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죽었던 사람이 계속 다시 살아난다. 잊고 싶던 과거가 태연하게 현재에 반복 재생된다. 이쯤 되자, 나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 세상이 이토록 팍팍한데 믿을 게 아무것도 없다니.
나는 온갖 시련을 극복한 이들의 문장을 찾아 헤맸다. 아무래도 나는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시련 앞에 놓였다고 생각한 게 분명했다.
나는 지난 이십여 년 동안 그녀를 사진으로 조차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내겐 그녀의 이미지가 직접 본 듯 선명하다. 호리호리한 체형의 미인이라거나, 보수적이지만 깔끔한 성품이라는 것도 그동안 딸이 전해준 이야기였다.
딸은 그녀를 나와 똑같이 ‘엄마’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에게 어떤 불편한 감정을 품어본 적은 없다. 오히려 내 자식을 나눠 가졌다는 막연한 연대감을 느낀 쪽에 더 가까웠다.
작년 여름, 그녀가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도 딸을 통해서였다. 그녀가 정년퇴직을 하고 일 년 여 남짓 부부가 등산을 다니며 모처럼 여유롭게 지낸다는 근황도 들었었다.
나는 딸이 이야기를 전할 때마다 그저 먼 친척의 소식을 듣듯 덤덤히 들어왔다. 그 안에는 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깔려 있었다. 그런 이유로 딸이 어떤 이야기도 눈치 보지 않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내가 ‘그래도 되는 사람‘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녀가 암이라니. 딸과 걱정스러운 몇 마디 말을 나누던 나는 그만 목이 메더니 울음이 터졌다. 전 남편 아내의 투병 소식에 터진 울음이 당황스럽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헤퍼도 너무 헤픈 마음 아니냐며 나를 탓하기도 했다.
나는 그녀가 아니고, 그녀도 내가 아니었지만, 우리는 딸에게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 그래서였을까. 그녀 앞에 놓인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마치, 내가 살지 않은 어떤 시간이 조용히 끝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음속으로 나마 나는 그녀가 이 위기를 잘 견뎌주길 진심으로 바랐다. 딸에게도 평소보다 더 자주 안부를 묻고 챙겨드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지난 3월 초, 호스피스 병동에서 임종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암을 발견한 지 9개월 남짓된 시점이었다.
캐나다에 있는 딸이 내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엄마, 나 이제 어떡해? 내가 뭘 해야 해?"
내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는지 막막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나는 사람의 청각이 가장 늦게 닫힌다는 말을 떠올렸다. 딸이 당장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해도 임종을 볼 수 있을 지도 미지수였다.
“딸아, 얼른 이 전화 끊고, 더 늦기 전에 목소리로라도 마지막 인사를 드려라. 어서 서둘러! “
전화를 끊고, 나도 잠시 기도를 올렸다.
잠시 후,
딸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딸은 막상 통화를 하고 나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서럽게 울었다. 나는 그런 딸을 가만히 달랬다. 수화기를 타고 오열하는 딸의 울음소리가 내 마음을 찢어 놓았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울고 있는 딸, 그런 딸을 위로하고 있는 내 모습이 한데 뒤엉켜 알 수 없는 비애가 밀려왔다.
곧, 그녀가 떠났다.
나는 온라인 장례식장에 접속했다. 고인이 된 그녀의 이름 옆, 상주 자리에 딸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모친상’의 상주가 된 딸의 이름. 그 기묘한 현실 앞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양가감정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이내 그런 마음을 품는 것조차 스스로 불편해하는 나를 봤다.
어린 시절부터 "너는 알아서 잘하니까!"라는 엄마의 말을 믿었다. 얼핏 칭찬처럼 들리는 그 말은 언제나 나를 뒷전에 세웠다.
나는 내 감정을 배려받지 못한 순간에도, ‘저는 괜찮아요.' 말하는 ‘그래도 되는 아이'였다. 그렇게 내 감정을 숨기려 애쓰던 시간은 마침내 나조차도 내 진심에 무뎌지게 만들었다.
나는 처음으로 내 마음에게 물었다. 정말 괜찮은 거냐고. 하지만 이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면에 가려진 나는 여전히 괜찮은 척하느라 정작 해야 할 대답은 회피하고 있었다.
죽었던 사람이 계속 다시 살아나고, 잊고 싶던 과거가 태연하게 현재에 반복 재생된다. 삶이 계속 이런 식이라면, 나는 더 이상 무얼 믿을 수 있을까.
‘대체 시련은 어떻게 극복하는 거야? ’ 내가 묻는 사이, 몇 겹의 가면이 떨어져 나갔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전혀 어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저 미숙하고 무력한 존재에 불과했다.
나는 다시 내게 물었다.
'너는 정말 괜찮은 거니?'
[나를 달래는 기록 #2]
며칠 내내 무릎이 시큰거리도록 걸었다. 걷는 내내 , 너는 정말 괜찮은 거냐는 질문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세상에 '그래도 되는' 사람은 없어. 상처받아 마땅한 사람도, 슬픔의 뒷전으로 밀려나도 괜찮은 존재도 없어.‘
괜찮은 척하던 마음의 가면 하나를 더 벗어 냈다. 그러자 아주 조금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