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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티 구구 Apr 04. 2021

키티 키티 키티

3장

 나는 아침 6시 일어난다. 알람 소리는 놀라서 깨지 않게 부드럽게 시작해서 조금씩 생기가 더해지며 나를 깨운다. 나는 이부자리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다. 몸이 밤새도록 고정 자세에 있었기에 풀어줘야 한다. 나는 잠을 자는 동안 고요해서 좀처럼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무릎을 좌우로 기울이며 허리를 풀고, 머리를 좌우로 굴려주어서 목을 푼다.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켠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며 전신을 따뜻하게 한다. 알람이 멈춘다.

 부엌으로 가서 간단한 아침을 차린다. 냄비에 끓여놓은 감잣국이 있다. 감자와 양파와 소금 조금을 넣고 팔팔 끓인 국은 맛이 고소하다. 밥을 면기에 넣고 감잣국을 부은 다음, 무짠지와 멸치조림을 올린다. 혼자 살면서 끼니마다 밥과 반찬을 새로 하는 것은 무리이다. 식성을 바꾸는 것이 더 편하다. 심심하게 먹는 법. 적은 가지 수의 반찬에 국밥이나 볶음밥. 이렇게 식성을 바꾸고 나서 끼니를 건너뛰는 횟수가 없어졌다.

 

 아침을 먹고 화장을 하고 집 밖으로 나오면 7시가 조금 넘어있다. 출근 시간까지 2시간이 남았다. 나는 여유 있게 걸어서 출근한다. 오늘도 청바지 차림이다. 어떤 옷에나 잘 어울리고, 운동화가 잘 어울리며, 사계절 어느 때나 연출이 가능하다. 청바지를 입으면 대학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패션을 공식화하지 않고, 그냥 즐기는 기분. 움직임이 자유로워서, 스무 살 적으로 돌아간 착각이 좋다. 긴치마도 좋아한다. 소재가 좋은 치마는 다리에 감기는 기분이 황홀하다. 다리선이 돋보이는 건 발레리나가 토토 아래 다리선을 보여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긴치마는 은은한 커튼을 단 큰 창처럼 빛이 부드럽게 투과되듯이 내 다리를 우아하게 감싸며 가볍게 하늘거린다. 두 패션 아이템은 내게 콧노래를 부르게 한다.


 항상 걸어가는 길이다. 신호등을 여러 개 지나서 이 길에 다다른다. 플라타너스가 통통한 기둥을 보여준다. 봄과 여름에는 잎사귀가 무성하다. 별 모양의 잎은 두껍다. 기둥이 높아서 손에 닿지 않지만, 가을에 떨어진 낙엽을 밟을 때 바스러지며 내는 소리는 시원한 생수를 마시는 것처럼 속을 뻥 뚫리게 한다. 지금은 겨울이라 나뭇가지가 단단해 보인다. 눈이 내리면 모던한 분위기를 낸다. 플라타너스는 다른 나무와 다르게 선이 단순하다. 이 길은 인도가 넓다. 자전거와 보행자가 사이좋게 다닐 수 있다. 나는 플라타너스를 한 그루, 두 그루, 세 그루... 계속 세어보다가 항상 끝까지 셈을 하지 않는다. 플라타너스가 있기에 아름다운 길. 눈길을 하나씩 주면, 내가 청바지를 입은 것처럼 얘네들도 젊음을 만끽한다.  


 45분을 걷고 나면 커피숍이 보인다. 주인이 부지런해서 아침 7시면 좋은 향의 커피를 뽑아낸다. 주인은 손짓을 한다.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는 시각 장애인이다. 처음 그가 눈을 감고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길래  참 특이한 노하우를 길렀네하고 생각했다. 어느날 그가 인사하고 손짓하고 말을 걸 때 눈을 감고 있어서 물어봤다. "사장님, 눈 감으면 더 편하세요?" 아저씨는 시각 장애인으로서는 매우 자유롭게 몸을 움직였고, 척척 알아서 무언가를 했다. "아가씨 목소리 좋네. 목소리로 먹고살지?" 나를 알아챈 사람은 드물다. 아저씨는 나처럼 눈 감고 30년쯤 살면 다 알아차리게 된다고 말했다. 아저씨는 기타도 잘 쳤다. 하루는 비가 내리는 날 택시로 와서 커피를 주문했다. 비 내리는 날 첫 손님이라고 기타를 들려주었다. 여러 곡들을 메들리로 들려주는데, 자신의 연주법으로 재해석한 것 같았다. 손가락이 힘차게 움직이는데, 기타 소리가 거칠지 않았다. 소리가 멈추자 아저씨는 기타를 안고 빙그르르 돌았다. 태엽 인형 같았다. 아저씨가 말했다. "내가 기타를 칠 때 하는 거야. 이것이 내가 기타를 알아가는 방법이지. 기타는 춤을 추고 싶어 하거든." 나는 오오오 하고 탄성을 질렀다.


 아침 9시. 회사에 도착한다. 지난 주말 한껏 충전되어 있는 나는 이제 30분 동안 책을 읽는다. '개선문'은 중학교 때 친구가 빌려줘서 읽었다. 그때는 소설 분위기가 낭만적이라고만 느꼈다. 전쟁 중이라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주인공 의사가 외로워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말투와 행동이 멋있어 보였다. 조금 쓸쓸하지만, 감정 표현이 풍부한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라비크는 바에 앉아있다. 그의 맞은편에 그와 한 때 동거했던 여배우가 앉아있다. 그녀는 돈이 없고, 암에 걸렸다. 라비크는 그녀가 아무 말 안 해도 수술을 해 줄 생각이다. 하지만 이 여배우는 돈을 지불하고 싶어 한다. 만약 수술이 시작되었는데 상태가 나쁘면 그녀는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지친다. 돈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무심하게 내비친 희망 때문이다. 그 희망을 저버리는 의사가 되긴 싫은 것이다.


 9시 반. 사물실이 꽉 찬다. 상담원들은 각각 다른 옷차림이지만, 말투는 비슷하다. 나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는 목소리를 가꾼다. 악기도 노래도 말도 중요한 것은 소리이다. 좀 전에 읽은 소설을 생각한다. 집중과 흐름. 두 가지 에너지가 있다. 어떤 소설이 고전이 되고, 유명해진 것은 잘 쓰인 광고 때문이 아니다. 독자를 흡입하는 집중력, 그와 함께 흐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신호음을 온으로 켠다. 시작과 끝 사이에 소리와 흐름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갖고 있는 매력이다. 시작과 끝 사이에 집중하게 만드는 문체와 이야기를 끌어내는 작가의 상상력은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갖고 있는 매력이다. 영화는 좀 다르다. 영화는 대사, 소리, 이미지이다. 영화는 매우 빠르게 변화해서 짧은 시간에 기술이 발전했다. 하지만, 좋은 영화에는 원작 소설이 있고 좋은 시나리오가 있다. 뚜뚜뚜뚜 "안녕하세요. 상담원 이진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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