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홀짝 Oct 24. 2020

Day 8-2. 나에겐 야구공, 아빠에겐 대나무 낚싯대

서른여덟, 아빠와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빠가 물려준 취미


아빠는 휴대폰으로 야구 기사를 보고 있다가 내게 물었다.


아빠 : 류현진이가 토론토 간 거, 투수들한테는 그쪽 리그가 아주 안 좋다며.


나 : 200억 준다잖아 1년에, 뭐가 문제겠어.


아빠 : 돈은 많이 받고 가는데... 류현진이가 그쪽 리그 애들이 홈런 많이 치는 애들이고 그러니까 꼭 그 생각이 나는 거야. 박찬호가 돈 많이 받고 (텍사스)가서 그다음부터 내리막길...
 

나 : 그건 박찬호가 아팠으니까 그런 거지.


아빠 : 근데 김광현이가 메이저리그 가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류현진이처럼.


나 : 류현진은 아주 자~알 한 거고, 살아남는 거하고는 별개지. 돈 값만 하면 돼. (류현진 보다)받는 돈이 많지도 않은데. 1년에 400만 달러어치는 하겠지.


아빠 : 그럼 50억 정도 되나.


나 : 간 게 어디야, 잘하겠지. 자기 꿈이라는데. 나 같아도 꿈이겠다. 한국에서 그만큼 잘하면 메이저리그 한 번 가보고 싶지.


아빠와 나 사이에 야구 이야기가 한 번 시작되면 좀처럼 짧게 끝나는 법이 없다. 추신수는 언제 계약이 끝나는지, 올 시즌 SK는 김광현 없이도 잘할 수 있을지. 야구는 아빠와 나의 가장 밀접한 관심사이자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아빠에게 영향을 받은 관심 분야이기도 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나는 아빠를 따라 인천을 연고로 하는 태평양 돌핀스를 응원했다. 그 당시 어린 나에게 가장 신나는 일은 아빠와 야구장에 가는 거였다. 태평양 돌핀스가 지독하게 못했던 1990년대 초, 하루는 아빠하고 둘이서 야구장에 갔는데 경기 시작 시간을 30분이나 넘겨서 도착하고 말았다. 조급한 마음에 설렘을 얹어 야구장에 들어서자마자 전광판 스코어를 확인해보니 점수는 이미 0 대 4, 결국 그날 경기는 0 대 12로 졌다. 야구장을 찾은 아저씨 관중들은 그라운드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치며 욕설을 내지르기 바빴지만 승패야 어찌 됐든 나는 마냥 신나고 좋았다.


우리 가족이 단칸방 전세에 살던 시절인데도 아빠는 나를 태평양 돌핀스 어린이 회원에 가입시켜주었다. 가입 선물로 받은 태평양 돌핀스 티셔츠를 동네 형들과 야구할 때마다 입고 나갔더니 어느새 형들이 나를 '태평양'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밤 열 시가 넘어 하는 프로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기다리다 내가 먼저 잠들기라도 하면 중간에 깨서 아빠에게 가장 먼저 묻는 것이 '아빠, 오늘 태평양 이겼어?'였을 정도다. 고무공에서 시작해 테니스공, 딱딱한 진짜 야구공까지 내가 자라면서 아빠와 던지고 받는 공도 바뀌어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야구 선수, 고등학교 때는 야구 기자가 장래 희망이었으니 야구 좋아하는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 받은 영향이 이렇게나 크다.


지난해 봄, 부모님을 모시고 누나네 식구와 같이 캠핑을 다녀왔다.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오전에 공터에서 캐치볼을 하는 매형과 조카를 보고 있는데 얼마 지나 매형이 아빠와 나에게 글러브를 건넸다. 그렇게 아빠와 실로 오랜만에 캐치볼을 했다. 족히 20년은 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여전히 아빠와 나는 호흡이 잘 맞아서 서로 적당히 받기 좋은 높이로 공을 쉴 새 없이 주고받았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내가 힘을 조금 빼고 던져야 했다는 것.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아빠를 향해 공을 던졌었다.




늘 비슷한 일로 다투고, 비슷한 반성을 한다


아빠는 좀처럼 휴대폰으로 뉴스 기사 보던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가 이내 말이 없어졌다. 뭘 그렇게 보고 계시냐고 좋게 좋게 말을 붙이던 나는 그렇게 몇 번이 반복되자 마침내 또 터졌다.


나 : 아유, 그것(휴대폰) 좀 그냥 못 놔둬요? 와... 진짜.


아빠 : (아빠도 살짝 성질내며) 별 걸 다, 이제 끌라 그러는구만.


나 : 진짜 무슨, 이거 안 만지고 있으면 불안한 사람 같아. 습관이야 습관.


