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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티 구구 Apr 04. 2021

키티 키티 키티

5장

-뭐 해?

-잠깐 쉼.

-ㅋㅋㅋ 난 간장 비빔국수 뚝딱 해치움. :)

-난 또 순두부찌개 먹었당.

-우리 이따 영화 한 편... 콜?

-무슨 영화? 난 HER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어.

-ㅋㅋ 넌 너무 낭만적이야... 한국 영화인데, 연하랑 연상 커플!

-테오도르랑 사만다만 할까?

-요즘 대세라니...

-그려. 그럼 떡볶이 내가 쏘고, 넌 영화 쏘기. ^0^


 은지는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에 타고났다. 매일 점심 메뉴를 새롭게 바꿔가며,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은지는 노는 방법에도 도가 텄다. 스마트 폰 게임을 하며 레벨을 한 올리더니, 이번에는 인스타그램에 고양이를 찍은 사진을 올린다. 그러다가 새끼 고양이가 자신을 쫓아왔다고 했다. '엠버'라는 이름처럼 털이 고운 색깔에 꾹꾹이를 하는 발바닥은 연한 분홍빛이었다. 나는 은지가 고양이 엠버를 키우는 모습을 보며 부러웠지만, 내게 그 능력이 없다. 나는 관심을 쏟는 지점이 은지와는 달랐다.


 은지는 떡볶이를 먹으며 요즘 웹툰이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눈을 크게 뜨고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그 남자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알아?

-글쎄?

-여자의 목젖이야.

-웹툰이면 만화로 그린 거잖아.

-맞아. 목젖이 무슨 닭벼슬같다니.

-그 웹툰 작가 수상하다. 제목이 뭐라고?

-'달콤한 그 남자의 손가락'

-그럼 그 남자의 성감대는 손가락이라는 거야? 차라리 악기를 다루지...

-요즘 그 웹툰에 빠진 여성 팬들이 많아. 나를 봐 나를!

-난 그다지 별로지 않을까 싶은데.

-너 너 너, 또 차별한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만큼 흥미 있다니.

-차별이 아니야, 어떻게 그 심플한 그림에 그런 메시지를 주는 스토리를 실을 수 있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요인이 많다고 웹툰은.


 은지와 나는 떡볶이와 순대와 모둠튀김을 시키고, 쿨피스까지 마신다. 매운 떡볶이로 입안을 얼얼하고, 뜨겁게 한 후에, 고소한 순대와 튀김을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고, 달콤 시원한 쿨피스로 마무리한다. 이곳은 떡볶이 공식화에 성공한 셈. 은지와 나는 마지막 쿨피스에 압도당했다. 음식 맛이야 다른 곳도 좋다. 그런데 매운 음식을 먹고, 얼얼한 입안을 정돈해주는 해법을 쿨피스로 정한 곳은 이 곳이 처음이다. 매장은 독특하다. 천장이 마감이 안 되었고, 파이프와 에어컨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지하 클럽 분위기이다. 벽은 까맣게 칠해져 있는데, 사진을 찍어서 작은 액자를 걸어놓았다. 샤크를 이미지로 내세워서 우리를 얼려버린다.


 우리는 웹툰 얘기에 열을 올리다가, 영화 시작하고 10분 후에 들어왔다. 어두운 상영관에 앉아있는 관람자는 커플이 대부분이다. 자리를 찾고 앉으니 스크린에서 어떤 남자가 넓은 마루에서 춤을 추고 있다. 남자는 학생으로 보인다. 남자는 배우이기 전에 무용수인가? 점프를 정말 잘한다. 무릎을 리드미컬하게 접었다 피며 움직이더니, 발끝에 힘을 모으고 상체의 무게를 호흡으로 잡고 하체의 탄력을 이용해 점프를 한다. 주로 점프를 하며 춤을 추는데, 곧 문이 쾅 열리더니 나이 많은 여자 선생님이 들어와서 남학생을 부른다. 무성영화로 처리되는 장면이 곧 흑백에서 칼라로 바뀌며 시간이 바뀐다.

 -은지야, 나 속이 안 좋아.

 -화장실 가면 되겠어?

 -응. 다녀올게.

