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열 번째 글은 남편에 대한 얘기를 풀어보려 했는데 좋은 쪽으로도 또 아닌 쪽으로도 할 말이 많아져 도통 정리가 되지 않았다. 복잡한 걸 정리할 힘이 없으니 미뤄두고(언젠간 꼭 하리라...) 요즘 아기를 키우며 느끼는 단상들을 남겨보고자 한다. 그간은 힘들었던 것들을 토로했다면 이제는 순간순간 소중히 품은 감정들과 떠오르는 생각들을 짧게나마 기록해보려 한다.
세계의 무게
나의 세계는 지금 아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기가 웃으면 스르르 녹고 아기가 울면 온갖 걱정이 휘몰아친다. 일희일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초보인지라 쉽지가 않다. 뭇 아이돌 가수의 노래처럼 아기는 나의 지배자, 나는 아기의 노예가 된 지 오래다. 오늘도 웃음 한 번 보려고 결리는 팔에 힘을 준 채 아기를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작았던 나의 세계가 어느덧 꽤나 묵직해졌다. 사람마다 짊어진 무게가 있을 텐데 내 세계의 무게는 8.7 킬로그램이다. 작지만 강하다.
아기의 체온
아기의 체온에는 중독성이 있다. 어른보다는 기초체온이 높아 뜨끈하고 덥다 싶다가도 말캉거리는 감촉이 더해진 따뜻함에 그리워 자꾸 끌어안아 볼을 비비게 된다. 아기는 엄마의 마음은 모른 채 그저 간지러운지 까르르 소리를 낸다. 귀여운 소리를 더 듣고 싶어 부드러운 몸 이곳저곳에 얼굴을 문지르다 보면 아기의 손아귀에 내 머리카락이 한 움큼 잡혀있는 걸 깨닫는다. 신난 손이 거친 머리카락을 잡아 뜯어낸다. 엄마, 아파.
범퍼침대와 나이
아기가 뒤집기 달인이 되었다.(근데 왜 되집기 달인은 될 생각이 없니...?) 더 이상 신생아용 침대를 못 쓸 것 같아 고민하다 범퍼침대를 들였다. 안전이 최고라 바닥에 붙여서 쓸 수 있고 푹신하지 않은 것을 골랐다.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는 없지만 곁에 누워 토닥일 수 있어 좋았다. 다만 너무 단단하여 오래 누워있기가 힘들다. 아기 몸처럼 말캉하면 단단한 곳에서도 잘 잘 수 있는 것인가. 단단함이 사라진 나이 든 몸에는 푹신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잠든 아기 곁을 몰래 빠져나온다. 살금살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