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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 정신과 의사 Aug 10. 2023

하루가 허무한 당신에게 결여된 것은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닌 의미의 흐름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짧은 여름 휴가를 다녀 오느라 왕복 7시간 거리의 운전을 마치고 돌아왔다. 주섬주섬 겨우 짐을 풀고 아이들을 재우며 깜빡 뻗어버렸다 깬 이른 새벽이다. 얼른 다시 잠을 청해야 여독을 풀고 내일 다시 오랜만의 출근을 하겠으나 극도의 피로로 초저녁에 달게 푹 자버리고 나니 다시 잠에 들기 쉽지는 않다. 피로감이 상당하고, 다음날 오랜만의 출근이 우려되기도 한다.


그러나 전혀 불쾌감은 없다. 첫째 아이를 재우며 이번 휴가동안 기억나는 장면에 대해 함께 이야기했다. 아들과 처음으로 간 사우나였다.수증기가 은은한 탕에서 아이가 양팔을 벌리며 흐느적 거리기에 지긋이 뒤에서 밀어 주었다. 아이는 슝~ 소리를 내며 '이건 물비행기야' 라고 외쳤다. 목욕 전 수영장에서 돌쟁이 동생이 물이 찰랑거리는 자쿠지 바닥을 아장아장 기어갈때는 물거북이라고 했더랬다.


물비행기와 물거북. 달콤한 휴가가 마무리되는 아쉬움이 찾아올 새도 없이 잔상처럼 아이의 목소리가 자꾸 귀에 맴돌고, 그 장면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휴가 기간 동안의 운전이란 그런 장면들에 다가가는 과정이며, 그 과정마저도 휴게소 뻥튀기, 블루투스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는 막내딸, 터널을 지날 때 마다 바뀌는 풍경들로 채워진다. 지치고 피곤하지만 그것이 그다지 고됨으로 느껴지진 않는 이유이다.





어떤 차를 타는지, 어디를 향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운전을 하는지 등은 생각보다 여독에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다. 노면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승차감에, 머리조차 들기 힘들 정도로 비좁은 경차를 탈 지언정,새로 연애를 시작한 연인과 처음 떠나는 여행길이라면 어떨까. 그 설렘은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는 열 시간이라도 찰나의 꿈처럼 녹여버릴 것이다.


반면 불편한 사람을 모시는 길이라면 불과 30분의 이동길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의국 생활을 하며 의국원들이 다들 어려워하는 교수님을 운전으로 모실때의 노하우를 우스갯소리처럼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음악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쟁쟁거리게 하여서 거슬리지는 않지만 대화가 끊어져도 어색하지 않게 하고, 방향제는 무엇을 쓰고, 온도는 어떻게 해 드리고.. 여정을 떠나기 전부터 이미 지쳐 있다.


지금은 불가능한 옛날 이야기겠지만, 심지어 다른 병원 다른과 모 의국에서는 한 교수를 모시기 위해 입국 때 빚을 내 특정 브랜드의 외제차를 구입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교수는 해당 브랜드의 차량만을 타길 원하고, 국산차를 타기는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런이들을 모실때와 사랑하는 이를 태울 때의 느낌이, 같은 운전이라고 하여 같을 리 없다.





승차감, 운전 소요 시간, 도착 예정지 같은 것들이 운전의 형태라면, 함께 타고 있는 사람,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이동을 하고 있는 이유 등은 운전의 의미라 할 수 있다.


이를 삶에 그대로 비유해 본다면 어떨까. 운전의 형태가 얼마나 부자인지, 어디에 살고 얼마나 좋은 음식을 먹는지, 얼마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지 등에 해당한다면, 운전의 의미는 일상에서 어떤 기쁨과 활력을 느끼는 지, 하루를 어떤 시간으로 채우는지, 누구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지, 살아가며 무엇을 추구하고 싶은 지 등을 의미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와 소소한 기쁨은 가득하지만 가진 것이 없음을 비관하며 진료실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지역 내 최고의 부촌에 거주하고 이름만 대면 부러워할 직종에 종사하거나 사업체를 운영하면서도, 살아가는 의미가 결여됨을 허무해하며 나를 찾은 이들은 매일 있다.


