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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짝 Oct 19. 2020

Day 6-3. 아빠는 지금 나이가 황당하다고 말했다

서른여덟, 아빠와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럿 로스(Lert Ros)


'밤잠을 이렇게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정도로 기분 좋게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타페 게이트(올드시티 동쪽 문) 근처에 있는 '럿 로스'에서 약간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약간 이른 저녁'의 이유는 온전히 식당의 유명세 탓이다. 태국 북부 지방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럿 로스는 한국인을 비롯한 다양한 국적의 해외 여행객은 물론 현지인에게도 인기가 많다. 예전에 아내와 치앙마이에 왔을 때 저녁 먹기 딱 좋은 7시쯤 왔다가 대기줄이 너무 길어 낭패를 본 후로는 이곳을 찾을 때 적어도 여섯 시가 되기 전, 가급적이면 다섯 시 반 까지는 도착해서 밥을 먹는다. 매일 같이 피크 타임에 대기줄이 긴 것인지, 다섯 시 반에 도착하면 반드시 기다리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지만 확률을 높이는 길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다섯 시 반이 조금 넘어 식당에 도착하고 보니 다행히 빈 테이블이 여럿 있었다.


럿 로스의 대표 메뉴는 큼지막한 생선을 통으로 구운 '쁠라 파오'라는 생선 소금 구이다. 이곳에 올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식당 입구에 있는 숯불 화로 앞에 서서 생선과 고기를 굽고 있는 나이 지긋한 식당 주인의 모습이다.



쁠라 파오라는 외래 명칭이 생소할 뿐이지 소금 친 생선을 숯불에 구운 요리라서 처음 먹는 사람도 별다른 이질감 없이 친숙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열대 민물고기를 구운 것이라는데 어종의 특징인지 워낙 잘 구워서인지(아마도 둘 다) 생선살이 굉장히 촉촉하고 부드러워서 '괜히 줄을 서서 먹는 게 아니구나' 실감하게 만든다. 생선 요리라면 회부터 구이, 매운탕까지 가리는 것이 없는 아빠도 쁠라 파오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나이트 바자(Night Bazaar)


타페 게이트에서 동쪽으로 1km가량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치앙마이 나이트 바자는 1주일에 한 번 열리는 주말 야시장과는 달리 매일 밤 열리는 상설 야시장이다. '나이트 바자'라고 하면 같은 이름이 붙은 특정한 구역의 야시장을 뜻하기도 하지만 보통의 경우 주변 2차선 도로의 좌, 우측 인도 위에 줄지어 선 노점과 도로에서 가지를 치고 뻗어 나간 몇몇 골목의 야시장을 통칭한다. 나이트 바자가 있는 창클란 거리 일대는 야시장뿐만 아니라 큰 호텔과 식당, 술집이 밀집해 있어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의 올드시티와는 딴판으로 밤마다 불야성이다.
 

나 : 아빠, 이제 한국 돌아갈 때까지 더 이상의 시장은 없어. 지금 가는 야시장에서 엄마 선물 골라야 해.
 

아빠 : 알았어~


혹시나 아빠가 이번에도 엄마 선물 사는 것을 다음으로 미룰까 싶어 단단히 일러두었다.


나이트 바자 일대의 야시장들은 파는 상품과 분위기가 두루 비슷하면서도 장소와 길의 너비, 시설에 따라 움직이는 맛이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도로 양쪽 편의 인도를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상점들은 가뜩이나 상점 때문에 좁아진 인도를 오가는 사람들과 구경하는 사람이 엉켜 혼잡하기 이를 데 없는 반면, 도로에서 가지를 친 길 가운데에서도 꽤 널찍한 길에 들어선 '아누산 마켓'은 우리나라 재래시장 중에서도 구획 정리와 정비가 잘 되어 있는 곳처럼 쾌적해서 어지간히 사람이 몰리지만 않으면 붐비는 느낌이 확실히 덜 하다.


아누산 마켓


처음부터 나이트 바자의 모든 야시장을 둘러볼 생각도 없었을뿐더러 되도록이면 혼잡한 곳을 피하고 싶은 아빠와 나는 곧장 아누산 마켓으로 향했다. 아누산 마켓은 하늘을 가린 아치형 아케이드 두 개가 좌우로 나란히 이어져 있는 널찍한 폭에 길이도 300미터는 족히 되는 크기의 야시장이다. 시장 어귀에서 끝까지 오른쪽 아케이드의 양 옆 점포를 한 번 훑고 다시 끝에서 입구까지 나오면서 왼쪽 아케이드의 점포를 훑으며 돌아오는 데만 해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곳 야시장도 치앙마이를 찾는 여행객을 주요 대상으로 하기에 이전에 갔던 선데이 마켓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기념품과 액세서리, 수공예품이 판매 상품의 주를 이룬다.


