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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곰 Oct 07. 2019

잔망스런 이야기 21 ​

어떤 풍경

병원 안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검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가에 있는 긴 테이블이었는데, 저 끝에서 누군가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유, 정말 힘들겠다. 내가 아는 사람도 가족이 그런데 꼼짝을 못 하고 매달려 있더라고”    


돌아보니 테이블 저 끝에 앉은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아주머니가, 내 옆에 앉은 아이와 아이 엄마에게 한 소리였다. 아이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움직임에도 제약이 있어 보였다. 아이 엄마는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떠먹여 주고 있었다.     


“어쩌겠어요, 내가 이렇게 낳아줬는데, 내가 책임져야지”    


아이 엄마는 아이스크림이 묻은 아이 입을 닦아주면서 변명 같은 말을 했다. 남녀 쌍둥이를 낳았는데 오빠는 건강한데, 여동생만 아프다면서. 그 후에도 안대 아주머니는 뭐라고 뭐라고 했다. 아이 엄마의 안 좋은 얼굴도, 쏘아보는 내 눈빛도 소용없었다.    




그 아주머니는 도대체 그런 얘기를 왜 하는 것일까. 혹시 ‘위로’라고 하는 걸까.

장애를 가진 당신 자식 때문에 당신이 고생이 많아요라고 하면 부모에게 위로가 되나. 아님, 장애를 가진 그 아이는 못 알아듣고, 말도 못 하니까, 다 알아듣고 말할 수 있는 엄마 위주로 말이라도 그리 해 준다는 것인가. 그냥 그런저런 생각 없이 사람들 그런 말 잘하지 않느냐. 그래서 나도 한 거다 그러면... 그러려니 해야 하나    


인사를 하며 엄마가 주는 아이스크림을 받아먹는 아이를 봤다. 찰랑이는 단발머리에 귀여운 친구였다. 오동통 발그레한 볼이 예뻤다. 그 안대 아주머니의 말 한마디에 이 모녀는 순식간에 가엽고 민폐인 존재가 돼 버렸다. 아픈 몸 안에 갇혀있는 저 아이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처음 본 나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날마다 아이를 돌보는 엄마는 얼마나 더 많은 생각과 대화를 할까. 남들은 생각지도 못한 많은 감정들과 이야기들이 두 사람 사이를 흐르고 있을 것이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가족이란 관계로... 힘들고 아픈 것을, 그것이 아니라고 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너무도 쉽게 너무도 함부로 관계를 규정짓고, 짐작하고, 뱉어낸 말들이 너무 무책임하다는 거다. 왜 그 아이 엄마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색한 웃음을 지어야 하나, 왜 그 아이는 공개적으로 엄마를 아니, 가족 전체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나. 심지어 그 아주머니는 아이와 엄마를 가까이에서 본 것도 아니고 저만치 테이블 끝에 앉아 마치 관객이나 되는 듯이,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었다. 자기는 아니라고 여기는 걸까, 예외라고? 이 세상 사람들 중 예외인 사람이 진짜 있다고 믿는 걸까  


최소한, 남을 위로한다면서 자신이 위로받은 건 아니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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