아빠 : 멍하게 있어봤자...


나 : 멍하게 있으시라고 차라리. 정신 건강에도 그게 더 좋아.


아빠 : 싫어.


이번 여행 동안 내가 아빠를 타박한 것의 90% 이상이 아빠가 나를 두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것 때문이었다. 여행 중반 이후로는 나도 가급적 그러려니 하고 참아왔는데 마지막이 되어서 결국 아빠에게 또 성질을 내고 말았다. 그렇게 성질을 버럭 내놓고도 금세 스스로 참 못됐다 생각이 드는 것은,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걸로 따지면 내가 아빠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기 때문. 단지 아빠와 여행하는 동안 아빠를 앞에 두고 그러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아빠에게 고백한다.


나 : 그런데 나도, 줄이기가 힘들어.


아빠 : 뭐?


나 : (휴대폰 보는)습관을 줄이기가 힘들다고 나도. 혼자 있을 때 기사 보고 그러는 게.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이게 더 편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나도 모르게 빠져있다가 어이쿠 내가 이걸 줄여야겠다 한다니까. 잠깐 딴짓하고 유희로 하는 건 좋은데, 이게 습관이 되니까. 나를 포함에서 전철에서 사람들 보면... 우리가 이거 없을 땐 어떻게 살았나.


휴대폰 없이 시간 보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아빠는 음악 듣는 것을 떠올렸다.


아빠 : 진짜 집에, 요새 그냥 CD로 오디오 들을 만하는 거 얼마 정도면 살까.


나 : 좋은 거로 사면 비싸니까 차라리 휴대폰 켜고 헤드폰으로 듣는 건 어때?


아빠 : 휴대폰에 노래 집어넣고, 다운 받고 그런 거 아빠가 아직은 못하니까.


나 : 스트리밍 사이트 이용하면 되잖아.
 

아빠 : 응?


나 : 음원 사이트 있잖아 멜론이나 이런 거.


아빠 : 모르니까, 못하니까 그러지.


나 : 내가 가입시켜줄 게. 한국 가면.


아빠에게 성질을 내거나 서로 다투어도 결국엔 내가 늘 밑지는 장사다. 부모님들이 얼마나 스마트폰을 잘 다루시는가는 자식들에게 달려있다는 말도 있던데, 나는 쥐뿔 상냥하게 한 번 가르쳐 드린 적도 없으면서 아들을 앞에 두고 휴대폰만 본다며 타박이나 했으니.


아빠와 나는 매번 비슷한 일로 부딪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매번 비슷한 반성을 한다. 여행 둘째 날 피자집에서 아빠 휴대폰 하는 걸로 그렇게 퉁퉁거렸는데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똑같은 이유로 똑같은 소릴했다. 정말 여러 가지로 그날과 오늘은 닮은 점이 많구나.

 
카페를 나서기 전,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나는 아까부터 아빠에게 하려고 했던 말을 꺼냈다.


나 : 아빠가 나 태평양 어린이 회원 가입시켜준 건 고마워하고 있어 지금도.




핑강


반 비엠숙에서 나와 도로변을 따라 남쪽으로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편으로 핑강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걸을수록 강이 점점 가까워지다 강 옆으로 길이 딱 붙었다.


아빠와 나는 흙빛 강물이 찬찬히 흐르는 핑강을 끼고 걸었다. 둔치의 풀밭에는 대낮의 따가운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이 진 벤치에 누워 낮잠을 자는 사람도 있었다. 띄엄띄엄 낚싯대 석 대를 강에 드리우고 작은 파라솔 밑에 앉아 있는 남자는 걸쳐 놓은 낚싯대에 관심이 있는 듯 없는 듯 딴청을 했다. 아빠는 가던 길을 멈추고 낚시하는 남자 바로 뒤편 벤치에 가만히 앉아 낚시를 구경했다.


 '놀러 다닐 거 다 다니면 언제 돈 벌어서 집 살 거냐'에서 '언제 집 살 때 얻은 융자 다 갚을 거냐'로 이어진 유구한 엄마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낚시는 아빠의 가장 오래된 취미다. 낚시가 취미인 것 치고 그렇게 자주 나가지는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아빠는 1년에 두어 번은 낚시 가방을 챙겨 바다낚시를 다녀왔다. 언젠가 아빠가 우럭을 정말 많이 잡아왔을 때는 거의 한 달 내내 집에서 우럭 매운탕이 끓었다. 그 뒤로 나에게 매운탕은 굳이 찾아 먹지 않는 음식이 되었다.


벤치에 앉아 잠깐 쉬고 일어나 가던 길을 계속 걷다가 올드시티 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리를 건넜다.