저녁 7시가 되지 않은 조금 이른 시각에 도착해서 아직 장사를 시작하지 않은 노점이 띄엄띄엄 있었지만 그만큼 손님 수도 많지 않아 더 느긋하게 아빠와 시장을 돌았다. 이번에도  엄마 선물로 사갈 만한 것을 아빠에게 여럿 추천했지만 영 성과가 없다. 시장 입구의 반대편 끝에 도착할 때까지도 아빠는 빈손이었다.



로드 사이드(Road side)


한쪽 아케이드의 끝까지 시장을 구경하고 나서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점포들이 영업을 시작할 때까지 기다릴 요량으로 아누산 마켓의 반대편 어귀 건너에 있는 '로드 사이드'라는 로드펍에 들어가 맥주와 양파 튀김을 주문했다. 나무 기둥 위에 지붕을 얹은 실내 공간과 낮은 울타리 안쪽에 있는 야외 공간 중에서 아빠와 나는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나무 울타리 위에 드문 드문 달아 놓은 갓등이 어두워진 바깥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어 마음에 들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 짧은 사이에 모기가 종아리를 물었다. 늘 휴대하고 다니던 모기기피제를 꺼내 팔, 다리에 뿌렸다. 모기기피제의 효과가 강력한 덕분에 뿌리고 난 후에는 모기에 물리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모기기피제 뿌리는 것을 깜빡하면 팔, 다리 온몸에 아주 난리가 난다. 여행 초반에 편의점에서 구입한 모기기피제 스프레이가 내내 큰 일을 하고 있다.  


나 : 이 가게 되게 운치 있지 않아? 불도 예쁘게 켜 있고, 길가에 있고.


아빠 : 그렇네.


나 : 이렇게 보니까 우리 되게 많이 걸어왔잖아.


아빠 : 엄청 걸어왔지.


나 : (휴대폰 앱을 보며) 우리가 오늘, 16000보에 10.7km. 평균 걸었어. 10킬로는 걸어야지, 여행 오면.


아빠와 나는 어제 저녁을 생각하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분위기가 다시 부드러워졌다. 잠시 서로 말이 없는 사이에 흐르는 공기조차 어제와는 결이 다르다.
 

덕분에 아빠는 말수가 원래대로 늘었다.




"황당하지 임마"


말수를 회복한 아빠와 나는 평소처럼 별의별 주제의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꺼내며 대화를 이어갔다. 치앙마이에도 중국, 일본 상품과 상점이 많은 것 같다는 얘기를 하다 도로에 일본 차는 많은데 한국 차는 거의 못 봤다는 말을 하고, 그러다 우리나라 자동차를 많이 볼 수 있는 해외 지역이 어느 곳인지 떠올려 보고 별안간 인천에 있는 폐차장에서 해외로 수출되는 중고차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식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친척들 근황이며, 예전에 살던 동네 재개발됐다는 소식까지.


그러다 하던 말을 멈추고 아빠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 하나를 꺼냈다.


나 : 근데 아빠는 몇 살까지 살았으면 좋겠어? 그런 생각은 없어?


아빠 : 뭐... 사는 데까지 살다가 하나님이 오라면 가는 거지. 근데 아프지 않아야 해. 그게 제일 크지.


나 : 요새 어디가 아파?


아빠 : 주변에 아픈 사람들을 보니까…


나 : 검진을 자주 받으라구. 피검사는 아빠 경우에는 6개월에 한 번은 해야 돼. 간수치는.


남동생 둘을 모두 간암으로 잃은 아빠는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데 지방간이 있을 정도로 유전적으로 고위험군이다. 다행히 아빠는 때마다 알아서 혈액 검사, 초음파, 내시경 검사를 잘 챙겨 받고 있다.


나 : 아빠는 아빠 나이가 실감이 나?


아빠 : 황당하지 임마.


나 : 황당해?


아빠 : 아직도 50대 같은데 기분이.


나 : 정말 그게 황당하다는 표현이 돼?


아빠 : 그럼. 엊그저께 퇴직한 것 같은데 벌써... 내일모레 칠십이라니.


아빠 나이가 실감이 나느냐는 물음에 아빠가 툭 내놓은 대답. 치앙마이에서 아빠가 한 모든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 황당하지 임마. 아빠는 스스로 느끼기에 그렇게 황당한 나이가 되었다. 황당할만큼 순식간에 나이를 먹는 것. 늙음이란 그런 것일까.



아들의 흑역사


부모님이 학자금 대출받은 돈으로 대학을 다니는 주제에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용돈을 벌기는커녕 공부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던 나는 1년 동안 캐나다에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느라 휴학을 하고, 구멍 난 학점을 메우느라 한 학기를 더 다닌 끝에 남들보다 늦은 스물아홉에 졸업과 취업에 성공했다.


