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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로 Sep 30. 2022

안식, 미루지 마세요

퇴사를 한 지 3주 정도 지났다. 나의 목표는 9월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잘만큼 자고 놀만큼 놀고먹고 싶은 것 먹으며 제대로 내게 휴식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단 2일 만에 무너졌다. 나는 여태 제대로 몸과 마음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고 무엇이라도 해야만 시간이 나를 '지나갔다'가 아닌 내가 시간을 '보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단 2일 만에 내게 주어진 안식에 질려 버렸다. 아니, 질렸다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안식이 불안하기만 했다.


당장에 나는 내가 하고자 했던 리스트들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고, 결국 매일같이 의무처럼 연습실과 헬스장에 출근 도장을 찍듯 몸을 움직였다. 집에 있을 때조차 침대에 가만히 누워 쉬질 못했다. 6평 남짓 조만한 원룸에 청소기를 하루에 다섯 번씩 돌렸다. 컵이 하나라도 있는다 싶으면 설거지를 했고, 시간이 남으면 50리터짜리 봉투를 사 와 옷을 버리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그러다 문득 연습실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피아노 앞에서 미지근한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어쩌다 이만큼이나 망가져 버린 걸까. 몸도 마음도 가만 내버려두질 못하고, 나는 왜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걸까. 어느 누구에게도 내게 운동을 하라거나 강요한 적도 없었고 분명 공연 역시 내가 원해서 하게 된 것들인데 '해야만 한다'는 행동의 의무는 내게 또 다른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러다 며칠 전, 20시간을 잤다.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오후 4시에 일어났다. B와 이른 저녁을 먹고 잠시 대화를 나눈 뒤에 밤 9시쯤 나는 다시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살면서 처음으로 몸이 가볍다고 느꼈다.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텐션이 막 높지도 낮지도 않은, 즐겁거나 우울하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냥 내 아침이 '평화'로웠다. 쉴 틈 없이 내가 괴롭혔던 머릿속은 잠과 함께 살면서 처음으로 나의 신체와 함께 안식을 얻었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내게 늦은 휴식을 허락한 것이 후회되었다. 조금만 더 나를 돌보았더라면, 내 머릿속에서 아우성치고 마음이 요동치고 몸이 무너져 내리는 내 자신을 빠르게 알아챘더라면 나는 하루라도 더 평화 속에 살았을 것이다. 쉬어봐야 쉬는 방법을 안다. 그리고, 쉬어봐야 내 자신이 잠시 쉼표를 찍어야 할 타이밍을 안다. 스스로를 너무 못살게 굴 필요는 없다. 내 자신에게 채찍을 쥐어주고 스스로를 때릴 이유가 없다. 내가 아니더라도 사실 세상이 괴롭히지 않는가. 적어도 내 자신만큼은 스스로를 위안하고 쉬어라고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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