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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영 Dec 18. 2021

첫눈과 크림 파스타

쌓여가는 흰 눈을 보고 있자니 뽀얀 크림 파스타가 떠올랐다


 오후 두 시, 집을 나서기 무섭게 하늘에서 굵은 눈송이가 떨어졌다. 급하게 캐럴을 틀고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노래에 맞춰 한껏 겨울을 만끽한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조금은 즐겁다.

 첫눈의 낭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눈이 쌓인 길에서 모두가 펭귄처럼 걷고 있었다. 나도 재빨리 펭귄 무리에 합류했다. 몇 번이고 미끄러질 뻔한 걸 나의 안쓰러운 반사신경과 얄팍하게 남아 있는 코어 근육으로 버티었다. 온 신경을 발끝에 집중하고 혹여나 얼어붙은 길이 있을까 바닥을 응시하며 뒤뚱뒤뚱 집으로 향한다. 발 밑으로 보이는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다. 쌓여가는 흰 눈을 보고 있자니 뽀얀 크림 파스타가 떠올랐다. 볼 것도 없이 오늘 저녁은 크림 파스타가 될 것이다.


 따뜻한 집 마루 바닥에 발을 딛자 온 몸의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몸이 사르륵 녹는 순간, 그때부터 급격하게 허기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냉장고를 열어 우유, 치즈, 베이컨, 양파를 꺼낸다. 깊은 냄비에 물을 넉넉하게 받고 파스타를 삶는다. 면이 익을 동안 냄비에 베이컨과 양파를 볶아준다. 양파가 투명해지면 불을 살짝 줄인 뒤 우유와 치즈를 넣고 작은 기포가 올라올 때까지 끓여주기만 하면 된다. 

 추운 날엔 국물이 간절하지만, 스프를 끓일 힘이 남아있지 않아 파스타 소스를 넉넉히 만들어준다. 아무래도 크림 스프와 크림 스파게티 그 사이 어디쯤의 요리가 완성될 것 같다. 

 보글보글 끓는 소스를 보고 있자니 바삭한 마늘빵 한 조각을 곁들이고 싶어 진다. 먹고 싶은 걸 만들 수 있는 능력에 감사하며 냉장고에서 버터와 다진 마늘을 꺼낸다.

 말랑해진 버터 두 스푼에 마늘과 설탕을 각각 한 스푼씩 넣고 잘 섞어준다. 바게트 위에 도톰히 발라주고 오븐에 노릇하게 구워준다. 이때 즈음이면 온 집안에 고소한 냄새가 퍼진다.



 마늘빵을 크림소스에 찍어 한입 베어 물자 오후 내내 얼어붙어 있던 빈속이 금세 따뜻해진다. 파스타를 돌돌 말고 베이컨과 양파를 숟가락에 듬뿍 얹어 함께 먹는다. 양파를 조금 더 오래 볶을걸, 하는 생각이 들지만 오늘은 여기서 만족하도록 하자. 

 마지막 한 입을 끝내고 나니 그제야 몸에 훈기가 돈다. 넉넉하게 만든 소스 덕에 스프 못지않은 따뜻한 한 끼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연말 다운 연말이 시작되려 한다. 눈이 내리고 온 거리가 반짝거리며 서점에는 2022년 달력이나 다이어리가 잔뜩 늘어져 있다. 그러나 정작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한껏 끌어안은 채 2022년을 맞이하게 될 터이다. 

 부디 내년은 올해보다 나은 한 해가 되어주길 바란다. 또한, 이것은 나 스스로에게 부탁하는 작은 약속이기도 하다. 조금 더 부지런히 먹고 기록하며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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