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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티 구구 Apr 04. 2021

키티 키티 키티

1장


겨울 아침, 나의 방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가서 1층 현관문을 나가 작은 주차장을 지나는데, 차바퀴 바로 가까이에 새끼 고양이가 뻣뻣해진 몸으로 죽어 있었다. 살아있었더라면, 고운 하얀색 털에 브라운색 줄무늬가 있는 귀여운 고양이였을 텐데, 전날 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자동차 바퀴 가까이에서 몸을 녹이다가, 차가 움직였나 보다.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아기 고양이잖아. 마음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방 안에서 신문을 찾아 몇 겹으로 싸서 작은 고양이를 신문에 뉘었다. 가까이에 쓰레기장이 있는데, 그 옆에 풀이 있어서 그곳에 은닉했다. 고양이의 몸은 뻣뻣했지만, 가벼웠다. 그 가벼운 무게만큼 쉽게 죽은 걸까. 가녀린 울음소리를 냈을 텐데, 크고 단단한 차 안의 운전자는 전혀 소리를 못 듣고,  새끼 고양이의 움직임을 알아채지도 못하고 사고를 낸 거지. 


 오늘도 나는 출근이다. 

나는 전화 상담원이다. 상담은 주로 신용불량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들은 나를 향해 뭔가 신기루라도 찾고 싶어 한다. 운이 좋으면, 신용불량자 중 소수는 나의 설명을 잘 듣고 자신의 신용상태를 제대로 파악한 후에 자신의 현재 경제 능력을 인정한다. 그들은 객관적인 분석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최대한 노력을 해서 신용 불량 상태에서 벗어난다. 그런 사람들은 많은 질문을 하지도 않는다. 현재 신용 수치를 받아들이고, 앞뒤 경황을 파악하고, 계획한 기간 동안 자신의 요술 카드를 잠재울 줄 안다. 요즘은 요술 카드가 그 이름만큼 정말 다양하다. 각각의 카드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몇 퍼센트의 적립금을 줄 건지 제시하며, 어떤 취향의 사람들이 주로 쓰는지도 광고한다. 사람들은 요술 카드가 과용되면, 요술이 괴술로 변한다는 것을 잊는다. 그런 사람들이 신용 불량자가 되고, 여러 개의 요술 카드를 쓴 사람들일수록 수렁은 깊고 넓다. 


 띠띠띠띠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 


‘고객님 천천히 얘기해 보세요’ 


‘... 저기 카드 때문에 제가 움직이지를 못해서요...’ 


‘고객님, 무슨 카드를 사용하셨나요?’ 


‘... 저기 제 카드는 이름이 없어요...’ 


‘네? 고객님 알려주셔야 저희가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뚜뚜뚜 




‘이진!’ 


‘네, 팀장님’ 


‘요즘 골치 아픈 고객이 있어. 그 얘기 알아?’ 


‘이름 없는 카드요?’ 


‘다음에 연락 오면 이진 회선으로 넘겨줄게.’ 


‘네, 팀장님.’ 


 오늘 나는 전화 상담을 통해 6명을 이해시켰고, 4명을 울렸으며, 56명에게는 앵무새가 되었다. 이해시킨 것은 나의 능력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이 경청했기 때문이고, 울고 간 4명은 언제나 그랬듯이 하소연이 하고 싶어서 내게 전화를 했고, 남은 무더기들은 듣기보다는 말싸움을 하려고 전화를 했다. 할 수 없이 그런 사람들에게는 친절한 목소리와 깍듯한 안내가 소용이 없다. 그럼, 나는 앵무새가 되어 그 시간을 버텨야 한다. 


 전화 상담원은 오래 하기 힘들다. 많은 상담원이 목소리로 성격을 드러내는 고객들의 반응에 상처를 입는다. 목소리가 왜 그러냐는 식으로 말꼬리를 붙잡고 마구 소리 높여 따지는 고객들이 있다. 어떤 고객들은 조곤조곤 물어보더니, ‘야! 이년아 근데 왜 너 나한테 거짓말했어!’이런 식이다. 그들에게는 이유가 없다. 감정만 있을 뿐이다. 감정을 일단 폭발시키겠다는 사람에게는 상담이 소용없다. 우리는 목소리 톤을 정중하게 만들어 상담원에게 폭언을 할 경우 어떤 조치가 취해지는지 말해야 한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장단이 되어준다. 똑같이 흥분하면 안 된다. 범죄자에게 묵비권을 알려주는 경찰처럼 또박또박 경고를 한다. 장단을 맞추는 것은 상담원이 되기 위해 받는 교육과정에서 가르쳐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책을 이해하는 나의 감성에서 나온 나만의 말투이다. 나는 그런 고객의 감성에 뛰어든다. 차라리 화를 낼 사람은 증폭시키게 도와준다. 왜냐하면 그래야 해소되기 때문이다. 그 고객이 어떤 감정의 도화선을 건드리는지 나는 감지를 잘해야 한다. 그리고 장단에 맞게 ‘네네.’ ‘아 그렇군요.’하고 말하며 재빨리 그들의 감정 해소에 동참한다. 대부분 상담원은 장단에 맞추지 못하고 기력을 잃고 헤맨다. 그렇게 되면, 상담은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상담원은 울어버리기도 한다.  


