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막곰 Oct 24. 2019

잔망스런 이야기 24

꽃길

아빠 기일엔 꽃을 들고 간다. 꽃다발을 만들거나, 꽃바구니를 만든다. 따로 배운 적 없는 어설픈 솜씨지만 인터넷 동영상을 보고 흉내를 낸다. 꽃다발보다는 꽃바구니가 근본 없는 도전자에겐 나은 듯하다.    


아빠가 짧은 투병 끝에 돌아가시고, 기일이 다가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음식 준비도 엄마랑 새언니들, 언니들이 있어 내가 낄 필요가 없다. 조카들이랑 다를 바가 없다. 아빠가 살아계실 때 나를 ‘공 것’ (공짜, 열 외 등의 의미)이라고 부르셨는데, 딱 맞는 얘기다. 아빠가 병원에 계실 때도 엄마랑 오빠들이 돌아가며 곁을 지켜 난 말 그대로 ‘공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꽃이다. 엄마도 꽃을 좋아하시니, 예쁜 꽃은 엄마가 보시고, 그 향기는 아빠에게 갈 수 있다면 좋겠다 여겼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난 이승과 저승을 체감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였지만, 사랑하는 아빠는 저승으로 가셔도 뭔가 교감이 있을 거라 여겼다. 어쩌면 다시 오실 수도 있다고 정말 믿었다. 가까운 주변 지인들에게도 아빠가 돌아가셨단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끝이었다. 아무리 사랑해도 엄연히 다른 두 세계를 넘나들 수는 없었다.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것이 내 인생 최고의 꿀보직이라 여겼는데, 반대급부를 생각 못 했다. 막내는 부모님과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제일 짧은 자리이기도 했다. 아빠가 누워계시는 어두운 산을 보면서, 이젠 칠흑 같은 어둠 속 산도, 알 수 없는 저승도 무섭지가 않았다. 내가 아는, 나를 가장 사랑해 주는 한 사람이 거기 있다는 걸 아는데 무서울 이유가 없었다. 


단지,  일상이 힘겹고 햇살이 꼴 보기 싫어졌다. 누가 그랬던가. 죽음은 남은 자들의 몫이라고... 하필 아빠는 햇살도 찬란한 가을에 떠나가셨다. 네거리 교차로에서 무심히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의 물결에 대고 소리치고 싶어 진다.     


‘당신들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어...’     


아빠가 돌아가셨단 소식을 뒤늦게 들은 분들이 집엘 찾아오셨다. 그중엔 여전히 아빠를 ‘오빠’라고 부르는 분이 계셨다. 부모 없이 남매가 단둘이 살았는데, 아빠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아까워서 어찌 묻었느냐’며 우셨다. 아빠 없이 큰, 아빠라 그 마음을 아셨을 거다. 아빠 친구 분들이 엄마를 모시고 점심을 드시러 가시기도 하고, 집에 막걸리를 사들고 오시기도 했다. 덕분에 나도 처음으로 아빠 친구 분들과 막걸리 대작을 하기도 했다. 


살아생전 아빠가 유일하게 화를 내시는 경우는, 주무시는데 시끄럽게 떠드는 경우였다. 시간이 지나니 그런 생각이 든다. 이제 그만, 이쪽 일들은 다 잊고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고. 다른 생을 살고 계신다면 더욱 좋겠다. 다시 오시길, 잊지 않길 바랐지만... 그건 아니다. 세월은 무심히 흘러도, 사는 건 번뇌요, 번잡하다. 이젠 알겠다.    

아빠 덕분에, 이번 달도 난 꽃(을 사러 가는) 길을 걷는다.        

작가의 이전글 잔망스런 이야기 23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