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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맘 Jan 04. 2020

해피 맘, 해피 베이비

Happy mum, Happy baby

아이를 낳고 다음날 아침 병원 밥을 한술 뜨려고 하는데, 아이 젖을 물릴 시간이라며 간호사가 도와주겠다고 내 병실을 찾아왔다. 나는 바로 숟가락을 놓고 가슴께 단추를 풀려고 하는 순간, 엄마가 먼저 먹고 아이가 먹어야 한다며 남편이 간호사에게 잠시 후에 다시 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간호사는 그래,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지.” 하며 바로 내 병실을 나갔다. 그 순간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숭고한 엄마의 희생 모드에 돌입해있던 나만 그 상황이 조금 어리둥절했다.




그 후 퇴원하고 집에 와서 영유아 검진이나 아이의 예방접종, 엄마의 산후 건강 체크업을 받으러 갈 때마다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동네의 ‘마더스 그룹 (Mothers’ Group)’에 나가보라고 권해주었다. 호주에는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엄마들과 아기들을 위해 동네마다 두 달 정도 매주 일주일에 한 번 모임을 마련해준다. 보통 아기가 두세 달 정도 무렵에 참석하게 되는데, 출산 후 백일 동안 바깥바람을 쐬면 안 되는 한국 문화와는 큰 차이가 있다. 사실 나도 여기에서 아이를 낳은지라 호주 식대로 출산 후 바로 외출도 하고 장도 보러 다녔다. 그리고 아이가 78일째 되던 날, 8월 초 멜버른은 한겨울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침 9시에 아이를 둘둘 싸매고 마더스 그룹을 나갔더랬다.


마더스 그룹 가던 날, 78일 차 초보 엄마는 유모차 겨울용 바람막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여름에 쓰는 벌레 차단용 모기장을 씌워서 나갔더랬다.


백일 무렵의 갓난쟁이들이 열 명 남짓 모여있는 열 평 남짓한 공간이 상상이 되는지.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안고 서서 달래는 엄마, 가슴을 훤히 드러내 놓고 바닥에 앉아 젖을 물리고 있는 엄마, (호주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모유 수유하는 모습을 흔히   있다.) 연신 딸꾹질하는 아이의 등을 두드리는 엄마, 유모차를 흔들흔들 아이를 재우는 엄마, 바로  옆에서 진행자가 하는 말이 들리지 않을 만큼 시끄럽게 딸랑이를 흔들고 있는 엄마까지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자신의 출산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여기는 엄마와 어린아이들이 영화관에서 같이 영화를   있는 세션이 있는데, 우리 동네 영화관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라는 아주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였다. (누가 백일도 되지 않은 아기를 데리고 무슨 영화를 보러 영화관을 가겠냐고 생각하겠지만 호주 엄마들은 간다!)


한국에서 산후풍을 조심하고 산후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여기서는 산후우울증과 엄마들의 정신 건강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호주에는 산후조리원은 없지만 마더스 그룹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엄마가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들어주며, 출산 후에 우주의 중심이 자신이 아닌 아이가   난처한 상황이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고 공감하고 위로받는 자리가 필요한 것이다. 해피 , 해피 베이비니까! 그러나 아이를 더 잘 돌보는 방법, 모유수유를 잘하는 방법 등을 배우려고 갔던 한국인 엄마는 그 한 번의 마더스 그룹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더는 추운 겨울 아침 아이를 싸매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밤에 두 시간마다 깨서 수유하던 시기였다. 따뜻한 내 집에서 아이를 껴안고 한숨이라도 더 자는 것이 나에겐 더 행복했다.




아이를 낳고 나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행복했다. 하지만 내 몸이 회복되기도 전에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고, 아이의 우는 소리를 온종일 듣는 것은 정말이지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해피 맘, 해피 베이비’ 주문을 외워 보았다. 작지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먼저 하려고 노력했다. 매일 샤워를 하고 음악을 들으며 산책하고 아이 사진을 찍고 일기를 썼다. 그렇게 버틸 수 있었다. 내가 멀리 호주에서 처음으로 엄마가 되어가는 여정에는 호주 엄마들의 해피 맘 육아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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