마고코로 찻집(Magokoro teahouse)


핑강 둔치를 산책하다 올드시티로 돌아오는 길에 '마고코로'라는 이름의 말차 전문 찻집에 들렀다. 말차 빙수 한 그릇을 아빠와 나눠 먹으려고 들어간 이곳을 찾은 진짜 이유는 안마당 때문이다. 일본풍 인테리어의 찻집 안쪽에 고즈넉하게 만들어 놓은 작은 안마당을 나와 아내는 치앙마이에 다녀온 후에도 종종 그리워했다.
 

아빠와 나란히 마루에 걸터앉아 안마당 뷰(?)를 감상했다. 키가 담벼락보다 두 배쯤이나 큰 날렵한 대나무가 담벼락 둘레를 촘촘하게 에워싸고 있는 안마당 안으로는 나무 몇 그루와 자갈, 돌무더기가 어우러져 작은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마당 옆에 지어 놓은 화장실 조차 그럴듯한 안채로 보였다.



아빠 : 여기 자갈 있는 데 연못을 만들어 놓으면 더 시원하겠는데.


나 : 여기서 노트북 놓고 작업하면 없던 영감도 막 생기겠어. 처음 여기 왔을 때 바깥에서는 안에 이런 공간이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었는데.


아빠와 카페에 들를 때마다 공간과 생김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참 자연스럽고 좋았다.


아빠 : 여긴 분위기가 일본 사람들이 많이 올 거 같어.


나 : 여기 아마 사장이 일본 사람인 거 같아. 소개글이랑 인테리어 해 놓은 거 보면.


찻집을 마음에 들어하는 아빠에게 휴대폰 지도 앱을 켜고 위치를 보여주며 약간 애매한 위치라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관심을 갖는 아빠에게 그동안 우리가 다녔던 올드시티 이곳저곳의 위치도 함께 짚어가며 이야기하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작 좀 이렇게 지도 앱을 자주 보여드리면서 얘기할 걸. 여행 막판이 되어서야 아쉬운 것들이 떠오른다. 이렇게 할 걸, 저렇게 할 걸.


말차 빙수가 나왔다. 노년의 아빠와 중년을 앞둔 아들이 카페 안마당 마루에 나란히 앉아서 빙수를 나눠 먹고 있는 풍경은 얼마나 이색적일까. 길에서 봤을 땐 평범해 보이는 찻집이 품고 있는 이런 생각지 못한 마당보다 더 신기한 광경일지 모르겠다.




엄마 선물


나 : 뭐하고 싶어 이제?
 

아빠 : 할 게 뭐 있어?


나 : 생각을 좀 해봐. 내가 말했잖아, 제안을 많이 하거나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빠 : (웃으면서) 어이구 차암.


나 : 능동적으로다가 응?


아빠 : 이제 들어가서 있다가 저녁에 나올 거야 또?


나 : 밥 먹으러 나와야지.


아빠 : 그럼 이렇게 쭉 가면서, 쇼핑하면서 가지 뭐.


분명 그제 나이트 바자에서 더 이상 쇼핑하러 가는 일정은 없다고 아빠에게 말했건만. 그래서 엄마 선물도 이제는 정해서 사야 한다고 그렇게 강조했건만 이제 와서 아빠는 쇼핑 이야기를 한다.


나 : 쇼핑을 어디서 하는데(웃음), 쇼핑할 데 없어 집(호텔)에 가는 길에. 내가 말했잖아 기회가 있을 때 관심을 갖고 사야지. 야시장이랑 시장이네 뭐네 얼마나 많이 돌아다녔는데 아무것도 안 하다가 마지막 날 되어서.


아빠 : 그럼 마지막 되니까 사는 거지.


마지막이 되니까 사는 거라고 말하는 아빠의 거침없는 당당함.


나 : 기껏 내가 이것저것 추천했을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듣고 '싫다, 싫다' 하다가 다 지나가버리고. 사람 무안이나 주고 아휴. 타이밍이야 타이밍, 있을 때 안 잡으면 다시 안 와.


갑갑하고 서운한 맘으로 내가 한 소리에 잠시 서로 뚱-하게 있다 아빠에게 물었다.


나 : 그래서 사고 싶은 게 뭔데? 종류를 말해줘야 파는 데를 가지.


아빠 : (약간 맥없이) 아까 말했잖아, 엄마하고 나, 옷 그거. 다른 건 살 거 없고.


나 : 코끼리 바지. 숙소 근처에도 파는 데 있을 거야. 바지야 그건 뭐 오만 데서 다 파니까. 그러니까 싸게 살 수 있는 시장 갔을 때 샀어야지.