 나, ‘이진’은 감정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한다. 감정과 목소리가 서로가 자리를 차지하고 서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감정은 이쪽에 목소리는 저쪽에. 그렇게 되면, 나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고객 목소리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가령 점수를 매긴다. 최대 5점. 1점은 없다. 나이가 옴팡 든 어르신이 전화하는 경우는 못 들어봤다. 2점부터 시작이다. 2점은 목소리에 힘이 없는 고객이다. 주로 40대 중년 여성들이다. 그들은 신용불량자가 되어도 그걸 메꿔 줄 남편이 있는 여성들이다. 그래서 심드렁하다. ‘또 이런 일이 있다니 귀찮다’ 이런 식이다. 그 여성들의 목소리는 졸린 상태와 같다. 오랫동안 통화를 하는데, 계속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발등에 불이 붙지 않은 그녀들에게 신용불량자라는 딱지는 재미없는 드라마이다. 3점은 아주 좋은 목소리이다. 적당히 긴장하고 적당히 질문한다. 스스로 이 수렁에서 벗어날 자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질문을 할 때, 메모를 한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한다. ‘아, 네 잠시만요. 뭐라고 하셨는지 한 번 더 말씀해 주세요.’ 이런 분들은 상담원에게 ‘말씀’이라는 표현을 쓴다. 정말 흐뭇하다. 이런 고객과 전화통화가 끝나갈 때에는 ‘감사합니다’로 서로 인사한다. 4점과 5점은 귀가 따가울 수 있다. 일단 둘 다 목소리가 시끄럽다. 4점은 욕을 한다. 한번 터트리면 끝난다. 5점은 목소리도 시끄럽지만, 상담원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에 너라는 호칭을 붙여서 분을 낸다. 이해를 하지 못하고 반복해서 전화를 한다. 상담원은 이런 경우 ‘콜’을 부른다. 


 ‘콜’은 팀장님이 상담 도중에 관여하는 경우를 말한다. 팀장님은 굉장히 침착해서 감정 도화선에 도달한 고객을 식혀줄 수 있다. 나,  ‘이진’과는 다른 방법이다. 매우 쿨한 팀장님. 나는 감정을 더 고조시켜 해소시키는데, 팀장님은 식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내가 처음부터 내 노하우를 가진건 아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하는 여성 고객이 있었다. 질문은 이랬다. ‘아니, 내가 내 이름 걸고 돈을 썼다는데, 왜 신용 어쩌고 하는 건데.’ 나는 '신용카드는 회사이고, 그 회사에서 대금을 내준 것이다. 그래서 고객님이 기한 내에 그 돈을 갚지 못하면 신용등급을 관리하는 방침에 따라 고객님이 신용불량자가 된다.'라고 30분 동안 계속 설명을 했고, 고객은 30분 동안 13번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자, 팀장님이 오셨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안녕하긴, 난 신용이 뭔지도 모르겠고, 신용을 관리한다는 것도 못 믿겠어.’ 


‘네, 고객님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저희 상담원이 계속 어려운 말을 써서 힘드셨죠. 신용 등급이란 고객님에게 보다 나은 경제 여건을 위해 관리해주는 선생님 같은 거죠. 고객님도 선생님이 계시죠? 저희 서비스는 그 선생님을 모시는 학교입니다. 고객님...’ 


 나는 팀장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 날 퇴근하는데 팀장님이 내게 얘기했다. ‘이진, 목소리도 좋고, 감정도 컨트롤 잘하더라. 아까 힘들었지.’ 힘들었냐는 말에 울컥 눈물이 쏟아질 듯했다. ‘이런 상담은 말보다, 네 마음 상태가 더 중요해. 힘들다는 건 상담원 마음 때문이야.’  


 그렇다. 나는 팀장님의 조언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이건 말이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의 주고받음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며, 그 흐름에 몸을 맡길 때 내가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 후로, 나는 상담원 중에 컨택에 성공하는 상담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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