당연하지 않을까. 아무리 좋은 차를 타도 불편한 교수님을 모실때는 허리가 아플 수 밖에 없지만, 덜컹거리는 경차에서도 사랑하는 이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피곤한 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내 삶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친구가 도대체 넌 피곤하지 않냐고 자주 물어온다. 물론 주 6일을 당연히 진료를 하고, 두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시간을 쪼개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삶이 매우 피곤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피로는 대구와 강원도를 왕복하며, 3박4일동안 아이들과 기쁜 추억을 쌓느라 보내는 피로와 같은 느낌이다. 나를 의미로 이어주는 지침이기에 기꺼이 감내하고 싶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고됨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잘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는 죽을 노력으로 시험을 겨우 끝마치고서 그동안 참고 참아 왔던 게임을 하느라 밤을 꼬박 샐 때의 피로와 비슷한, 너무도 즐겁게 감수하고 싶은 고됨이다. 동아리 엠티 차 설렌 마음을 품고 해변에서 이틀 밤을 지새며 해변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했던 추억은 아직도 종종 마음속에 아른거린다. 그 젊은 날의 우리에게 밤을 새 놀면 힘들지 않느냐고 누구도 묻지 않았다. 밤새는 피로감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기쁨과 의미가 그곳에 있음을 그 때의 우리를 보는 누구라도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느낌으로 강연을 하고, 일주일에 하루만 쉬며 진료를 하고, 때로 밤을 새어 잔업을 하고 입출금을 관리하거나 휴가를 위해 왕복 일곱 시간의 운전을 한다. 그러한 노력에 대한 댓가로 주어지는 돈은 단순히 '부' 만으로는 보상이 완료되지 않는다. 그것이 기부금, 여행지를 향하는 기름값, 아이 교육비 혹은 휴게소 돈까스값이라는 '의미'로 치환될 때 비로소 보상이 된다. 심지어 이를 위한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누군가의 인생이 바뀌었다는 거대한 보람이라는 의미까지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가치로 충만한 하루가 쌓여간다. 그러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음에 감사할 수 있어진다. 그렇기에 일상에 있는 고됨이란 기꺼이 감수하고 싶은, 당연히 존재하는 삶의 일부로 여겨진다.





우리는 삶의 형태에 집착한다. 어떤 직업을 가졌고, 월 수입이 얼마이고, 어떤 집에서 살며, 대외적으로 어떻게 신망을 받는 것인가 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형태들은 의미가 부여되었을 때 '도구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예컨대 돈은 가치중립적인 존재다. 한 달 수입이 천만원에 달한다 하더라도 삶에 특별한 의미가 없어 술을 마시거나 도박을 하는데 모두 소진해 버리는 것과, 삼백만원의 수입을 가족과 타인을 위해 아끼고 소중히 쓰는 이에게 돈이 가지는 의미는 다를 것이다. 숙취가 사라지고 나면 함께 사라져 있을 여흥을 위해서 몇 달, 몇 년, 평생을 노력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러나 수백명의 삶을 바꿀 수도 있는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꿈이 있다면 그만큼 열심히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반면 그러한 의미가 결여된 이들은 무의미로부터의 허무와 투쟁하게 된다. 이를 잊기 위해 말초적인 쾌락에 몰두하거나 SNS 등으로 타인의 동경을 구걸하며 일시적인 안도를 얻기도 한다. 타인을 위압하고 과시하기 위한 부와 소박한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부. 만약 그들이 그 부를 쌓기 위한 현실적인 노고가 비슷하다면 후자를 위해 살아가는 이에게 훨씬 활력과 웃음이 많을 것이다.


여행, 취미, 아이, 가족,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 소소한 행복... 한발 물러나 바라보면 누구로부터 인정 받을 필요도 전혀 없는, 나만이 추구할 만한 의미들이 삶에는 가득하다. 찾아내거나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무게에 짓눌러 보지못했던 것들을 재발견하는것이다. 일상의 노력을 명확한 의미로 치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명확한 가치들로부터 더욱 힘을 얻을 것이다. 삶의 본질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얼마나 돈을 벌며 어떤 집에서 사는 지가 아니라 어떤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지에 대한 것이며,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활력과 웃음에 대한 것이다.





하루가 허무한 당신에게 결여된 것은 무엇일까. 당신이 마지막으로 웃었던 건 어떤 순간인가. 어떨 때 살아있어 다행이라 느꼈고, 또 어떤 의미가 당신을 살아있다 느끼게 하는가.


당신이 어떤 일을 하고 얼마나 명망이 높으며 얼마나 부자인지와 같은 '형태'가 아닌, 당신이 오늘 누구와 함께이고,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지를 이야기하는 '의미'. 당신의 삶에 목마름이 지속된다면, 그 의미의 샘물이 메말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삶의 허무로 인한 목마름을 달래 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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