여행 내내 시장, 상점 돌 때마다 엄마 선물 타령을 하던 아빠는 그걸 다 싫다 하고 무시하더니 결국 흔하디 흔한 태국 코끼리 바지를 사기로 했다. 얇은 천으로 만든 펑퍼짐한 고무줄 바지에 코끼리 문양이 그려져 있는 일명 코끼리 바지는, 장담컨대 치앙마이에 오고 나서 아빠와 다녔던 모든 종류의 시장에서 빠짐없이 팔고 있었던 상품이다. 아빠가 끝내 엄마 선물로 무얼 고를지 궁금했었는데 김이 빠져 헛웃음이 나왔다.




산다는 것은


아빠는 빙수를 먹다 갑자기 어린 시절 강원도에서 화전으로 메밀밭을 일구던 얘기를 아주 세세하게 해 주었다. 찰기가 없고 가벼운 메밀로 지금은 밥을 할 줄 아는 사람도 없을 거라면서 메밀밥은 지어놔도 제대로 숟가락으로 퍼먹기도 힘들었다고, 숟가락질을 하면 흘리는 게 더 많았다고 한다. 아빠는 그런 메밀이 요즘 건강식이라고 하면서 귀한 대접을 받는 걸 보면 세상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나 : 아빠는 사람 사는 게 되게... 허망하다는 생각 안 들어? 나는 몇 년 전부터 가끔 그런 생각이 드는데.


아빠 : 야, 자꾸 그런 생각하지 마. 그런 생각하면 진짜 철학자 된다. 주어진대로 그냥 저거 해서 사는 게, 사람이 그렇게...


아빠에게 철학자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실생활과 동떨어져 아무 소득도 없이 공상만 하는 사람', '교회 하고도 아주 멀어진 사람'을 뜻한다.


나 : 내가 허망하다는 건 그런 뜻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잖아. 가는 데도 순서 없고,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어떻게 될지 알 수도 없고.


아빠 :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사람이 10%도 안되고, 또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해서 성공했다는 사람은 더 없고.


아빠 세대는 더욱 그랬겠다. '뭘 하고 싶은가' 보다는 '뭘 하면 굶지 않을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아빠는 하던 말을 계속했다.


아빠 : 근데, 아빠는 지금 와서 후딱 저거 되다 보니까(나이를 먹다 보니까) 처음에는 그냥 배고플 때니까 정신없이 금방 지나갔고, 그다음엔 살기 위해 뛰었고, 이제는 뒤돌아보고 천천히 가야 되는데 아직도 그러지 못한다는 거지.


여행 내내 아빠의 화두는 '이제는 여유 있게 천천히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아쉬움'이다. 여행 이후 2020년 상반기에 벌어진 집안 안팎의 상황으로 봤을 때, 아무래도 한동안 아빠에게 산다는 것은 여전히 긴장을 놓을 수 없는 팍팍한 실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뜻대로 되지 않는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바닥을 드러낸 빙수 그릇을 보면서 시간도 적당히 흐른 것 같기에 일어나려고 하는데, 담벼락의 대나무를 보던 아빠가 말을 꺼냈다.
 

아빠 : 할아버지가 낚시질 참 좋아해가지고 그전에, 대나무 낚싯대 들고... 요새 낚싯대 나오기 직전에 나온 게 대나무를 가지고 이렇게 낚싯줄을 딱딱 끼워가지고 하는 거였어. 원통 장날 가더니 그거 사 가지고 와서 할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했어. 그 뒤로 나온 것이 지금 낚싯대처럼 쭉 뽑는 거. 할아버지는 이렇게 길게 뽑는 낚싯대를 못 보고 돌아가신 거야. 대나무... 낚시 갔다 오면 다 닦아서 깨끗하게 다시 보관해놓고. 묵호 살 때도 가끔 갯바위 가서 낚시질하고.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녹음 파일을 들으며 내용을 정리하다 이 부분에서 아빠가 한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 정확히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할아버지와 낚시하던 때를 이야기하는 아빠의 목소리와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몇 번을 다시 듣다가 멈추었을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주 오래전 옛날, 내가 태어나기도 까마득하게 전에. 등굣길 기차를 타러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아빠의 국민학생 시절 모습을 그려본다. 아마도 고무신을 신었을 것이고 입고 있는 옷에는 할머니가 바느질로 기워 놓은 흔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기차역까지 걸어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그 길을 어린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을까. 아빠는 어떤 꿈을 꾸었을까. 내 맘대로 상상하는 어린 아빠의 뒷모습이 시골길의 저 끝으로 점점 멀어져 간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빠가 대나무 낚싯대를 보며 할아버지를 떠올린 것처럼, 먼 훗날 나는 야구공을 보며 아빠를 떠올리게 될까.



이전 18화 Day 8-1. 마지막 날은 아니지만 마지막 아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