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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omanist Nov 29. 2023

우리술 인문학 2편 - 전통주의 정의와 분류

전통주와 주세법

 지난 글에선 전통주의 근현대사에 대해 다뤄봤다. 집마다 가양주가 있던 우리술이 어쩌다 참이슬과 장수 막걸리로 대표되는 지금까지 왔는지를 알아봤다. 오늘은 현재를 이야기하려 한다. 


 흔히 내게 가장 좋아하는 우리술을 묻는다면 나는 청주를 떠올린다. 커피나 와인 못지않게 다양한 향과 맛이 있는 청주는 음식과 페어링 하기에도, 술 자체를 음미하기에도 많은 재미가 있다. 다만 그 청주는 주세법상 약주로 분류된다. 약주라기엔 그 어떤 약재도 들어가지 않았고, 전통 청주 제조 방식으로 만들었지만 법적으로 약주다. 한국의 청주는 일본식 사케를 만드는 방법으로 만들어야만 청주로 분류된다.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하나하나 알아보자.


우리술의 분류


 먼저 우리술은 어떻게 분류될까. 복잡한 주세법과 변주를 다 떼고 큰 틀만 단순화해서 얘기해 보려 한다. 우리는 쌀농사를 짓는 민족이다. 당연히 술은 쌀로 만들었다. 이 쌀을 발효시켜 가만히 거르면 쌀로 만든 곡주가 되는데, 이를 잘 섞어서 담아내면 고급 탁주가 된다. 그런데 그냥 이대로 마시기엔 술이 귀하니 이걸 가만히 가라앉혀 위에 뜨는 맑은술을 따로 청주라 담아내고, 남은 술에 물을 부어 또 다른 탁주인 막걸리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어차피 만드는 술, 다양한 부재료를 한 번 넣어보고 싶지 않았을까? 그러니 맛있어 보이고 몸에 좋아 보이는 무언가를 넣어서 같이 숙성시키고 청주와 같이 떠내니, 약주가 된다. 탁주나 청주를 증류시키면 고도수의 전통 소주를 얻을 수 있고, 막걸리까지 걸러낸 부산물에 물과 각종 과일, 향신료를 넣고 끓이면 모주가 된다. 청주나 약주에 소주를 더하면 과하주가 되고, 과일을 같이 담그거나 발효시키면 과실주가 된다. 술들을 섞어 폭탄주와 칵테일 그 중간 어딘가에 있을 혼돈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큰 틀만 다시 정리하자면, 원주인 곡주 발효주는 탁주, 위에 뜬 맑은술만 거르면 청주, 남은 것에 물을 부어 만드는 막걸리(탁주), 여기에 약재를 함께 넣어 만들면 약주, 청주나 탁주를 증류시키면 소주, 과일 넣으면 과실주, 청주와 약주에 소주를 더하면 과하주, 얘네를 섞으면 혼돈주이다. 만드는 과정을 천천히 그려보면 생각보다 어렵거나 복잡한 건 정말 전혀 없다. 다만 여기서 법이 개입하면 조금, 많이 복잡해진다.


일본 사케는 청주, 전통 청주는 약주?


 앞서 말했듯 우리 전통 방식으로 만든 청주는 주세법상 약주로 분류된다. 이런 오류는 당연하게도 일제 강점기부터 내려온 문제다. 일본식 사케는 입국 방식으로 만들고, 우리 전통 청주는 누룩을 이용해서 만든다. 그런데 주세법이 정하는 청주의 기준은 누룩을 1% 미만으로 사용해야만 청주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 만약 1%가 넘는 누룩을 사용한다면 약주로 분류된다. 다시 말해 전통 방식으로 아무리 열심히 청주를 만들어도, 우리는 청주라는 이름으로 판매할 수 없다. 이는 고급 청주는 일본 사케뿐이라는 인식을 심으려는 일제강점기 시절의 만행이었다. 사실 이보다 더한 일도 넘치던 시기기에 법령 자체에는 의문이 없다. 다만 이걸 지금까지 고치지 않아서 수많은 청주 브랜드가 청주라는 이름 대신 약주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출시해야 하는 현재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심지어 청주와 약주의 주세는 모두 30%로 다르지 않다. 수많은 명인분들이 수차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변하지 않는 것도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현대에서 사케는 너무 훌륭한 술이며, 청주의 한 종류임이 분명하다. 입국으로 만드는 게 나쁜 게 아니며, 당연히 누룩과 다른 특징과 장단이 있다. 다만 이런 문제 때문에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제사나 차례상에 올라가는 청주가 전통 방식으로 만든 청주가 아닌 일본식 사케 제조법으로 만든 백화수복이 되었다. 술에 관심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저 청주라 쓰인 것을 상에 올리고자 할 것이고, 그렇게 구할 수 있는 청주 중 일본식이 아닌 전통 청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좀 조상님들이 화나시지 않을까.


전통주의 정의


 문제는 더 있다. 내가 전통주란 단어 대신 우리술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사실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현행법상 전통주는 두 가지가 있다. 민속주와 지역 특산주. 민속주는 무형문화재나 명인분들이 만드는 술을 뜻한다. 지역 특산주는 농업인이 그 지역 농산물을 주원료로 만드는 술이다. 그냥 보면 아무 문제없어 보이지만, 역시나 그렇지 않다. 이는 다시 말해 무형문화재나 명인이 아니고, 농업회사법인이 아니라면 제아무리 전통주를 만들고 복원해도 전통주로 인정받을 수 없단 이야기다. 나아가 지역 특산주는 바로 옆에 좋은 쌀이나 과일이 나더라도 지역구가 다르면 사용할 수 없다. 


 간단한 예로 일반 주류 회사인 하이트진로나 국순당과 같은 곳은 전통 방식으로 무슨 짓을 해도 법적 전통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를 피하고자 국순당은 농업회사법인으로 자회사를 만들어 전통 증류식 소주인 려를 만들었다. 이 경우 전통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지역 특산주를 이용해 쉽게 전통주로 인정받는 방법도 있다. 최근 유행했던 원소주의 경우인데, 원소주는 원주에 위치한 양조장에서 100% 원주 쌀로 술을 빚는다. 당연히 지역 특산주에 해당한다. 


 문제는 그 어떤 조건에도 전통주를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는 점이다. 민속주야 무형문화재거나 명인분들이 하시니 어련히 잘하시겠지만, 전통과 무관한 지역 특산주가 전통주인 건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심지어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낸 수많은 술이 전통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전통주로 인정을 받게 되면 바로 주세가 50% 감경된다. 나아가 인터넷 판매가 가능해진다. 책임만큼이나 혜택도 많은 전통주기에, 법이 보다 발전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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