 과외 면접을 보러 가던 기우는 말한다.

 "저는 이게 위조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 내년에 이 대학 꼭 갈거거든요."

 그렇게 한 순간에 연세대생 기우와 미국 시카고대 미술치료사 제시카가 탄생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우와! 기발한데! 창조경제를 펼치는 녀석들인데‘ 하면서 칭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보면 무척이나 더 씁쓸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양극화가 심해진 세상이구나. 그런데 뭔가 분명 사회구조적으로 잘못된 것도 맞는데 그렇다고 모두가 이런 식으로 살지는 않기에 알 수 없는 양심의 찔림도 받아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무엇보다 더 슬픈 예감이 드는건 왜 일까?

 앞으로 영화 속 이런 일이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을거 같아서다.





 세계적인 석학이자 존경받는 지성인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는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테러, 실업, 환경오염, 빈부격차 등의 문제로 지독하게 끔찍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래서 그 어느 것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건강한 자존감을 물려줘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재정적인 것보다도, 법 보다도, 복지보다도, 보안보다도 바로 자존감을 위대한 유산으로 증여하라고 호소한다.



자존감이 있으면 내면의 힘을 발견할 수 있고
 통찰력과 내면을 성찰하는 능력 공명정대함과 용기가 생긴다.
극단적인 낙관주의나 비관주의 없이 불확실한 인생을 있는 그대로 직면할 수 있다.

자크 아탈리, [언제나 당신이 옳다] 중에서

 그런데 이 자존감은  아이에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먼저는 부모부터 시작이다.

 강의와 컨설팅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이 자존감이 굉장히 쉬운 거 같지만 실제로는  정말 갖추고 지키고 키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왜냐면 자존감은 어떤 지식의 영역 교과목 이런게 아니라서 그렇다. 전인격적인 생활이고 삶의 영역이라 평소에 인식하고 훈련이 필요하다. 요즘 자존감 모르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내 아이의 자존감 어떻게 키워줘야는지도 정말 많이 다루고 있다. 그런데 먼저는 부모의 자존감이 더 중요하다.

왜 부모의 자존감이 더 중요하고 먼저일까?


 자녀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간다고 한 번 상상 해보자. 심각한 터뷸런스를 만나서 위급한 상황이이다. 이때 천장에서 산소호흡마스크가 내려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부터 살린다고 아이부터 마스크를 채우면 큰일이다. 그러면 둘 다 죽을수도 있자 실제로 비행기 위급상황시 주의 사항은 보호자부터 이 마스크를 쓰라고 나온다. 그래야 둘 다 사니까.

 이처럼 자존감의 우선순위는 부모 먼저다. 사실 비유보다 우리의 현실이 더 호흡곤란을 일으킬만큼 괴롭지 않나? 아무리 내 아이 자존감 높인다고 여기 저기 보내지만 정작 집에 와서 부모의 낮은 자존감에 물들고 압도당한다면 다 소용이 없다.




 특히 요즘같이 살기 힘든 세상,  ‘헬조선’에서 더 중요한 게 바로 이 자존감이다.

 요즘 부모들은  자존감에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서 너덜너덜해질정도다.

 직장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힘들고 팍팍한데 또 죽어라 열심히 일해도 집하나 못 산다.

 초등학생들이 말하는 ‘ 빌거지, 전거지, 엘사(LH임대아파트 사는 아이들의 줄임말)’ 이런 말들 들으면 더 힘이 빠진다. 여기저기서 보면 금수저 집안 아이들은 이런저런 기회와 혜택을 누려서 승승장구 하는거 같은데 난 내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상대적 박탈감과 무기력에 압도 당해 질식사 할 것도 같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을 더 채찍찔한다.

 

“내가 더 잘해야지. 더 잘 벌어야지."

 그러면서 슈퍼맘 슈퍼 대디가 되고자 노~오력 한다.


 문제는 또 시작되다.

이렇게 나는 죽어라 뼈빠지게 고생하는데 집에 오면 애는 공부는 지지리도 않고 스마트폰만 보며 뒹굴뒹굴한다.

 이런저런 잔소리를 해도 아주 징글징글하게 말을 안듣는다.

나는 정말 많은 것을 해주는데 잘되라고 퍼 붓는데 소용이 없으니까.

속상하다.

그리고 불안해진다.


 “저 놈이 진짜 인서울 대학이라도 가야는데.

 이 험한 세상  지 앞가림하고 밥이나 벌어먹고 살 수 있으려나?"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이 큰데 이또한 부모 마음처럼 쉽지 않으니

 상담중에 우는 엄마, 속상해서 한 숨 푹푹 내쉬는 아빠가 정말 많다.

 “아  애 한테 미안하네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제대로 잘 교육할지..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부모가 자존감을 건강하게 지키지 않으면 더 불안함과 무기력으로 아이를 채찍질하게 되어 상황은 복잡해진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가치를 실감 못하는 부모자존감.

내 아이에게만 있으면 되지 하면서 아이의 자존감 챙기기는 지극 정성인데

 정작 부모 자존감은 바닥인 경우가 많다.

 왜냐면 난 학원도 몇 백씩 들여서 보내고 이것저것 뒷바라지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의 인생은 꽃 길만 펼쳐진 것이 아니라 자갈길도 펼쳐지고 사막길도 펼쳐진다.


그래서 현명한 부모는 먼저는 어떤 길을 만나든 잘 통과하도록 자존감이라는 연료를 빵빵하게 채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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