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픈 마음은 선하거나 단순한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각자 살아온 시간의 결과와 경험이 남긴 통찰, 타인과 세계에 대한 민감성이 만든 하나의 결과였다. 그리고 그 연결 방식은 결국, 우리가 가진 각자의 사정이 만들어냈다.
함께 저녁 뉴스를 보던 막내가 말했다.
“저 사람, 엄마 같은 사람인가 보다.”
티브이에서는 불타는 자동차에 갇힌 운전자를 구하려고, 한 남성이 망설임 없이 달려가는 장면을 반복해 보여주고 있었다. 불길은 자동차 위까지 솟구쳤고, 주변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볼 뿐이었다. 그 틈을 가르며 달려간 남성이 운전석 문을 열어젖히자, 안전벨트를 풀지 못한 채, 불길 속에서 허우적대던 운전자가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엄마는 저런 적은 없는데?”
"그렇죠, 그런데 엄마도 일 생기면 몸이 먼저 움직이잖아요."
막내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듣고 보니 나도 아니라고 반박은 못할 것 같았다.
헤픈 마음의 정점이라면, 남들은 생각까지만 해 볼일을 기어코 실행에 옮기는 데 있다. 실제로 나는, 어? 일이 생겼네? 하고 인식한 순간, 이미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인식한 순간과 행동 사이에 곰곰이 생각해 만약을 대비하고, 내가 겪을 위험이나 손해를 따져 계산할 짬이 없었다. 그래서 이런 행동은 불나방처럼 무모하고, 때로는 경솔하다는 평을 듣기 십상이었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앱으로 택시를 부르는 시대가 아니던 때였다. 나는 아침 출근길이었다. 늦을 것 같아 집 앞에서 가까스로 택시를 잡아탔다. 골목을 빠져나온 택시가 대로변으로 나왔을 때였다. 유난히 작은 체구에 잔뜩 등이 굽은 할머니가 1차선에서 지팡이까지 흔들며 택시를 잡고 있었다. 그때, 기사님이 무심히 중얼거렸다.
“노인네가 이 복잡한 시간에 나와서는, 택시가 잡히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의 헤픈 마음은 이미 부릉부릉 시동이 걸린 상태였다.
“기사님, 저 여기까지 요금 드릴게요. 저 할머니 좀 모셔다 주세요.”
지체 없이 외친 나의 한 마디에 백미러로 나를 보던 기사님은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굳이?’
하지만 이미 상관없었다. 그때부터 중요한 건 정말 스피드였다. 택시는 조심스레 후진해 할머니 쪽으로 갔고, 나는 할머니께 택시를 타고 가시라며 문을 열어드렸다. 할머니는 몇 번이나 고맙다고 했다. 그리곤 우리 막둥이 병원에 간다는 말을 반복하며 택시에 올랐다. 나는 급한 일이라곤 없는 사람처럼 택시 문까지 닫아 드렸고, 택시는 떠났다.
그때부터 홀로 남겨진 마음 헤픈 인간은 철저히 현실에 놓였다. 빈 택시는 보이지 않았고, 시계를 보니 지각을 피하긴 어려웠다. 그때 아주 잠깐, 나는 왜 맨날 이 모양일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야 나였다. 만약,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회사로 갔다면, 나는 내내 마음이 쓰여 나를 괴롭혔을 것이다.
흔히 기사님의 혼잣말처럼 , 왜 하필 그 시간에 나왔냐며, 쉽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어르신이 얼마나 급한 일이면 이 시간에 나왔을까?’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생각이 전환되는 그 순간에 우리에겐 또 다른 차원의 경험이 열렸다
우리에겐 저마다 사정이 있다.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겪으며 없던 사정이 생기기도 했다. 나는 타고 가던 택시를 할머니께 양보하고, 다시 택시를 잡는 수고를 하더라도 내가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은 선하거나 단순한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의 행동도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다만, 한 존재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늘 그 뒤에 있을 말 못 한 사정들이었다. 결국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건 타인의 행동 자체가 아니라, 그 행동을 이끈 사정일 것이다.
더 젊을 때 나는, 이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헤픈 선택은 내가 해놓고, 마치 내 의지와 상관없이 튀어나온 그 마음 때문에 번번이 곤경에 처한 것처럼 투덜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를 움직인 것도 결국, 나만의 사정 때문이었다. 우리가 가진 삶의 무늬들이 모여서, 타인의 고통을 보면 외면할 수 없게 만들거나 또는 같은 이유로 그것을 회피하게 했다.
우리는 모두 각자 사정이 있다. 헤픈 마음을 가진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각자 품은 사정대로 산다. 그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만든 것도 결국 살아온 시간의 무늬다.
헤픈 마음의 행방 또한, 그 마음을 움직인 사정에 따라 흘러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