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는 정신과 의사 Nov 24. 2023

고래가 선물되어 올 때, 그들의 치유를 느끼는 이유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정신과 진료실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이 생긴다. 의사는 앞에 앉은 환자의 어린시절과 부모에 대해, 그 부모의 부모에 대해서 까지, 가장 친한 친구나 심지어 가족보다도 더 깊이 환자를 알게 된다. 반면, 그들은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치료적으로 적절한 수반성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할 때 활용되는 나의 개인적 에피소드, 책이나 글 속에서 내비쳐지는 단편적인 조각들 외에는 그들은 나를 모른다. 일반적인 관계에서는 보기 힘든 정보의 비대칭이다.






그래서 그런지, 환자분들이 전해주시는 선물에는 유독 고래가 많다. 병원 간판에도, 블로그에도, 쓰는 글에도 고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의미없이 지나치는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건물주 아저씨는 그거 '멸치'인가요? 라고도 했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데는 상대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러한 관심을 둘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내가 고래를 좋아하는 지를 알기 위해선, 아무 의미도 없어보이는 물고기 모양의 의미를 궁금해하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고래가 선물되어 오면 나는 그들의 그 따뜻한 시선을 느낀다. 그리고 그 시선을 둘 만큼의 마음의 공간과, 그에 맞는 선물을 고를 여유가 그들에게 깃들었음 도 느낀다. 그래서 이를 통해 직관적으로, 그동안의 함께했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치료자로서의 가장 큰 보람을 새삼스레 상기시켜주는 그들이 고맙다.


곁에 행복한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쁜 일이다. 내일 나를 찾을 이들과도 비슷한 시간을 쌓는다면, 그리하여 세상은 살아볼 만 한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늘어난다면 좋겠다. 그것이 이러한 감동을 전해주는 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보답이 아닐까. 그렇게 내일도 피로할 하루를 기꺼웁게 맞이할 힘을 얻는다.





P.S

글을 읽다 보면,  면담중인 것 같은 느낌이라고 종종 오래된 환자들이 전해온다. 멀리 떨어져 있거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진료실을 내원하기 어려울 때도 고민되거나 버거울 때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가 상기되는 느낌이라고. 역시, 열심히 써야겠다.






https://blog.naver.com/dhmd0913/222981865532

https://blog.naver.com/dhmd0913/222313665597

https://blog.naver.com/dhmd0913/222578328791



https://4yourmind.modoo.at


매거진의 이전글 중요한 돈, 만큼이나 소중한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