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길, #8 우유니에서 수크레로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에 투어 두 개를 다닌 것이 무리였을까... 아니면 고산병 때문일까... 숙소에 오자마자 씻고 바로 뻗었다. 너무 피곤했고 정말 기력이 모두 소진된 느낌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고산병으로 인해 머리가 묵직한 두통은 가시질 않았다. 창문도 없는 캡슐 호스텔의 좁은 방에서 잠을 자는데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절로 끙끙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체크인 카운터와 가까운 방이어서 밤에 직원이 내가 끙끙대는 소리를 듣고서 공기청정기를 살며시 방에 넣어 주었다. 숙소의 시설은 별로 였지만 직원들은 정말 친절했다. 그렇게 끙끙대다가 어느새 잠이 들어서 사막 여행을 함께 했던 A가 떠나는 것도 모르고... 배웅을 못했다. A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새벽에 나가야 해서, 혹시 내가 못 일어날까 봐 전날 밤에 미리 작별 인사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배웅을 해주고 싶었는데... 공기청정기의 편안함 덕분에 완전 잠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는 남미의 각기 다른 지역에서 파견근무 중이다. A는 페루에서, 나는 파라과이에서 일한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같은 대륙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이번 여행 중에 서로 일정을 맞춰서 아타카마와 우유니 사막 여행을 함께하자고 급 '사막 여행 시스터즈'를 결성해서 이렇게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제 브라질로 가서 아마존 여행을 할 것이라고 이 새벽에 브라질로 떠났다. 나는 배낭여행은 좋아하지만 오지여행은 싫어한다. 서로의 여행 취향을 존중해서 접점이 있는 곳에서 만나 같이 여행하고 이렇게 쿨하게 헤어지는 것도 좋은 것 같다. 헤어짐은 항상 아쉽지만...
나는 이제 볼리비아 북쪽으로 올라가서 라파즈를 거쳐 코파카바나 호수로 가는 여정을 혼자 해야 한다. 누군가와 함께 동행하다가 혼자가 되니까 허전함이 어마어마했다. 누군가와 함께 감탄하고 공감하는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행하면서 느끼는 큰 기쁨 가운데 하나이다.
혼자서 우유니 골목을 돌아다녔다. 사막 동네라 그런지 정말 건조했다. 햇살은 뜨거웠고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은 메마른 먼지를 옮겨다 줄 뿐이었다. 시장에 들렀는데 사람도 많지 않았고 문 닫힌 상점도 드문드문 있었다. 시장에서 코카잎을 한 봉지 샀다. 우리나라 돈으로 5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한 봉지 가득 주었다. 너무 많아서 난감했지만 일단 사서 주인아주머니가 알려주는 대로 입속에 욱여넣었다. (코카잎은 한쪽 볼에다가 잔뜩 넣어두고 조금씩 씹어서 즙은 넘기고 찌꺼기는 뱉어 낸다.) 다람쥐처럼 볼이 빵빵해지도록 코카잎을 입속에 넣고 돌아다녔다. 고산병에 효력이 있다고 했지만... 내 경우엔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공원에 앉아서 코카잎을 씹고 있으니 현지인이 된 느낌이었다. 이제 그만 우유니를 떠나도 좋으련만 수크레로 가는 저녁 버스를 예
약한 터라 저녁때까지 시간을 때워야 했다.
우유니 시내에서 볼리비아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을 곧잘 볼 수 있었다. 시장에서나 공원에서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을 찍으려고 사진기를 들면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이 기겁을 했다.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으면 절대 안 된다고 고개를 획 돌려버리기도 하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들이 와서 이들을 찍어댔을까 싶은 생각에 죄송했다. 공원에 앉아서 햇빛을 쬐며 코카잎을 씹고 있는데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몇 마디 나누다가 코카잎 봉지를 열었더니 한~주먹 집어가서 입속에 다 넣고 한쪽 볼을 빵빵하게 만들었다. 조금 친해졌다 싶어서 전통의상이 예쁘니, 혹시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완전 정색을 하면서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다 쌩~하고 가버렸다. 인사도 없이... 전통의상을 입은 할머니들이 기겁하는 모습을 보고 옛날 우리 할머니보다 더 할머니들은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나간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그녀들을 사진에 담는 것은 포기했다. 아니 담지 않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S군을 만났다. S군은 내일 떠날 것이고 오늘 밤에 별 투어를 한 번 더 가려고 여행사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잃어버렸으니 이메일 주소를 알려 달라고 했다. 사진을 보내주겠다며... 아이고... 이 S군은 정말 남미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페루의 어디에선가 개떼에 쫓기다 개한테 물려서 며칠 동안 치료했어야 했고, 광견병 주사도 여행하면서 주기적으로 3번 정도 맞아야 한다고 했다.(남미는 거리에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큰 개가 정말 많다. 항상 개 조심해야 한다.) 또 며칠 전에는 카메라 삼각대를 지프차에 두고 내려서 잃어버리고 이제 핸드폰까지 숙소에서 잃어버렸단다. 그래도 해맑게 저녁에 별 투어를 갈 것이라고 했다. 별을 정~말 좋아하는 친구이다. 같은 고산병으로 고생하는 동지에게 코카잎을 나눠주고 행운을 빌며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핸드폰을 구입했다며 그에게서 단톡 방(귀요미 친구들과 일몰 투어팀 단톡 방을 만들었었다.)으로 연락이 왔다. 아직도 씩씩하게 남미 여행 중이며, 아르헨티나에 있다고 안부를 전했다. 그리고 하늘 가득 별을 담은 멋진 사진도 보내주었다. 우리는 단톡 방을 통해 사진을 공유하고 얼마 동안은 서로 여행에 대한 여운을 곱씹기도 하면서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갔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막 두 곳을 나름대로 충분히 경험했다. 5일이라는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는데, 너무나도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신비로운 자연 광경을 눈으로 담을 수 있어서 더없이 만족스러운 사막 여행이었다. 더군다나 너무나 좋은 사람들과 동행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고, 나와 동행하기 위해 기다려준 나의 사막 시스터즈가 있어서 더 즐거웠다. 고마웠던 동행들도 설레었던 사막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