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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티 구구 Apr 04. 2021

키티 키티 키티

4장

 이번 주말은 막독에 참석을 못한다. 부모님을 만나기 때문이다. 두 분은 퇴직하시고 시골에서 산다. 부모님을 만나면 함께 식사를 하고, 가까운 산에서 산책을 한다. 전원생활은 나에게는 지루하다.

아빠가 나를 부르시며 손짓한다. 내가 사는 도시로 나를 만나러 온 날에는 항상 중국집에 간다. 희래등이라는 이름의 중국집은 오래되었다. 건물은 우아하게 물결무늬로 겉면이 디자인 되었다. 안에 들어가면 커다란 탁자가 홀에 있고, 입식이다. 우리는 미닫이 문이 있는 객실로 들어선다. 이 중국집은 아빠는 짜장면을 좋아해서, 엄마는 탕수육을 좋아해서 오는 곳이다. 나는 둘 다 괜찮다. 아빠는 엄마가 탕수육을 고르면 더 비싼 요리를 시키라고 하지만 엄마는 항상 탕수육 중을 고른다. 나는 전화상담원 이름과 다르게 본명에 '순수할 순 (純)'을 쓰는데 그래서 상담원 이름을 지을 때, 순수함이 '참 진(眞)'과 통한다고 생각했다. 내 본명은 순수할지 모르지만, 나는 키티구구라는 아이디처럼 99개의 다른 모습을 가져서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모르게 살아가고 싶었다. 변화무쌍한 모습을 지닌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 아닐까. 요즘 시대에 순수해서 참과 거짓으로 이분법을 짓는 사고방식을 갖는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능력도 없을 것 같다.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를 아는 것은 괴로운 일일 뿐. 차라리 다양한 상황에서 남들이 나를 간파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살아가기가 편할 것이다.

 

 부모님 분위기가 이상하다. 뭔가 내 앞에서 조용히 말을 주고받는다. "순영아. 너 괜찮은 남자 한 명 소개해줄까." 엄마는 차분하게 나에게 물어본다. 엄마가 차분하면 나는 더 긴장한다. 엄마는 조금 무심하고 급하게 말하는 모습이 본모습이기에 감정이 제어된 표현에 나는 제대로 말을 못 한다. 나는 짜장면을 빠르게 먹는다. 어차피 내 의견은 먹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랜만에 선을 볼 것이다. 내가 선을 본 마지막이 29살이었다. 벌써 6년 전이다. 선을 본 남자와는 잘 진행되어 연인이 되었지만 남자는 멀리 광주에 있었고 나는 춘천에서 살았다. 겨울, 봄, 여름을 지내고 장거리 연애는 너무 힘들다고 둘은 결론 내렸다. 그 남자가 먼저 힘들다고 말을 꺼내서 열심히 수긍하며 들었다. 남자는 연애는 그만하고 결혼을 하자는 것이었는데 나는 달랐다. 난 오랫동안 친구로, 그 다음은 연인으로 지내다가 결혼을 하고 싶었다.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다. 남자는 평소에 내가 오빠라고 부르는 걸 듣고 싶어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대화를 나누고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광주로 돌아갔다. 나도 그 남자도 연락을 안 했다. 

 친구는 "그게 문제네. 너는 친구, 연인, 부부의 단계를 놓고 그를 만나고 있었는데, 그는 여자로 너를 만난 거지."라고 말해줬다. 친구의 설명을 듣자 나는 그를 쉽게 잊을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이상형이란 그랬다. 나의 이성을 뚫고 들어올 정도로 매력이 있는 남자. 아니면, 오랜 시간 친구로 있어주어서 나의 마음이 움직이는 남자. 친구를 만나고 헤어지며 나는 어쩌면 연애 감정이 없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열아홉 대학 1학년 시절에 처음 미팅에 가서, 나는 상대 남자들 중에 훈남과 짝이 되었다. 여자들은 자기 소지품을 모아서 탁자 위에 올렸는데, 그 훈남이 내 삐삐를 선택했다. 나는 많이 긴장했다. 잘 생겼다는 조건은 사람을 긴장시키는 걸까. 남자는 내 전공인 바이올린에 대해 물었는데, 나는 질문을 받고, 끝날 때까지 계속 전공에 대해 이야기했다. 말을 하며 나는 서서히 지쳤고 지루해졌다. 그런데도 그 훈남은 냅킨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나는 미팅이 끝나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생각했다. '앞으로 미팅 안 해.' 그 번호를 나는 미팅을 간 다른 여자 동기에게 주었다. 동기는 내게 무슨 얘기를 했냐면서 물어보았다. 여러 명의 미팅 커플 중에 나와 그 훈남이 가장 잘  이야기를 나누었다며 미팅 간 동기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매우 힘들었다. 나는 그 훈남이 하나도 편하지 않았다. 동기는 내게 그 훈남과 커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훈남과 그녀가 잘 되기를 바랐다. 

 

 그때부터 15년이 지났지만 나는 변하지 않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삶을 알게 되었을 뿐. 삶에 대한 나의 자세는 여전하다. 나는 친구가 연인이 되고, 연인이 부부가 되고, 그래서 부부가 되면, 친구이자 연인인 부부가 되야한다고 정의한다. 나는 편안하다는 것을 '몸이 느슨하고, 졸린 듯한, 혹은 익숙해서 생각하지 않고 있는'이라는 정의와는 다르게 생각한다. 그건 편안이 아니고 무료한 것이지. 편안하다는 것은 조깅을 10킬로미터 뛰고 나서 호흡을 가를 때,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순간과 같다. 카타르시스와도 다르지 않다. 기승전결이 있고, 힘에 강약이 있듯이 편안함은 그런 에너지의 흐름 속에서 쉼표와 같은 존재이다. 인생이 느슨하고, 익숙하기만 하면 금방 늙을 것이다. 그 시절 나는 고생을 넘어야 할 문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상을 쟁여두기만 했지 그걸 컨트롤하려고 하지 않았다. 난 자유롭게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하면 된다는 것을 몰랐다. 20대의 내 모습은 목표도 열정도 빗나가버린 것 같다. 분명한 목표가 있고, 분명한 나의 지점이 있었다면 뛰어들었을 텐데... 나의 20대는 결승선이 없는 극기 훈련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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