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 크림카레를 내 돈주고 사먹는 나는야 멋진 어른이야.
내가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재료를 큼직하게 썰어 버터에 볶아 풍미가 부드럽고 양파가 잔뜩 들어간 달콤한 카레를 해주셨다. 나는 급식에 나오는 카레를 맛보기 전까지 카레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어떠한 맛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을 만큼 맵고 밍밍하며 묘하게 칼칼한 맛이 뒤섞인 카레가 급식판에 주르륵 떨어진다. 흰 교복 블라우스에 카레가 튀기라도 하면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야 한다. 그런 날엔 차라리 밥을 굶는 편이었다. 당시 이에 붙어 있던 교정기가 노란색으로 변하는 게 싫었을뿐더러 텁텁한 끝 맛은 양치를 몇 번이나 해도 가시질 않았다. 이 세상의 모든 카레를 사랑으로 감싸줄 수 없음을 느꼈다. 배신이다.
어른이 된 후 맛있고 비싼 카레를 내 돈으로 양껏 사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연남동 골목에 숨어 있는 '키친숲'의 새우 크림카레는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인상적이다. 건더기가 없는 것이 특징인데, 통통한 새우와 밥 위에 뿌려진 바삭한 마늘 튀김이 식감을 더해준다. 간이 조금 센 편이니 처음부터 밥과 양념을 전부 비비지 말고 조금씩 섞어 먹는 걸 추천한다. 아기자기한 가게 내부와 후식으로 나오는 귀여운 곰돌이 젤리 또한 웃음을 자아낸다.
어떤 음식이 나쁜 기억으로 남는 건 나에게 있어 드문 일이다. 나빴다 하더라도 오늘처럼 맛있는 음식으로 다시 기억하면 된다. 나에게 있어 이렇게 편한 덮어쓰기 방식은 애석하게도 식사라는 행위에만 해당된다. 지나간 일에는 크게 마음을 쓰지 않지만 아주 작은 자국이라도 남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다. 좋은 기억은 생각보다 접착력이 약해서 꼼꼼히 붙여도 곧잘 떨어져 나간다. 자꾸 들여다보면 신경이 쓰이고 마음을 주게 되고 결국 발이 메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매몰차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집에 가만히 있는 날이 많아졌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생각이 많아진다. 안팎으로 너무 많은 소식이 들려와 무척 심란하다. 조금은 둔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