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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짝 Oct 26. 2020

Day 8-3. 여행 마지막 밤, 아빠의 여행 소감

서른여덟, 아빠와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마지막 만찬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다행히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옷가게가 있어서 엄마, 아빠의 코끼리 바지를 살 수 있었다. 색상과 무늬를 고르고 고른 아빠는 몹시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러면 됐다. 와로롯 마켓 같은 큰 시장에서 샀으면 조금 더 싸게 살 수 있었겠지만 하나에 몇 만 원, 몇 십만 원 하는 것도 아니니 곱씹으며 아쉬워할 것도 아니다.


호텔 방으로 돌아와 잠시 쉬는 동안 객실 사진을 찍었다. 이전까지는 체크아웃 직전에 사진을 찍었지만 내일은 캄캄한 새벽에 체크아웃을 하게 될 것이므로 날이 밝을 때 미리 찍어두었다.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더욱 실감이 난다.




아침, 점심을 샌드위치와 쌀국수로 단출하게 먹은 터라(태국 식당에서 먹는 기본 사이즈 쌀국수는 양이 적다) 오후 다섯 시가 되자 벌써 출출해졌다. 아빠와 치앙마이에서 먹는 마지막 저녁, 둘 다 좋아하는 메뉴로 정하고 싶었는데 여행 중 인터넷을 검색하다 우연히 알게 된 곳이 여러모로 가장 적당할 것 같았다. 숙소에서 북동쪽으로 10km나 떨어진 곳에 있어 차를 타고 30분 가까이 가야 하지만 그만큼 시간을 들일 가치는 충분해 보였다. 이곳에서 파는 '씨콩 무 양'이라는 태국 음식이 우리나라에서 먹는 돼지갈비 숯불구이와 똑 닮았기 때문이다. 태국어로 '씨콩'이 갈비를 뜻하고 '무'는 돼지, '양'은 구이를 뜻한다. 한국에서 돼지갈비 구이는 태국에서도 그냥 돼지갈비 구이였던 것이다.


같은 지역 사람들 중에 모르는 이가 드물 정도로 현지인들에게 유명한 곳이라고 하는데 정작 가게 이름이 태국어로 되어 있어 식당 이름이 뭔지,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주소만 있으면 찾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휴대폰 앱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택시를 호출하면 끝, 목적지에 도착해서 사진으로 본 식당 모습과 같은 곳을 찾기만 하면 된다.


덕분에 헤매지 않고 잘 찾아가기는 했는데 뜻밖의 문제가 생겼다. 요금이 177바트가 나와서 지갑에 있던 1000바트 지폐로 계산을 하려는데 기사님이 거스름 돈이 없다며 난감해했던 것이다. 하필이면 나에게도 고액권인 1000바트 지폐밖에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어찌 아셨는지 저녁을 먹으려는 식당에서 한분이 다가와 대신 계산해주시면서 나중에 음식값과 함께 받겠다 하신다. 부탁도 드리기 전에 먼저 다가와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친절함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름을 알지 못해 그저 숯불구이집으로 부를 수밖에 없는 이 식당은 나무 기둥에 지붕을 얹은 널찍한 개방형 공간에 나무 혹은 돌로 만든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손님을 받고 있었다. 포장마차처럼 조리 공간이 식당 전면에 노출된 까닭에 숯불 위에서 익어가는 돼지갈비 꼬치가 내뿜는 연기를 식당 바깥에서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뼈째로 토막 낸 돼지갈비를 서너 개씩 꼬치에 꽂아 숯불에 구워낸다. 그렇게 구운 돼지갈비 꼬치가 하나에 25바트, 우리 돈으로 대략 천 원쯤 된다. 돼지갈비 중에서도 뼈에 붙어 있는 가장 맛있는 살만 골라 먹는데 꼬치 하나에 천 원이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나 : 아빠, (이곳 식당이)여기 사람들한테도 되게 유명해서 여섯 시, 일곱 시 넘어가면 거의 만석이라고 들었거든. 돼지갈비 꼬치 하나에 천 원이래, 25바트. 이왕이면 아빠 입맛에도 맞는 걸로 먹는 게 낫잖아.
 

