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길, #9 수크레를 거쳐 코파카바나로 향하여
어둑해진 저녁 8시, 우유니에서 수크레로 향하는 야간 버스는 출발했다. 원래 계획은 라파즈까지 버스를 타고 올라가면서 포토시에도 들리고 수크레에서도 며칠 보내다 산타크루즈와 코차밤바까지 들러서 체 게바라의 역사적 순간들도 보고 싶었지만, 볼리비아에서 버스 여행은 지양해야 한다는 정보를 얻고 수크레에서 라파즈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정말 볼리비아의 버스는 최악이었다. 야간 버스임에도 불구하고 침대 좌석 버스는 없었고 일반 버스를 타고 10시간 가까이 견뎌야 했다. 도로 사정도 좋지 않아 밤길을 달리며 버스가 뒤집어지지 않을까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잠이 들어 깨어보니 수크레에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새벽 5시 반. 수크레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밖은 아직 어두웠다. 무서워서 터미널 밖을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날이 밝을 때까지 터미널 안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다. 11시 비행기라서 날이 밝으면 바로 수크레 공항으로 가면 되는 거였다. 수크레와 라파즈 왕복 비행기 표를 샀기 때문에 다시 돌아왔을 때 수크레를 구경하면 되니까 오늘은 최종 목적지인 코파카바나로 직행하는 것이 목적이다. 라파즈 공항에서 바로 코파카바나로 가는 버스가 있다면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7시가 좀 넘어서 날이 완전히 밝아졌다. 택시를 타고 가려고 택시 가격을 물어보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엄청 비싸게 불렀다. 몇 대의 택시를 그냥 보내고 고민에 빠져있었는데, 옆에 있던 아저씨가 자기도 공항 간다면서 공항 가는 콜렉티보를 타면 된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우선 택시를 타고 콜렉티보 승강장으로 가서 타면 된다고 했다. 그를 따라 같이 택시를 타고 5분 정도 가니까 작은 미니 버스가 몇 대 보였다. 다행히 사람들도 많았고 캐리어를 싣고 나르고 하는 모양이 공항 가는 버스가 맞는 듯하였다. 운 좋게도 착한 아저씨를 만나서 이렇게 올 수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을 특히 현지인을 따라가는 일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5분 동안 별의별 생각을 다하며 간을 졸였다. 여행하면서 절대 하면 안 되는 행동 중에 하나인데... 다음부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절대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이렇게 매번 숙지하지만 나는 사실 여러 번, 아주 여러 번 현지인이 알려주는 길을 가기도 하고 따라가기도 했다. 모두 운이 좋아 별일 없었지만 배낭여행 중에 절대 조심해야 하는 일이다.)
콜렉티보(미니버스)를 타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탈 수 있었다. 그나마 비행기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서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30분 정도 콜렉티보를 타고 달렸더니 공항이 나왔다. 작지만 깔끔한 공항이었다. 수속을 끝내고 티켓을 받았다. 그런데 무슨 종이가 여러 장이었다. 뭐냐고 물어보니 무슨 세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공항 이용세? 같은 거였다. 대부분 티켓에 포함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긴 따로 내야 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터미널 이용료도 냈었다. 볼리비아는 이렇게 시설 이용 세금을 매번 따로 걷는구나... 그러나 여행객들에겐 한 번이고 적은 돈이라 불편함이 덜하지만, 매번 이용료를 낸다면 현지인들은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은 우리나라 시외버스 터미널 정도로 작았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작은 면세점도 있었고, 식당들도 있었다. 과일 주스와 초리빵(볼리비아 햄버거)으로 아침을 먹고 쉬었다. 아침 10시도 안 되었는데 벌써 몸은 녹초가 된 것처럼 지쳤다.
비행기 시간이 되어서 비행기를 타러 갔다. 그런데 헉! 게이트로 나가니 사람들이 걸어서 비행기를 타러 가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공항이어도 이렇게 사람들이 비행장을 누비며 걸어서 비행기 타러 가는 걸 본 것은 처음이었다. 참 정겨운 볼리비아다.
