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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티 구구 Apr 04. 2021

키티 키티 키티

2장


주말 잘 보내세요. 


금요일 상담이 끝나고, 상담원들은 각자 주말을 상상하며 인사했다. 


나는 주말에 책방에 가기로 했다. 서울 응암역 근처에 있는 책방이다. 처음 갔을 때, 정직한 말투에 귀여운 덧니가 있는 책방 주인이 막독 프로젝트가 있다며, 내게 함께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것이 이번 주말이다. 나도 한 때, 고전에 빠져 있었는데, 현재 나의 독서량은 줄었다. 막독에서는 고전을 위주로 토론을 연다. 이번 선정 도서는 독일인 작가의 ‘개선문’이다. 2차 세계 대전이 휩쓸고 있는 유럽에서 주인공은 뛰어난 의사이다. 그는 매우 허름한 병원 환경에서도 과감하게 수술을 한다. 나중에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수술대에서 맞이한다. 그는 그녀 상태가 매우 안 좋음을 안다. 이 이야기를 갖고 막독에서 사람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는지. 


 계단을 올라가며 좌우에 쌓인 책기둥을 훑어봤다. 2층에 도착하자 지렛대 원리로 책이 움직이며 문이 열렸다. 중저음의 비올라 소리가 들리고 실내는 한낮 햇살을 커튼으로 차단해서 엷은 커피색으로 필터를 끼운 것처럼 실내가 가을 분위기였다. 책방 주인장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아니, 내가 먼저 인사를 했는데, 똑같이 인사를 했다. 고서점이라는 말처럼 오래 묵은 책들이 켜켜이 쌓여있거나 꽂혀있었다. 벌써 다들 와서 앉아있다. 아무래도 내가 처음이니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묵언처럼 참가자들이 일제히 쳐다본다. 나는 그들의 눈빛에 고요하게 답한다. 책방 주인이 그런 것처럼. 나도 정직하게. 


"안녕하세요." 


"키티구구시죠? 저는 K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소설가 이름이죠."


"..." 


"제 닉네임은 바나나예요. 키친을 좋아해요." 


"반갑습니다." 


나는 내 닉네임을 영화 배트맨에서 따왔다는 말을 차마 못 한다. 캣우먼처럼 나의 닉네임은 귀여운 고양이 아흔아홉 마리 분신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저는 이 주인공이 의사이기 때문에 이 시대에 먹고 산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반대편에 앨리스라는 닉네임의 여성은 다소 가소로운 표정으로 이 말을 듣고 있다. 그녀는 이 책방 주인과 무슨 관계일까?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에서 이 소설을 다루기보다, 이 의사의 고독과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으면 합니다." 

이 발언을 한 여성은 ‘난쏘공’이 그녀의 닉네임이다.  


"이 주인공이 의사이기 때문에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고 봅니다. 죽음을 항상 목전에 두고 생활을 하고 있죠. 다행히 그렇기에 돈벌이가 힘든 그 시절에 그 사람은 호텔에서 나그네처럼 살아가고, 바에서 술을 마시고 밤거리를 걸어 다닙니다."


"저는 이 주인공 싫어요. 결국 사랑하는 여인이 죽는 순간을 보고 말잖아요." 앨리스의 발언이다. 

그녀의 발언은 입안에서 톡톡 튀는 사탕처럼 분위기를 띄운다. 


"새로 오신 키티구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죠?" 


나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한다. "저는 이 의사가 외로움에 사는 사람 같아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 외로움이 온전히 그의 모습으로 드러나서 결국 여자 주인공이 매료되잖아요." 

모두들 조용해진다. 갑자기 조용해지는 막독 모임에 나는 노래 한 소절을 머릿속에 튼다.  


"그렇다면 외로움이 인생에 필요한 요소라는 것입니까?" ‘반 고흐’라는 닉네임의 남자이다. 


"전 외로운 남자 싫어요. 남자가 재미있어야지... 외로우면 심심하지 않아요?" 깜찍한 앨리스. 


귀여운 덧니의 정직해 보이는 책방 주인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작가가 진짜로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던 것을 여러분도 알고 계시죠. 게다가 2차 세계 대전이 휩쓸고 있는 유럽, 그 속에 파리는 무척 고독한 도시였을 거예요. 주인공이 다리에서 만난 여자와 밤거리를 걷다가 자신의 호텔로 데려가는 것은 외로운 한 사람으로서 최선의 선택이었을 듯합니다." 


"저는 이 소설 안 읽었어요." 구석에서 모자를 쓰고 있는, 닉네임을 모르는 멤버이다. "저는 이 소설이 이해가 안 돼요. 왜냐하면 저는 의사를 신뢰하지 않거든요. 의사는 매우 감정이 건조한 인간들이에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사랑을 하고, 외로움을 타고 밤거리를 걷는다고요? 완전 거짓 이야기예요."


 첫 막독 모임은 70분이었다. 이 모임의 독특한 점은 토론 시간이 탄력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 70분. 다음에 40분. 세 번째에는 80분. 마지막에 30분이다. 두 번째 토론은 한 줄로 표현해보는 시간이다. 한 책으로 여러 번에 걸쳐서 토론을 한다. 네 차례에 걸쳐 한 권을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격주로 모이는데, 독서 시간이 넉넉하다. 토론에 참석하다가 토론으로 책 내용이 이해가 되면 독서를 시작하는 멤버도 있다고 했다.  


 소설 ‘개선문’ 모임이 끝나고 책방에서 조촐하게 간식을 즐겼다. 다들 자신이 좋아하는 간식을 챙겨 왔다. 스콘과 쿠키는 ‘난쏘공’이 갖고 왔고, 차는 책방 주인이, 앨리스는 딸기와 바나나를 먹기 좋게 싸왔다. 나는 젤리를 유리병에 담아 갔다. 다들 품 속에서 간식을 꺼냈는데, 7명이 둘러앉은 탁자 위에 한가득 채울 수 있었다. 앨리스는 내 예상대로 책방 주인 곁에서 쫑쫑쫑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책방 주인은 귀여운 덧니를 살짝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으며 들어주고 있었고, 나는 건너편에서 반 고흐, K와 함께 따뜻한 보이차를 마셨다. 반 고흐는 과묵했고, K는 수다를 떨었다. 남자의 수다는 여자들의 수다처럼 쉴 새 없고, 끝이 없다. 그래도 K의 수다에 주제가 있어서 괜찮았다. 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차례차례 이야기하는데, 책, 화분, 연극, 그리고 그라폴리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라폴리오’가 뭐예요?" 


"아, 이미지예요. 컴퓨터로 보는 이미지. 손으로 직접 그리거나 컴퓨터 기능을 통해 그리는 거죠. 언제 제가 키티님에게 제 그라폴리오를 보여주겠습니다."


반 고흐는 조용히 차를 마신다. 꽤 오랫동안 나는 반 고흐와 K 사이에서 중심잡기를 한다. 하나의 에너지 파장을 만드는 것이다. 마치 K가 이야기하는 것이 나를 통해 반 고흐의 귀로 가는 것처럼 상상하라, 나는 가운데에서 여과 장치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자꾸 책방 주인에게 눈길이 갔다. 내가 앨리스이면 어떨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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