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길, #6 아타카마를 벗어나 우유니로
역시 공기가 좋아서인가... 어제 그렇게 광란의 밤을 보내고, 출발 시간 때문에 새벽에 일어났는데 숙취가 하나도 없었다. 상쾌한 아침 공기만큼 머리도 속도 가볍고 산뜻했다.
어제 신청해둔 아타카마 - 우유니 지프 투어 차가 6시 반쯤 숙소에 도착했다. 다행히 우리는 그전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숙소에서 준비해 준 아침 식사용 샌드위치까지 꼼꼼히 챙겨서 미니 버스를 탔다. 칠레 출국 수속은 입국 수속보다 덜 까다로웠다. 간편하게 느껴질 정도로.(어제 버릴뻔했던 그 종이쪽지가 없었더라면 정말 낭패를 볼 뻔했다.) 칠레 국경을 넘어 다시 버스를 타고 10분 넘게 황량한 벌판을 달리다 멈춰서 내리니 볼리비아 국경 출입국관리 사무소가 있었다. 내가 본 출입국관리 사무소 가운데 가장 허름했다. 그나마 흙벽이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황토색 벌판에 뜬금없이 서있는 회색의 작은 집은 한 나라의 국경에 있는 출입국관리 사무소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짐 검사는 물론 할 것도 다했고. (볼리비아는 비자를 사전에 필수로 준비해야 한다. 요즘은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어서 시간만 충분하다면 볼리비아 대사관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건 신청과 발급이 가능하다. 나는 파라과이에서 미리 준비하였다.)
그렇게 모든 출입국 절차를 마치고 둘러보니 언제 도착했는지 여러 대의 지프차가 즐비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지프 투어의 가이드 겸 드라이버를 소개받고 그를 따라갔더니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해 뒀다며 트렁크 쪽에서 커피, 차 그리고 볼리비아 비스킷이라며 작은 도넛 모양의 작고 바삭한 과자를 내놓았다. 한 차에 보통 6~7명 정도 탄다고 했는데 우리 차는 기사 포함해서 7명이다. 완전 만원인 것이다. 아르헨티나인 여자 1명과 호주인 남자 2명, 한국인 남자 1명, 그리고 우리(한국인 여자 2명)가 차에 꾸깃꾸깃 타야 했다. 게다가 양보심 없는 아르헨 여자는 조수석 좌석을 덩치 큰 남자들에게도, 뒤에서 멀미를 하고 있는 한국인 여자들에게도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뒤에 탄 5명이 돌아가며 뒷좌석의 불편한 자리를 골고루 경험했고, 나중엔 호주 남자들의 배려로 그나마 뒷좌석에서도 조금 편한 자리에 앉아서 갈 수 있었다. 나는 지프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산병처럼 두통이 밀려왔다. 고산병 약도 먹고 A가 챙겨주는 고산병에 좋다는 캔디며 껌이며를 계속 입속에 두었다. 약간 숙취 같기도 하고 멀미 같기도 한 그런 느낌이었다. 같이 간 A는 멀미에 시달렸고, 지프에서 만난 한국인 남자도 나처럼 고산병에 시달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엄청 심하지 않아서 견딜만했다는 것이다.
