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스 Nov 18. 2018

태권도 가는 길

그것은 엄마의 마음수련

만으로 두 살 하고도 2개월을 찍은 노아는 요즘 부쩍 무언가를 원할 때 신경질과 눈물이 폭주한다. 한국어든 독일어든 자기가 필요한 단어는 여기 저기서 그러모아 의사 표현하기에 바쁘다.


이 당연한 발달과정은 보통 미운 세 살로 표현되며 주양육자를 극한의 스트레스로 내몬다. 거기다 한 이틀 전부터 코감기의 기류가 감지된 바. 감기가 유행중인가보더라. 유치원 앞에서 닉 픽업 하려고 기다리는데 다른 집 동생들도 모두 유모차에 잔뜩 지친 얼굴로 실려(?)오더라.


이렇게 노아의 감정이 널을 뛰는 상태에서 아침엔 ALDI에서  시어머니와 장을 보고, 점심엔 닉 데리러 같이 유치원에 가고, 남편이 재택 근무 날이니 집에서 점심해서 다같이 먹은 뒤 뭐 잠시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을 새도 없이 태권도를 하러 Spreitenbach(쉬프라이텐바흐)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분이 널을 뛰시는 장본인. 그래도 밖에 나와줘야 덜 짜증낸다.

기차에서 정신 팔릴 게 필요해서 골판지 카드만한 크기로 자른 것과 색연필을 가져갔다. 내가 원했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한 2분 정도? 그 이후엔 색연필로 골판지에 구멍을 뚫는 것에 20분의 시간을 보내던 두 총각.


뭐든 어떠랴. 애들이 재미있었으면 된거지...


아무튼 모든 게 한 동네에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셔틀버스가 와 주는 시스템도 없는지라 원하는 게 있으면 발품을 팔아야 하는 현실이다. 게다가 자차가 없으니 더욱 불편하다. 기차 시간 버스 시간을 맞추어 헐레벌떡 뛰어다니는 일상은 두번의 임신 이후에도 내 몸무게를 거의 결혼 전과 같이 만들었다.(아, 물론 무게는 같아도 형태는 다른 슬픈 현실.)


우리가 애용하는 버스. 이건 전에 백조가 버스를 타려고 한 적 있다는 신문 기사에서 가져온 사진이다. 내참...녀석...(출처: 20Minuten)


태권도를 하는 닉의 모습을 보는 건 즐겁다. 문제는 현재 의욕만큼은 만렙을 찍은 노아가... 자꾸 같이 트레이닝을 하려고 한다는 것. 못하게 하면 악쓰고 난리를 치고, 한번은 사범님의 배려로 같이 트레이닝을 했는데 그 날은 첫날이라 얌전히 하더니만 다음 날부터는 깽판을 치더라.


거기다가 사범님의 새로운 벗. 멍멍이(암컷. 낯을 많이 가리고 아직 성견이 아님. 먹을 것을 좋아함. 이름은 못 물어봤음. 미모 출중함. 호기심 대장.)랑 노아가 죽이 맞아 둘이 난리를 치고 사방을 뛰어다녀서 세상에... 태권도 수련은 커녕 애들이 다 웃고 까불고 난리가 나서, 자길 같이 못 하게 한다고 엉엉 우는 노아를 들쳐메고 나왔었다.


그 뒤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노아가 엄청난 속력으로 강아지에게 가서 사람먹는 비스킷을 먹이는 만행을 저지르고, 이쯤 되니 사범님도 기가 막혀서 막 웃었다. 다시 노아를 들쳐메고 나오는 동안 언뜻 뒤 돌아보니 촉촉하게 젖은 강아지의 감사한 눈빛. 그래도 녀석아, 그거 네 몸에 안 좋다....


이런 아련한 눈빛을 보내왔다. (출처: pixabay)


그 날 이후론 다른 아이들의 수련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수련 시간 동안 아예 노아랑 밖에 나와있기로 했다. 45분이다보니 나왔다 들어갔다만 해도 시간은 참 잘도 가더라.


그리고...사실 불평을 많이 하지만, 만 두 살짜리의 노아가 형의 스케쥴을 다 따라다니다 보니 피곤하기도 할 것이다. 그만큼 많이 배우고 보고 경험할 테이지만, 나른하고 편안한 하루는 노아의 일상에서 거리가 먼 일 같아서 조금 미안해진다.


때론 이 잠없는 녀석이 달게 자는 아침잠을 깨워야 하고, 느긋하게 뭔가 먹을 시간이 없어서 기차에서 빵이나 요거트, 과일 등을 먹으며 때우기도 하고, 간식으로 감자튀김을 먹어서 열량을 채우는 이 별 일도 없이 바쁜 일상에 함께 하는 둘째가 좀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하다.


역시 형님 스케쥴대로... 닉이 선생님과 수업하는 동안 다른 방에서 조용히 놀다가...나중에 다 휘젓고 다님. 그래도 많이들 이해해줘서 다행이다.


노아뿐만이랴. 피곤하거나 좀 아픈 날도 가능한한 모든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이 엄마도 태권도 수련처럼, 좀 오버해서 가끔은 폭포수 아래에 앉아 물을 맞으며 수련하는 기분으로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아이들 건사를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내 감정을 잘 살펴 너무 지쳐서 아이들에게 짜증을 부리거나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니... 거기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는 이렇게 시간 나면 쓰는 글들, 좋은 사람들과의 소통, 좋은 날씨, 가끔 기분나서 한 요리가 대박났을 때, 맛있는 달다구리들, 엄마와 시댁 식구들의 격려, 아이들의 이쁜 짓, 저녁에 맥주 한 잔, 조금씩 다시 참여할 수 있는 예배, 길가다 우연히 만나는 친절한 사람들... 그런 것들이 일상을 아름답게 해주는 것 같다.


얼마전 바덴 역에서 노아가 떼부리고 울고 난리일 때, 길가던 할머니가 노아와 닉에게 초콜렛을 하나씩 주셨다. 감사하다고 인사하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가셨다. (pixabay)


물론 글을 이렇게 쓰고 앉아있는 오늘은 태권도를 제끼고 장도 보지않고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었다.

아! 얼마만의 게으름인가... 그 덕분에 내일부터는 다시 일상에 복귀해서 열심히 살 힘이 생긴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 요리하기 싫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