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등록 갱신을 둘러싼 작은 소동
출장 중이었다. 창원에서 김해공항으로 이동할 때에는 비가 퍼부었다. 그래도 제주행 비행기는 예정대로 뜬단다. 빗길을 무사히 왔으니 차 한잔 마시며 숨을 돌리자 했는데, 전화가 왔다. 언제라도 두 손으로 받는 전화, 병원에서 온 전화다.
장애인등록을 갱신하려면 진료기록과 의사진단서를 다시 받아서 구청에 제출해야 한다. 의사는 곤란한 목소리로 장애인등록을 갱신하는 목적이 뭐냐고 묻는다. 목적이 뭐냐고? 또래 아이들에 비해 기능이 떨어지고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면서 왜 물어보시지? 의사의 말은 기능이 좋아졌기 때문에 중증 장애로 소견을 쓸 수 없고 경증 장애로 나오게 될 것이라고. 장애판정은 지자체마다 다르니 그 결과는 장담 못한단다.
장애인 등록해서 혜택 받은 것은 기차할인, 영화티켓 할인 정도다. 고등학교 갈 때도 기능이 좋아져서 특수학급 배정을 못 받았다. 결국 일반학급에서 생활할 수 없어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마쳤다. 대학입학에도 정신장애는 해당사항 없고, 등록금 감면 같은 것 받아본 적도 없다. 지역 정신건강센터에서도 소아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장애인이지만 지원받을 것이 없는 장애인. 증상이 안 좋으면 병원에 입원해야 하고, 상태가 좋아지면 다른 아이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교수님, 그럼 아이가 집에만 있어야 할까요? 집에서 부모가 끼고만 있을까요? 기능이 나쁘면 나빠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좋아지면 좋아졌으니 제도 바깥에 있으라는 이런 모순이 어디 있습니까? 하루 8시간 직장 생활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 여전히 도움이 많이 필요한 상태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장애인등록이 안되면 장애인채용 지원 자격도 안 되는데요. 4시간 반일제 공원청소직을 알아보려고 해도 장애인등록이 필요합니다. 물론 정신장애라는 걸 알면 채용도 안 하겠지만, 지원할 기회조차 안 주는 거잖아요? 결국 모든 게 가족의 몫이라는 걸 다시 한번 알려주시는 거죠?라고 말하고 말았다.
의사에게 따질 일은 아니었다. 쏟아내고 나니 기운이 빠진다. 비행기도 타야 하는데, 출장도 마쳐야 하는데. 눈을 감고 쉬지도 못하겠고, 헤르만 헤세의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을 펼쳤다.
“그가 갈망하는 것은 오로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다. 그것이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이다.”(79쪽)
헤세가 나무에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내게 하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아이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 아이도, 나도.
제주 도두봉 앞바다를 왼쪽에 두고 달린다. 달리다 힘들면 걷는다. 땀이 흐른다. 이번에는 돌아서서 오른쪽에 바다를 두고 달린다. 검은 밤바다에 복잡한 생각은 던져두고 호흡에만 집중한다. 뛰다 보니 잊어진다. 걷다 보니 아이가 보고 싶다.
2021.7.7. 일기에서 옮김
* 장애인등록은 갱신되었고, 장애인전형으로 취업 지원하는 것은 접었다. 지하철 요금 할인, 영화관람용 할인 등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