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서 Oct 15. 2024

일하며 살기 ‘미션 임파서블’?

바리스타 출근하다 중단, 동료활동가는 탈락....맞는 일 계속 모색

나무는 대학을 6년 다녔다. 의대에 다닌 것이 아니다. 정신질환을 가지고 대학 공부를 하는 것은 어려웠다. 게다가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기초 학력이 부족했다. 20살을 앞두고 앞으로 무엇을 할까? 어떤 일상의 규칙을 만들어야 할까? 우리 가족은 고민을 많이 했다. 결론은 대학 진학이었다. 사회성 훈련의 목적이 가장 컸고, 나무도 소속될 커뮤니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학교 생활은 소속될 곳이 있다는 점에서 즐거웠고, 공부를 따라가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힘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한 휴업과 지방-서울을 매주 오가는 생활도 어려움을 더했다. 그래도 나무는 학교를 끝까지 다녔다. 2023년 2월,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엔 더 걱정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가 또 고민이었다.   

  

하루 12시간 자야 하는데...     


대학 졸업 뒤, 나무는 바리스타 학원에 등록해 자격증을 따고, 자전거정비학원에 다니며 자전거정비 수료증을 받았다. 제과제빵 학원도 다녔다. 하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 여러 번 면접을 봤지만 모두 탈락이었다. 장애인고용공단의 장애인 채용에도 여러 번 응시했다. 서류 통과도 하지 못했다. 나무는 실망했다. 자신감이 떨어진다고 했다. 사실 통과했어도 걱정이었다. 하루 12시간은 자야 일상생활이 가능한 나무 가 하루 3교대 근무를 하거나,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진료 시간, 교수에게 물었다. “이젠 취업이 걱정입니다. 어디라도 가야 할 텐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교수는 지역정신건강복지센터를 찾아가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돈을 벌면 많은 것이 좋아질 것입니다." 라고.


진료 다음날, 무턱대고 센터에 갔다. 담당 사회복지사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줬고, 사례관리를 안내해줬다. 매주 상담을 받고 있던 어느 날, 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정신장애인 바리스타 채용에 지원해보라는 것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시립병원 내 카페에서 일하는 기회였다. 당장 바리스타 자격증과 센터 추천서를 첨부해 서류를 접수했다. 서류통과, 그 다음은 면접이었다. 면접위원 3명에 응시자 4명씩 면접을 봤다. 경쟁률은 4 대 1, 일주일에 6시간씩 6개월 동안 일하는 자리인데도 경쟁률이 높았다. 면접 결과는 불합격, 높은 경쟁률을 뚫기에는 준비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나무는 낙담했지만 서운함을 드러내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나무 가 예비합격자였는데 자리가 생겼으니 다시 면접을 보러 오겠냐는 연락이었다. 나무는 병원으로 뛰어갔다. 작업치료사의 작업성 검사가 끝나고, 출근이 결정났다. 나무는 안전교육을 8시간 수강하고, 통장사본을 준비하고, 보건소에 가서 보건증 발급을 신청했다.  

   

‘거울 치료’되는 동료활동가 지원   

  

드디어 출근하는 날, 손톱을 깨끗하게 깎고 샤워를 평소보다 오래 하고 단정하게 옷을 입고, 나무는 출근했다. 2시간 동안 음료를 만들고 설거지를 한 뒤 퇴근한 나무의 얼굴에 웃음이 환하게 퍼졌다. 함께 일하는 공익근무요원과 역할을 나눠서 일했는데 분위기가 좋다며, 다음에는 설거지를 더 잘해 봐야겠다고 했다.   


하지만 바리스타 출근도 두 달만에 끝났다. 오전 8시 출근조로 변경하라는 지시가 있었는데, 나무에게 이 시간 출근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 이번에는 동료활동가 양성과정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100시간 교육 뒤, 동료활동가로 하루 2시간에서 4시간 동안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그것도 3개월 동안. 그래도 해보는 거지, 그 다음엔 또 다른 일이 연결되겠지 하면서 나무는 동료활동가 양성과정에 지원했다. 다시 서류를 접수하고 면접에 참가했다. 합격. 초발 정신병 발병 환자나 만성질환자를 도와 일상활동을 지원하거나 병원 동행하는 일. 동료 정신질환자를 돕는다는 것에서도 의미가 있지만, 이 교육을 통해 자신의 질병을 객관화하고 약물에 대한 정보, 생활 관리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를 ‘거울 치료’라고 한다고. 나무는 교육 기간 내내 거울을 보며 자신을 단단하게 키워갔다. 하지만 동료활동가 교육이 끝나고 당장 일자리가 연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 몇개월을 기다려 동료활동가에 지원했다. 서류 통과, 면접에서는 최종 탈락했다.


또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그 사이 센터 소개로 대형 프렌차이즈 바리스타 면접을 봤다. 이번에도 탈락. 이번에는 탈락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약물 부작용으로 살이 많이 쪄서 그럴까? 몸집이 큰 남자 청년이여서 바리스타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자전거 정비를 더 배울까, 엑셀을 배울까     


매일 어딘가에 출근하고 일하는 것이, 그 기회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만큼 일한다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는 시간이기도 하고. 월급이 많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 4시간에서 5시간 정도 일하면서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고, 일을 통해 자존하는 기회를 가지고 싶은 것인데. 다른 청년들처럼 일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것뿐인데. 일은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니까 말이다.


나무는 오늘도 엑셀을 배우러 컴퓨터 학원에 가야 할까, 자전거 정비를 더 배워야 할까, 바리스타 학원을 더 다녀야 할까, 궁리 중이다. 다시 모색하고, 다시 도전하면서 나무가 할 수 있는 일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말이다. 살아있으니 무엇인가를 모색하는 것이고, 조현병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다. 맞는 일을 찾는 것은 어느 청년에게나 어려운 일이고, 특히 정신질환을 가지고 살아가는 청년에겐 미션 임파서블이다.


그래도, 그래서, 나무의 도전은 오늘도 계속된다.        



<한겨레21> 1534호 2024.10.21.


https://n.news.naver.com/article/036/000005053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