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에 대하여
며칠 만의 외출이었다.
상담치료가 있던 날, 나는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을 약국 데스크에 내고 대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얼마 뒤, 약국 문이 열렸다. 내가 문소리를 따라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약국 안으로 들어섰다.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
세 명 중 단연 가운데 남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의 두 손은 앞으로 수갑이 채워졌고, 몸은 굵은 포승줄로 결박된 모습이었다. 그 옆으로 공무 수행이라 적힌 목걸이를 건 남 녀가 남자를 내 앞 대기 의자에 앉혔다. 동네 약국에서 마주한 모습이라기엔 무척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수감 시설에 있던 남자가 병원 치료를 받고, 교도관들과 함께 약을 받으러 온 모양이었다. 남자가 교도관이 묻는 말에 태연히 대답하는 모습만 봐선, 그가 수갑과 포승줄에 결박된 사실을 보면서도 믿기 어려웠다.
여자 교도관이 약사에게 처방전을 내고 작은 소리로 설명을 하더니, 파일철 된 서류에 뭔가를 기록했다.
“ 약값은 5만 7천 원입니다. “
약사가 말하자, 여자 교도관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 약국 계좌 번호거든요. 바로 입금해주셔야 합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입금 확인 됐습니다. "
약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나는 어딘가에서 아들의 약값을 송금했을 ‘어머니’라는 이름의 한 여자를 떠올렸다.
세상일 중 내 뜻대로 되는 것이 무엇 하나 있겠냐마는, 자식만큼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또 있을까.
영화 <케빈에 대하여>의 에바 역시 그랬을 것이다. 에바는 어릴 적부터 예민한 성향을 가진 아들을 힘겨워한다. 자유로운 여행가였던 삶이 엄마라는 역할로 바뀌었지만, 그녀는 쉽게 모성애를 느낄 수 없다. 그저 가까워지려 애쓸 뿐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케빈은 교묘하고 잔인한 방식으로 엄마에게 고통을 줬다.
케빈은 과연 자신이 온전히 사랑받지 못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챈 걸까? 그렇다면 사랑받지 못한 다고 느낀 아이는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단 말인가.
결국, 16살 생일날, 케빈은 세상과 엄마를 향해 돌이킬 수 없는 화살을 쏘아 올렸다.
‘살인마의 엄마'라는 낙인을 짊어진 채, 집 외관을 뒤덮은 붉은 페인트 얼룩을 묵묵히 지워내던 에바의 뒷모습에서 엄마라는 이름이 감당해야 할 형벌 같은 책임의 무게가 느껴졌다. 하지만 정작 나를 서늘하게 만든 것은 케빈의 지독한 공격성이 실은 사랑을 갈구하는 뒤틀린 몸짓이었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였다.
온갖 수모를 견디며 아들의 죄를 닦아내던 영화 속 에바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들의 약값을 입금하는 현실의 모성. 그 지독한 평행이론이 내 마음에 깊고 서글픈 흔적을 남겼다.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케빈은 2년 뒤 성인 교도소로의 이감을 앞두고 몹시 불안해한다. 그때, 사건 이후 처음으로 에바가 묻는다.
“왜 그랬니?"
아들은 대답한다.
“그때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모르겠어."
그토록 잔인했던 악마의 입에서 나온 너무나 아이 같은 대답. 그런 아들을 말없이 안아주던 에바를 볼 때, 밀려오던 그 허탈함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과연 모성의 책임에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내 앞에 앉은 남자를 결박한 포승줄은 더 이상 단순한 수사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끝내 가르지 못한 것. 재난이 된 자식이나 혹은, 모성이란 형벌이 우리 몸에 남긴 굵은 탯줄이었다.
[나를 달래는 기록#1]
그날, 나는 자식이라는 재난이 남긴 포승줄을 응시하며, 하루를 이어 붙였다. 비루한 마음을 문장으로 바꾸고 나니, 웅덩이 밖으로 아주 조금 발을 내디딘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