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진 속의 가을
늦가을 햇살이 아스팔트 찻길을 쓸고 지나갈 때
플라타너스 나무가 어루만지는 골목 어귀는
행인들의 서성이는 소리에 깨어난다
그 아래 익숙한 빨간 우체통도 기지개를 켠다
나도 모르게 스쳐지나간 바람처럼 수신되지 못한 엽서
가을바람이 읽는 동안
의미 없는 수다처럼 바람에 뒹구는 낙엽
저만치 가버린 계절의 뒷자락을 지우고 있다
잎사귀를 다 떨구어낸 나무들의 생채기에 바람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둔한 청각을 자극하며 떠오르면
잊었던 가슴앓이를 느끼는 나, 아직 살아있는 게 분명하다
까마득한 기억 너머 보낸 편지 회신 되지 않는 걸 보면
너 또한 살아있음일 테고
흑백사진 속 단발머리의 너
어느 망각된 시간 속에 꼭꼭 숨은 것이다
햇살 몇 겹 내려앉은 오후
어느 시간 속에 숨어있을 너를 찾다가
플라타너스 잎 수북수북 쌓인 골목길을 밟으며
표정 없는 나는
편지에 미처 쓰지 못한 낱말들을 이리저리 주워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