아빠 : 맞을래나 안맞을래나. 그런데 웬만하면 맞겠지 갈비 구인데.


후추 정도를 가미했을 뿐인 돼지갈비 숯불구이가 입에 맞이 않을 리가. 주방에서 실시간으로 쉴 새 없이 구워내고 있었으므로 주문하자마자 기다릴 틈도 없이 바로 음식이 나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거기에 미디엄 사이즈면 딱 좋겠다 싶어 주문한 볶음밥은 생각보다 양이 많아 깜짝 놀랐고, 매콤한 소스에 새우와 양파를 볶은 요리까지 나오자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그야말로 만찬이 되었다.



나도 맛있어하고 아빠도 입맛에 맞으니 분위기는 더없이 화기애애했다.


나 : 확실히 직화로 구워서 맛있네. 이거 맛있는데? 으하하하. 약간 달달한 소스에 재운 것 같은데. 와... 대박. 올까 말까 했는데 오길 잘했네. 이거 한 줄에 천 원이면 아빠랑 나랑 이거만 배 터지게 먹어도 2만 원 밖에 안 나오겠다.


아빠 : 야 이거 하나에 천 원이면 어떻게 만 원어치씩 먹냐.
 

나 : 그러니까 엄청 싼 거지. 근데 난 열 개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빠 : 어이구.


아빠가 맛있게 드시니 덩달아 신이 나서 호기를 부려본다. 씹고 뜯고 맛보며 여느 때와 같이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 보니 테이블에 앉은 지 불과 30분도 되지 않아 접시 위에 음식이 거의 비워졌다. 역시, 밥을 무지 빨리 먹는 아빠와 그를 닮은 아들.
 

나 : 아유 맛있다. 갈비 몇 대를 더 시켜야 되지?


아빠 : 더 먹으려고?


나 : (어리둥절)당연한 거 아니야?


아빠 : 난 이거 먹으면 배불러서 그만 먹을래.


나 : 나 혼자 먹을 게.


아빠 : 아빤 땡.


나 : 지금 앉은 지 20분 조금 넘었는데 나갈라고. 왕복 한 시간이 넘는데.
 

아빠 : 아니 난 배가 불러서 더 못 먹어요.


나 : 천천히 드셔요 아부지는.

 



아빠의 여행 소감


나 : 마지막 날을 맞이하는 소감이 어때? 빨리 가고 싶어?(웃음) 으하하하. 이제 더 못 있겠어?


아빠 : (아빠도 따라 웃으며) 하루 이틀 더 있으면 빨리 집에 가고 싶을 것 같애. 그러니까 4박 5일 이 정도가 딱 좋네. 집 나가고 일주일이니까 그리워져.


나 : 집이 그리워?
 

아빠 : 그리고, 이렇게 나오니까, 진짜 너네 엄마가 보고 싶고, 여기 여자들 많은데 너네 엄마가 제일 예쁜 것 같어.


나 : 뻥치지 마(웃음).


아빠 : 너 엄마한테 잘해줘야지...


나 : 말로만 하지 말고(또 웃음).


아빠 : 야, 요새 내가 잘해 뭘.


나 : 그건 알지 어느 정돈. 더 잘하라고 더.


아빠 : 엄마 옷 벗어놓으면 세탁 다~하고 세탁소 맡겨 놓은 거 다 찾아다가 다 갖다 주고 청소 더 잘하고 뭐, 밥 내가 해 먹고.


나 : 근데 일주일 만에 엄마가 보고 싶다는데, 무슨 졸혼을 해. 일주일에 한 번만 보게? 으하하하. 왔다 갔다 하면서?


떨어져 있을 때 보고 싶고 애틋했던 마음이 돌아가고 나서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서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람이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서로 다른 건 너무 당연한 거니까.


