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스 Oct 15. 2018

여기가 한국이 아니니까 더-   태권도!!

스위스에서 첫 태권도와의 조우


학생 때 두어번 버스에서 치한을 만난 후, 호신술을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를 졸라서 합기도 도장을 다녔었다. 왜 합기도인가 하면 단순히 동네에 제일 가까운 도장이 거기였기 때문이다. 태권도 도장이었다면 태권도를 배웠을 것이다. 운동에 한해 끈기는 있지만 탁월한 운동감각 같은 건 없는 사람이라 겨우겨우 1단을 땄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열심히는 했다. 그래도 다른 아이들이 하는 백덤블링 같은것은 꿈도 못 꿨다. 물론 그것도 모든 아이들이 했던 것은 아니다. 그게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아주 잘 해낸 무술 경험은 아니었지만, 내 몸을 스스로 지키겠다라는 자각이 생기자 한번씩 위험한 순간이 있었던 것 같은데 나름 호기롭게 잘 이겨냈다. 언젠가 범죄 예방 프로그램에서 보았듯, 범죄자들은 약해보이는 대상을 찾는다 하지 않던가. 물론 그렇다고 피해자들이 약한 사람들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때로는 저항할 기회조차 없는 상황들이 있으니까...


아무튼 잘하든 그럭저럭이든 검은띠를 허리에 두르는 걸 허락받았던 나는 용기가 생겼고, 어린 나의 자존감에 많이 도움이 되는 업적(!)이었다. 그런 이유로 아이들에게 언젠가는 반드시 어떤 종류든 무술을 가르칠 생각이었고, 타향살이를 하다보니 그건 반드시 태권도여야만 했다.


유독 안개가 자욱했던 토요일 아침. 태권도장을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실제로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들 중에도 태권도 유단자가 한 명 있다. 그는 취리히에 상당히 이름난 도장에 다니고 있고 태권도를 사랑한다. 태권도로부터 한국사랑이 시작된 외국인들도 꽤 많은 것으로 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출신의 방송인 파비앙(최윤이라는 한국이름도 있다)도 태권도를 다섯살때부터 했다고 한다.


마침 닉도 다섯살이 되었으니 어찌 태권도를 아니 배울쏜가? 다만 우리집 근처에는 공수도, 유도, 주짓추 도장만 수두룩 하다는게 나에겐 큰 유혹이었다. 걸어서 10분이면 닿는 이 많은 도장들을 뒤로하고 일주일에 세 네번 Spreitenbach 라는 기차로 20여분 걸리는 동네로 가야 한다. 그나마 기차를 갈아타지 않고 갈 수 있는걸 감사하게 여겨야 할 지경.


Spreitenbach의 체육관.



이쯤되니 주변에 한국인이 아닌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넌지시-어쨋든 건강하라고 하는 운동인데 굳이 그렇게 무리해야겠어? 그냥 공수도 체육관에 보내. 심지어 시에서 지원해줘서 싸거나 공짜일걸?- 이라고 조언해주기 시작했다. 이 애엄마의 멘탈은 자주 흔들리고, 피곤할 때마다 유혹에 약해진다.


그러나 동양인이란 이유로 자주 중국인, 일본인 모두 그게 그거지, 라는 취급에 이골이 났던 참이다. 외국인으로서 어딘가에 살면 어디서나 받을 수 있는 작은 스트레스다. 나의 존재를 자꾸 알려야 하고, 내가 누구인지 계속 소개해야 하는 무한 루프. 그나마 소개할 기회가 주어지면 다행이다. 침묵 속의 오해보단 나을테니-


요점은... 내가 나 편하자고 아이들을 공수도 체육관에 보내면, 10년 뒤에 나는 그 선택에 만족할 것인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때 대답이 "이유는 모르겠는데 아마 아닐 것 같아." 였다. 그리고 그 알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태권도 도장에서 영국인 관장님이 한국어로 힘차게 하나, 둘, 셋, 넷 구령을 셀 때마다 어쩐지 알 것 같았다.



이 태권도 단체에서 참여한 행사는 깨끗한 액자에 담아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에 재미있는 것 발견!
호랑이반 포스터.


우리가 참여한 수업은 다섯살 이상부터 올 수 있는 호랑이반으로, 열 명 정도의 아이들이 방학인데도 와서 열심히 때로는 까불며 아이들답게 이쁘게 수련을 했다. 그리고 입구에 들어오면서부터 만난 부드러운 인상의 1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는 살짝 나에게 목례를 하는 폼이 '아! 이 아이도 엄마 또는 아빠가 한국사람일 것 같다.' 싶었는데, 관장님을 도와 아이들을 수련시키고 자기도 더 연습을 하려는 것 같았다. 그 아이는 참 다정하게도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선 닉에게 어떻게 장애물을 건너는지, 줄에서 이탈하면 자연스레 끌어주고, 어린데도 참 성숙하고 자상한 모습에 안개 자욱한 아침에 스산했던 마음이 따뜻해졌다.


무료로 해보는 체험판 수련이라 도복도 없고 프로그램도 사람들도 모두 낯설어 하는 닉에게 이런 작은 도움들은 참 소중했다. 수줍음이 많은 아이라는 걸 파악한 관장님은 앞으로 몇 번 더 경험삼아 와보고 그 이후로 결정해도 되고, 일주일에 닉이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이 네 개인데 최대한 많이 하는게 좋다고 말해 주셨다. 참 당연한 말인데도 듣고나면 심적으로 도움이 된다.



 

이제 남은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힘을 내서 닉을 자주 체육관에 데려다 놓는 것 같다. 남편이 주말에는 자기가 직접 가겠다고 한 것은 의외의 수확. 이 남자가 즐겨 하는 운동은 수영, 테니스, 스쿼시 같은 건데, 무술도 배워보면 좋을 것 같아 계속 추천했었다. 지금까진 관심이 별로였던 것 같은데 닉 덕분에 아빠까지 태권 소년으로 거듭날지도. 아직 만 두 살이라 먼 이야기이지만 노아도 배운다고 하면 삼부자 나란히 태권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내심 기분이 좋아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