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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Feb 01. 2024

책은 떠나도 문장은 남습니다.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중에서


친구나 지인을 만나기 전, 책장 앞에 서서 그 사람에게 어울릴만한 책을 고릅니다. 그 사람을 떠올리며 책을 고르는 일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책을 고르고 나면 한번 훑어봅니다. 어디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지 너무 더럽진 않은지 살피고, 첫 내지에 연필로 이름과 오늘 날짜를 적습니다. 그리고 모아둔 선물 포장 끈으로 책을 두르고 리본을 천천히 묶은 다음 집을 나섭니다.


오늘은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와 「파리의 심리학 카페」 두 권을 골랐습니다. 두 사람을 만나기로 했거든요. 이제 나의 책장을 떠날 책에서 기록할 문장을 적어둡니다.  여기에「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에서 고른 문장들을 옮깁니다.




“시는 하염없는 몰입이라는 점에서 순수고, 순수는 이미 고통에의 참여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시는 무기다.”(11쪽)


“묻어두고 잊어버리는 시간도 필요하잖아요. 그래야 예전에 써놨던 언어에서 벗어나 볼 수 있으니까요.”(32쪽)


“글쓰기는 정말 자기를 믿는 일 같아요.”(36쪽)


“한쪽에만 갇히지 않고 겹눈의 시야를 갖게 해 주죠.”(37쪽)


“시 번역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이다. 번역은 애정을 보내는 일이다.”(47쪽)


“내 생각에 그것은 젠더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이야기, 그래서 문학이 되고야 마는 이야기다".(47쪽)


“바보가 되는 것과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좋아한다.”(105쪽)


“제대로 역사를 알아가고 서로의 모르는 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학으로, 번역으로.”(159쪽)


“사람의 일이란 게 이렇다. 혼자서 하는 것처럼 보여도 순전히 제 힘으로 성사되는 일은 거의 없다. 사람은 관계의 날씨에 영향받는다. 도저히 못 할 것 같다고 굳어버린 마음도 적절한 계기가 주어지면 봄눈처럼 녹기도 한다.”(210쪽)


꽃나무_이상


벌판한복판에 꽃나무하나가있소 근처에는 꽃나무가하나도없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 열심으로생각하는것처럼 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하여 그러는것처럼 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내었소. (212쪽)


“Therefore my age is as a lusty winter(그러므로 나의 나이는 만개한 겨울과 같다.)”_셰익스피어 희극 <뜻대로 하세요> 중에서 (226쪽)


“작가로 살지 않더라도 이 세상에서 좋은 사람으로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계속 읽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 감수성을 유지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싶고, 그렇게 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227쪽)


“언어는 도망갈 수 있는 출구 같은 거”(232쪽)


“시 번역은 결과물이 시여야 하죠. 결과물이 아름답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오히려 원본보다 아름다워도 돼요. 번역은 도착어가 아름답게 느껴져야 되니까 저는 심한 직역도 허용해요. 출발어에만 있고 도착어에는 없는 구조를 억지로 넣는다거나, 문장구조든 단어 모양이든 낯선 게 들어오는 게 좋아요. 이 언어로 쓰일 수 없는 외향을 가지되 아름다우면 좋겠어요.”(237쪽)


“모든 아이들은 신이 아직 인간에게 실망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가지고 태어납니다.”(247쪽)


“모든 여기를 중심으로 저기라는 공이 굴러간다. 중심은 어디에나 있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중에서 (257쪽)




책은 나를 떠나지만, 문장은 남습니다. 바로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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