나 : 올 때마다 이렇게 한 군데씩 건지니까 좋네. 이번 여행은 사실, 아빠랑 오는 거기 때문에 다 내가 가봤던데 위주로 짰는데. 물론 일출 보러 간 도이 인타논이나 어제 간 몬쨈 같은 데는 나도 안 가본 데지만, 특히나 식당 같은 경우는...(거의 아는 곳 위주로)


아빠 : 나는 여기 와 가지고, 그게 기억에 남는 거야.
 

나 : 뭐?


아빠 : 일출 보고, 트레킹 하고, 또 치앙다오 리조트에 갔다가 찻집에 갔던... 그다음에 여기는 구도심(올드시티)에서 돌아다닌 거. 그거 말고는 뭐.


나 : 그 정도면 많이 남은 거지 뭐. 아빠가 이런 스타일의 여행은 처음이라서 그래.


아빠 : 그래, 처음이라 그래.


나 : 리조트에서 그게 좋았지. 짐 풀고 한 시간 정도 도로 따라서, 아무도 없는 길에 아빠랑 얘기하면서 사원 한 번 찍고 돌아온 거.


아빠 : 그리고 일출 보러 가서. 이야, 태국도 이렇게 추운 데가 있구나(웃음).


8박 9일이 깜짝할 새에 지나간 것 같아도 하나씩 되짚어보면 간 곳도, 한 것도 많았다. 올드시티의 카페며 걸었던 골목이며, 치앙다오 리조트와 산책, 치앙마이 대학교의 호수와 야시장, 도이 인타논의 일출과 트레킹, 와로롯 마켓과 나이트 바자, 몬쨈의 석양, 핑강까지.


지금까지 아빠와 살아온 세월도 너무 빨리 흘러왔다 생각했는데 그 또한 하나씩 되짚어보면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의 이야기


나 : 와 갑자기 옛날 생각나네. 3학년 땐가 4학년 때 나 운동회 하는데, 엄마 회사 가고 아빠만 왔지? (아빠가)먹고 싶은 거 다 사준댔는데. 오랜만에 완전 기회였는데, 배 아파 가지고. 우쒸, 아무것도 못 먹고 집에 왔는데. 그게 세상 억울해 가지고(웃음).


아빠 : 어이구 허허.


나 : 그땐 그랬어. 그때 아빠가 먹고 싶은 거 다 사준다 그랬는데.


이야기를 할수록 뒤따라 떠오르는 기억을, 아빠 앞에 하나씩 펼쳐놓았다.


나 : 사실 나도, 투정 부리는 거라서 얘기 안 했지만. 나도 학교 다니면서, 그때 당시에 맞벌이하는 부모들 많았으니까 그러려니 지금도 하고는 있지만. 옛날에 초등학교 2학년 이럴 때 비가 막 쏟아지면은, 엄마들이 학교 앞에...


아빠 : 우산 들고 나와서 안 기다린다고.


나 : 부럽지.


아빠 : 그때 누나가 그랬나 니가 그랬나 한 번 그런 얘기 했었어.


나 : 그래서 내가 막 애들 앞에서 난 비 맞는 거 좋아한다고. 오히려 빗물 콸콸 빠지는 데에 발도 집어넣고. 비 오는 날 데려다주는 게 문제야? 초등학교 입학식도 이모랑 가고. 그래도 재밌었어 누나랑. 외동은 아니었으니까.


아빠는 어느 순간부터 말없이 듣고만 있다.


나 : 이제는, 아빠도 나이를 먹고 나도 나이를 먹는구나 딱 느끼는 게... 이 여행을, 생각하게 된 가장 첫 번째 계기가 아빠가 재작년인가 작년 상반기에 전화하다가. 아빠 한창 일 시작해서 힘들다고, 그때 아빠가 나도 내일모레 칠십이야 그랬는데 내가 아빠 나도 내일모레 사십이야 흐흐흐 그랬더니 아빠가 야 이놈아.