지프를 타고 아타카마에서 우유니를 가거나 우유니에서 아타카마로 넘어가는 투어는 유명하다. 사막호텔에서 하루 자는 투어도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그저 횡단하는 투어를 선택했다. 결코 사막에서 자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지프를 타고 가면서 정말 잘 한 선택이었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그저 열 시간 정도 타고 이동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1박 2일 혹은 2박 3일 동안 이 불편한 차를 타고 사막을 쿨렁거리며 다닐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사막의 경치는 경이롭고도 신비로운 곳들이 많았지만 온전히 즐기기엔 너무 고달픈 여정이었다. 정말 하루 종일 쿨렁대는 지프를 타고 붉고 메마른 흙산들과 가끔씩 눈 덮인 산 봉우리도 보면서 졸기도 하면서, 시달렸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몇 시간인지도 모를 지루한 시간을 달리니 드문드문 메마른 땅에 자라고 있는 연약한 풀들이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초록빛 들판이 나타났다. 정말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 크고 거대한 돌산으로 둘러싸인 들판에는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있고 풀 뜯는 야크들도 볼 수 있었다. 기사 겸 가이드는 여기서 점심을 먹고 좀 쉬었다 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준비하겠다고 하면서 점심 먹을 사람은 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아서 아침에 가져온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겠다며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한국인 남자도 우리와 함께 빠져나와서 좀 떨어진 곳에서 우린 샌드위치에 고추장을 발라 먹었다. 고추장을 먹은 탓일까 조금 살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촉촉하고 푹신푹신한 땅을 밟으며 산책을 했다. 야크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건 처음이었다. 너무 귀여웠다.(그러나 그 다다음 날 저녁으로 야크 스테이크를 먹었다...) 사막을 달리는 동안 화장실이 따로 없었기에 거대한 바위를 방패로 삼아 노상방뇨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오지체험을 싫어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대부분 노상방뇨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다시 차를 타고 출발했다. 다행히도 산책을 하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니 고산병이 좀 덜해졌다. 그러나 덜컹거리며 흙바람을 가르 지르는 지프를 타고 달리는 여정은 여전히 고달팠다. 쿨렁 또는 덜컹거리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사막의 지루한 풍경을 몇 시간쯤 더 보고 나서야 우리는 우유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막 횡단 지프 투어가 끝났다는 의미에서 우유니가 너무 반가웠다. 저녁 6시가 지났지만 아직 어둡지는 않았다. 우리는 우유니 역 2층에 있는, 방이 아주아주 좁은 호스텔에서 묵었다. 방을 보고 너무 좁아서 기절할 뻔했지만 다른 호스텔을 찾아갈 기력이 없어서 그냥 묵기로 했다. 그것도 2박씩이나... (그건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자다가 정말 숨 막혀서 죽는 줄 알았다.) 우리는 우선 가방을 던져놓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저녁 먹기 전에 내일 새벽에 갈 선라이즈 투어도 골라서 신청해야 했다. 여행사는 즐비했는데 그중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여행사에도 들러보고, 몇 군데 더 들러서 가격도 흥정해보고 하다가 가장 친절하고 말이 많은 아줌마한테 신청했다.
우유니도 시내가 작은 마을이었지만 아타카마 보다는 크고 건물도 많았고 갈만한 데가 많았다. 게다가 김치볶음밥을 파는 식당이 있었다. A가 찾아온 식당 정보를 따라갔더니 정말 김치볶음밥과 제육볶음을 파는 식당이 나왔다. 그것도 볼리비아 현지인이 요리하는데 정말 맛있었다. 물론 한국에서 먹는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훌륭한 편에 속했다. 김치볶음밥을 만드는 여자는 한국에서 몇 년간 식당에서 일하다 왔다고 한다. 그때 김치 만드는 법과 한국음식 몇 가지를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볼리비아로 돌아와서 고향인 우유니에서 김치볶음밥과 제육볶음을 팔고 있다고 한다. 장사는 엄청 잘 된다고 한다. 하긴 우유니에 여행 오는 한국인이 이리도 차고 넘치니 잘 될 수밖에. 더군다나 나의 동행처럼 한국음식에 죽고 못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 나의 동행은 이틀 동안 계속 이 식당에서 김치볶음밥만 먹었다. 덕분에 나도...
저녁을 먹고 간단히 산책하다가 숙소로 일찍 돌아왔다. 지프에서 만난 한국인 남자 S군은 같이 밥 먹다가 급격히 고산병이 심해져서 밥도 다 못 먹고 숙소로 돌아갔다. 내일 새벽에 투어도 같이 하기로 했는데... 괜찮을까 모르겠다. 내일 새벽에 만나면 아껴뒀던 비타민이라도 건네줘야겠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본 우유니 하늘에도 별들이 무수했다. 그래도 어제 아타카마에서 본 별들이 최고였다. 그 장관을 본 지 겨우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엄청 오랜 시간이 지난 느낌이었다.
고산병은 여전했지만 참을만했다. 너무 피곤한 탓에 내일 볼 소금 사막에서의 일출에 대한 기대도 사라졌다. 내가 우유니에 있다는 게 정말 현실인가... 믿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