 

 낮에도 얼큰한 순두부, 저녁에도 매운 떡볶이를 먹었더니 이런가 보다. 화장실 옆에는 나를 울린 영화 HER 포스터가 여전히 있다. 나는 남자 주인공 눈이 남쪽바다의 연한 파랑 색깔-가끔 에메랄드 빛깔과 헷갈린다. 분명 어디선가 연한 파랑 빛깔로 사진이 나온 에멜드를 본 기억 때문에...-인 것을 오래도록 쳐다본다. 남자의 표정은 슬퍼 보이면서도, 꿈꾸는 느낌을 자아낸다. 화장실에 다녀온 나는 급한 불을 끄자, 다시 상영관으로 들어가기 주춤해진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HER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은지야~ 나 집으로 갈게... 그냥 가고 싶어. ㅠ.ㅜ

은지는 영화에 집중했는지, 카톡 답장이 없다.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서 내 방으로 향한다. 나중에 은지에게 맛있는 거 사주며 사과해야겠다. 그리고 영화 내용도 물어봐야지. 걸으며 HER를 생각한다. 사만다라는 이름을 정한 OS 체계를 스마트 폰과 같은 장치에 넣고 다니며, 대화를 나누고, 조언을 하고, 함께 사랑을 나눈다. 그 영화의 포인트는 긍정적이라는 점이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조언을 하는 사만다와 테오도르는 흔히 볼 수 없는 커플이다. 그런 성격의 연인이 된다면 내 이상의 친구, 연인, 부부가 될 수 있다.


 방에 들어온 나는 '개선문'을 펼친다. 고교 시절에 내가 본 주인공 라비크의 모습은 외롭지만 멋있어 보였다. 지금은 외롭고 처절한 처지가 눈에 보인다. 그는 자신의 외로움과 맞대결을 하면서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낸다. 주로 전쟁으로 황폐화된 파리에서 아이를 갖게 된 여성들이다. 나의 고교시절 이해력은 이 여성들에게는 별로 눈길이 안 갔다. 그 시절 나는 단정하고 모범적인 학생이었고, 내가 받아들였던 것은 소설 속의 배경 묘사와 라비크가 담배를 물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 정도였다. 아이를 지우려는 여성들은 그 시절 내 이해력과 상상력에서 벗어나 있었다. 아는 만큼 이해하는 것. 그 말을 곱씹어 본다. 왜 이 소설이 고전이 되었는지 따진다면 이 소설 배경과 주인공이 사실에 바탕을 두었다는 점이다. 그뿐이라면 소설이 아니고 논픽션이라도 다 고전이 된다는 말인가. 아니다. 소설은 인물을 통해 독자에게 감정이입을 가져온다. 내가 그 여성들이 되고, 내가 라비크가 되어 담배를 물고 이야기를 나눈다. 허구 속에는 진실이 담겨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독서 토론을 하고 리뷰를 쓰고, 감동을 받는다. 다음 막독에서는 좀 더 깊숙하게 멤버들의 생각을 귀 기울이고 싶다. 우리 모두 이 시대를 겪어보지 못했지만 작가는 이 소설을 남김으로써 그 시대의 사회,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살아서 숨 쉬는 역사이다. 영화와 소설의 다른 점을 떠올려본다. 영화는 배우가 연기한다. 소설은 작가의 대담한 어조를 글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노하우로 보여준다. 아이러니, 은유, 묘사, 그리고 상징이 될 수 있는 이미지와 소재이다. 영화 티켓 한 장의 값이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책 한 권을 따라잡고 있다. 영화는 대략 2시간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본다. 소설은 대략 1주일 동안 2시간 정도 걸려서 읽을 수 있다. 둘은 경쟁을 하는 걸까. 윈-윈을 하는 걸까.


-응

-야, 너 화장실 갔다가 얼루 간 거야?

-갑자기 기분이 그래서 집으로 왔어. 영화는 재밌었어?

-처음에 춤추던 남자 있지. 그 애 참 연기를 춤으로 잘하더라. 처음에 나온 그 나이 많은 교수를 사랑해서, 춤을 전공으로 한 거야. 둘이 사귀다가, 아냐 교수가 갖고 놀다가, 결국 차 버리는 거 있지.

-교수가? 왜? 춤도 잘 춘다며...

-그 교수는 예술을 꿰뚫어 보는데, 이상이 너무 높아서 둘이 멋진 작품을 만들어 발표하고는 그 애를 차 버려. 그리고 새로 들어온 매력 있는 남학생과 다시 새 작품을 만들더라고.

-근데 교수도 남자 아니었니?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뭐어 너 그런 말 하지 마. 그렇게 괜찮은 남자애를 차 버려?

-야, 그건 예술에 몸을 담아봐야 알 수 있는 문제라고. 예술이 인생보다 멋지다니.

-넌 아무튼 눈이 너무 높아.

-또 그 소리. 난 진리를 말한 거야.

-너 나중에 나 영화 보여줘야 해.

-몰라. 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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