나 : 아빠, 나 회사 관둘 거야.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돈 벌겠다며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1년 반 만에 그만두고 나온 게 서른 살 여름. 처음에는 호기롭게 다른 직종의 취업 문을 두드렸지만 결과는 항상 '안타깝지만', '죄송하지만'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섞인 이메일로 끝났다. 거기에 또 다른 안 좋은 일이 두어 가지 겹쳐 일어나자 속된 말로 멘탈이 나가버렸고, 그로부터 1년 가까이 아빠와 엄마는 숨 막히게 방황하는 다 큰 아들의 꼬라지를 모조리 지켜보아야 했다. 술을 퍼마시다 새벽에 들어와 거실 소파에 엎어져 있는 아들을 보며 출근한 횟수만 해도 열 손가락, 발가락이 모자랄 것이다. 못난 짓도 많이 했다. 그런데 당시 아빠는 나에게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 뭘 할 거냐고 물은 적은 있어도 대답 없이 짜증만 내는 나를 혼내거나, 다그치지 않았다.


나 : 아빠, 그때 (회사 그만두고 정신 못 차릴 때) 내가 영영 그럴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


아빠 : 아유, 그때는 황당했지 뭐.


황당하다는 말을 여기서 또 듣는다.


나 : 황당했는데 내가 영영 그럴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


아빠. :지가 알아서 뭘 하겠지 생각했지 뭐. 그 요새 애들 자꾸 망가지잖아, 그렇다고 다그치고 그러면 더...


나 : 그런데 그건 되게 어려운 거 같애. 왜냐면 다그쳐서 엇나갈 수도 있지만 냅두면 계속 그럴 수도 있잖아.


아빠 :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판단하냐구. 내비려 둬고 그렇고 다그쳐도 그렇고. 하튼 본인이 알아서 터득하고 본인이 알아서 찾아가야지 곁에서 이렇다 저렇다 한다고 될 그게 아니란 말이야. 사람이 아예 안 될 사람 같으면 할 수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지가 살려고 어디 가서 부대껴 보고 그다음에 자기가 찾아가는 게 그게 올바른 사람인 거고 그게 아니면 그 사람은 이거 해도 저거 해도 뭘 해도 못하는 사람이야.


나 : 그래서 아빠가 생각하기엔 내가 첫 직장 그만두고 여하튼 지금까지는 잘 풀렸다고 생각하잖아.


아빠 : 지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니까 뭐.


두 번째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 내 이름으로 처음 책이 나왔을 때 아빠는 여기저기 참 많이도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중에는 정년퇴직 후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회사 동생도 한 분 있었는데, 괜히 사이가 멀어져서 서먹한 그분한테까지 아들 책 낸 거 자랑을 하다가 "형은 지금 나한테 책 팔려고 전화한 거야?"라는 말을 듣고는 지금까지 다시는 연락을 안 하고 있다는 말을 치앙다오에서 산책하던 중에 아빠에게서 들었다.


나 : 아빠, 나 회사 그만뒀어.
 

치앙마이에 오기 다섯 달 전, 장가까지 보낸 아들이 직장을 관두고 파트타임 재택근무로 돈벌이를 하며 글을 쓰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을 때 아빠는 또 한 번 황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해도 또다시 그때처럼 방황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건 내가 그때보다는 조금 더 단단해졌기 때문이며, 방황하는 아들을 묵묵히 지켜보기에 아빠는 그때보다 많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아빠와 내가 서로 나이를 먹어가면서 언제부턴가 아빠는 나에게 '힘들다'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쯤에 나는 아빠에게 그런 얘기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툭툭' 타고 돌아가는 길


로드사이드에서 나와 아누산 마켓 입구까지, 아까는 지나오지 않았던 통로를 걸으며 상점을 구경했다. 아빠는 나무로 만든 접이식 과일 바구니를 하나 샀지만 끝내 마음에 드는 엄마 선물은 고르지 못했다. 지금부터 남은 일정에는 쇼핑할 만한 곳이 없다고 누차 얘기했는데도 아빠는 어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지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도 상관없다는 눈치다. 공항 면세점을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고 있는 건지 정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안 사도 그만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아누산 마켓 입구에서 호텔까지는 ‘툭툭’을 타고 가기로 했다. 뒷자리에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삼륜 오토바이 택시 툭툭은 동남아시아 국가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이지만 아빠와 툭툭을 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길가에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툭툭 가운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기사님에게 호텔 위치를 휴대폰 지도 앱으로 보여주고 본격적으로 흥정을 시작했다. 2킬로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를 가는데 툭툭 기사는 처음에 150바트를 불렀고, 나는 90바트를 마지노선으로 정했다. 한창 그렇게 몸짓을 동원해가며 실랑이를 하는 나를 아빠는 뒤에서 재미있어하는 표정으로 지켜봤다. 자동차 택시처럼 미터기가 달려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암만 부르는 게 값이라지만 5분도 안 걸려 갈 거리를 100바트 이상 주고 탈 수는 없었다. 흥정은 결국 비장의 '돌아서기 신공'을 펼친 나의 승리로 끝났다.


뒷좌석에 올라서 앉자마자 툭툭이 달리기 시작했다. 사방이 뚫려 있는 툭툭이 가르는 바람이 그대로 얼굴과 온몸을 시원하게 때렸다. '부아앙' 하는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속도감도 좋았다. 숙소가 조금 더 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돌려 아빠를 봤다. 밤길이라 환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언뜻 조명에 비친 아빠의 얼굴도 분명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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