근데, 그런 거지. 옛날에는 어릴 때, 초등학교 때는 내가 막, 큰일을 겪고 들어와도 아빠한테 얘기하면 아빠가 너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뭐 그거 아무것도 아닌 거 가지고 그러냐고 괜찮다고. 괜찮아 이놈아 한단 말야. 내 딴에는 막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는데. 근데 이젠 내가 그런... 그런 얘기를 들을 수가 없는 나이지. 왜냐면 내가 큰일 나면 진짜 큰일 난 거거든, 내가 큰일 나면 아빠도 큰일 나는 거거든.

세월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났어. 대학교 졸업할 무렵부터 지금까지는 순식간에 지난 것 같애. 그러니 생각해보니까 딱 그거지. 이모 손 잡고 초등학교 입학하던 때가, 그때 아빠 나이가 지금 내 나이야. 아빠랑 나랑 딱 서른 살 차이니까. 아빠가 그때 서른여덟 살이었을 거니까. 이야 심지어 그때 엄마는 서른다섯이었겠네.
 

나 혼자만 그렇게 하염없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섯 살 때 아빠가 우유 대금 수금해온 돈을 몰래 가져가서 문방구에서 200원짜리 로보트를 샀다가 엄마한테 혼난 것. 아홉 살 때, 아빠가 처음으로 사 준 두 발 자전거를 도둑맞아서 펑펑 울었던 것. 셋방 살이 할 때 주인집 형과 누나에 대한 것. 엄마가 잔업을 하는 날이면 억지로 잠을 이겨내며 밤 열 시, 열한 시까지 철문 열리는 소리만 나기를 기다렸던 것까지. 아빠는 묵묵히 계속 내 말을 듣고만 있었다.


나 : 우리 집에 처음 들어온 전화기, 전화번호를 기억한다는 거 아닙니까. 아빤 기억 못 하지?
 

아빠 : 몰라 난.


나 : 내가 생각해도 너무 신기한 거 있지. 나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인데. 884-2262.


아빠 : 2262는 생각난다.


나 : 너무 웃기지. 그땐 내가 전화 쓸 일도 없었는데 그걸 외워서. 전화 처음 들어온 날 감동했던 기억이 있어. 아 우리 집도 전화기 들어왔다고.


그 사이 주위는 캄캄해졌고 어느새 식당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올드시티에서 많이 떨어진 곳에 있어서 택시를 호출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금방 응답이 돌아왔다. 음식 먹은 값을 계산하려는데, 바빠서 정신이 없으셨는지 올 때 차비를 대신 계산해주신 걸 더하지 않은 것 같아 상기시켜 드렸다. 돈을 내는 사람 받는 사람 서로 기분 좋게 인사하고 나와 차를 기다렸다.




마지막 밤


숙소로 돌아온 아빠는 축구 시작하는 시간부터 확인했다. 23세 이하 축구 대표님이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 대회에 출전해 있었는데 마침 오늘 저녁에 호주와 준결승전을 치른다. 태국 현지 스포츠 채널에서도 중계를 해주는 경기라서 새벽부터 바삐 움직여야 하는 내일을 위해 아빠는 일찌감치 짐 정리와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티비를 켰다. 나는 노트북과 카메라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호텔 바로 옆 건물에 있는 펍은 손님이 거의 없이 한산했다. 빈자리 아무 데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카메라를 올려놓았다.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날짜와 장소별로 다시 한번 정리하고 나서 천 개 가까이 되는 사진 파일을 주욱 훑어보았다. 아빠와의 대화를 녹음한 파일만 해도 스물여덟 개, 녹음된 시간만 다 합쳐도 열다섯 시간이 넘는다. 보이스 레코더를 켜지 않고 이야기한 시간은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아쉽지 않은 여행 마지막 밤이 있을까. 사람이 살아가는 세월에 비하면 턱도 없이 짧은 8박 9일의 여행에서도 끝이 다가오니 상념에 잠긴다. 아빠와 이렇게 단둘이 여행하는 날이 또 올까.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언제든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언제라고 쉽게 장담할 수는 없겠다. 다음에 아빠와 단둘이 여행을 갈 수 있게 된다면, 그땐 아빠가 이끄는 대로 다니는 여행을 해야겠다. 그전에, 엄마와도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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