한 시간 정도 후에 라파즈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코파카바나로 가는 버스를 찾았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원래 없었던 것인지 이미 출발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떤 안내원이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다. 택시 가격을 물어보니 100달러를 달라고 했다. 혼자 타고 가기엔 너무 비싼 금액이라 버스를 타고 갈 거라고 했더니 우선 터미널로 가서 거기에서 코파카바나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고 했다. 너무 정보를 찾아보지 않고 온 것이 후회되었다.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생각보다 멀었고 비까지 내렸다. 아무래도 택시 기사가 빙빙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오늘 안에 코파카바나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버스만 탈 수 있기만을 바랐다. 다행히도 버스가 있었고 여러 회사의 버스가 다양한 시간대로 있었다. 30분 후에 출발한다는 버스가 있어서 바로 표를 구입했다.
어렵지 않게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니 강이 나왔다. 아니 호수였다. 티티카카 호수. 거기에서 배를 타고 반대편 마을로 건너가는데, 버스는 버스대로 다른 큰 배를 타고 사람은 사람대로 작은 통통배를 타고 건넜다. 배표는 따로 구매를 해야 했다. 배를 기다리며 호수가의 포장마차에서 파는 생선 튀김을 먹었다. 은어튀김처럼 작은 생선을 튀긴 것이었는데 맛있었다. 튀김을 먹으며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넜다. 강을 건너는 것인지 호수를 건너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배에서 내리니 마을이 나왔다. 그러나 그 마을이 코파카바나가 아니었다. 또 한참을 가야 한다고 했다. 벌써 5시가 넘었는데... 강을 건너온 버스를 다시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을 달렸다. 달리는 내내 푸른 바다 같은 호수가 보여서 좋았다. 7시가 다 되어서 코파카바나에 도착했다. 그런데 사람이 엄청 많았다. 내일 무슨 축제가 있다고 했다. 코파카바나와 인근 마을 현지인들이 즐기는 종교 축제 같은 거라고 했다. 그래서 볼리비아 현지인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이 넘쳐났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가는 곳마다 방이 없었고 침대도 없었다. 무거운 배낭을 하루 종일 매고 다니다 보니 너무 힘들고 지쳤다. 어디라도 침대 하나만 있다면 바로 눕고 싶었다. 그렇게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 겨우 찾은 호스텔은 정말 엉망이었다. 오래되고 청결하지 못하고 가격도 싸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오늘 하루만 묵기로 하고 배낭을 내려놓았다. 게다가 공원 바로 옆이라 밤새 떠들어대고 노래 부르는 사람들 때문에 그날 밤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엄청나게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과 불결함으로 거의 뜬 눈으로 지새웠다. 내일은 꼭 좋은 방을 찾아 옮기고 말겠다며 밤새 몇 번이나 다짐했다.
그토록 와 보고 싶었던 티티카카 호수인데 피곤함 때문인지 그렇게 반갑지는 않았다. 동행과 함께 다니다가 혼자가 된 공허함이 커서일까, 넘쳐나는 관광객들 때문일까, 호수를 보고도 기대만큼 반갑지도 감격스럽지도 않았다. 호수에 넋 놓고 감격하기에는 몸이 너무 지쳤다. 그래도 오늘의 수고를 보상이라도 해 주듯이 호수에서 해넘이를 볼 수 있었다. 호수 너머로 넘어가는 해가 구름 뒤에서 찬란한 빛을 내며 넘어가고 있었다. 우유니에서 코파카바나까지 1박 2일의 시간이 걸렸다. 뭔가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은데 어제는 분명히 우유니에 있었고, 지금은 코파카바나에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비현실적인 하늘과 호수 때문에 더더욱 내가 지도상으로 어디에 있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일은 반드시 더 좋은 방으로 호텔을 옮기고, 넋 놓고 호수를 감상할 것이고 하루 종일 편하게 쉴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호수만 바라보며 그저 푹 쉴 것이다.' - 2017. 01.31 일기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