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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이너뷰Point of View Mar 02. 2022

나의 거리두기 마지막 날

2년 만에 학생들을 만납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막바지에 든 느낌입니다. 방역 조치도 완화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2년의 세월을 도둑맞았지만, 지금은 무엇을 도둑맞았는지도 모르는 형편일 것입니다.


코로나는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재택근무가 불가능했던 사람들을 서로 다른 계급으로 나누어 놓았을지 모릅니다. 앞의 사람들은 전염병을 피하면서 안정적으로 급여를 받았고, 틈나는 대로 재테크까지 하면서 열심히 부를 늘렸겠지요. 그러나 뒤의 사람들은 지금 몸과 마음 여기저기가 멍투성이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재택근무가 가능한 쪽이었습니다. 재테크에는 재주가 없어 계급 상승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그래도 큰 걱정 없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밖에 나가지 못해 답답하다", "마스크는 그만 쓰면 좋겠다" 이런 것은 고통이 아니라 투정이라고 함이 맞겠습니다.


처음에 당황스럽던 재택근무, 공식 명칭으로 비대면 수업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는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고, 조금 더 정성을 담아보려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적응을 마친 비대면의 세계는 생각보다 편리했습니다. 


적응의 수준이 완벽(?)에 가까워질 즈음, 코로나 시대를 지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 무려 2년 만에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을 만나러 갑니다. 


기분 좋은 긴장감


"교수님, 코로나 확진 문자가 오게 되어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격리 기간 때문에 3월 7일부터 학교에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학생들로부터 문자가 여러 통 날아왔습니다. 코로나 확진 때문에 수업에 오지 못한다는 문자입니다. 다른 데는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 학교는 법정 전염병의 경우 '공가'가 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공가서를 제출하고 빨리 쾌유하라는 답장을 보냈습니다. 


당분간은 많이 혼란스러울 듯합니다. 저 또한 밀접 접촉자로 자가격리당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심정은 걱정보다는 기분 좋은 긴장감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벌벌 떨었던 첫 강의


현재 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한 것이 2007년부터니까 거의 15년 경력이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원에 다닐 때는 학교도 많고 학생도 많고 강사법도 없던 시절이라 강의를 할 기회가 비교적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운이 좋아 아주 이른 나이부터 수업을 시작했고요.


처음 했던 강의가 기억이 납니다. 모 대학에서 진행하는 공무원 대상 위탁 교육이었는데, 주로 소방관들이 대상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서른이 되기 전이었는데, 학생 중에는 50이 넘은 분들도 계셨습니다.


솔직히 벌벌 떨었습니다.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지, 수준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한 학기가 지났습니다. 그때의 제 삶을 닮은 엉망인 상태로 한 학기가 지났습니다. 지금이라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첫 강의의 환경이 워낙 하드코어여서 그랬는지, 이후에도 강의에서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이 되었습니다(그냥 원래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긴장이야 말로 모든 퍼포먼스의 적입니다. 특히 생각을 전달하고 나누어야 하는 강의의 경우 정말 치명적이죠. 


결국 처음 준비한 내용을 읊고 강의실을 황급히 나오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경청도, 소통도, 숙의도 긴장하는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끊어야 할 긴장-계획-강박의 악순환


긴장하는 문제를 철저한 준비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하다못해 애드리브까지 준비하는 철저함이죠(준비한 애드리브는 애드리브가 아닌데). 준비가 철저해질수록 수업은 더 어색해졌습니다(다행히 어색함이 딱딱함에 이르지 않은 것은 애드리브조차 준비하는 철저함 덕이겠습니다). 딱히 부실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울림이 있거나 깨달음이 있는 강의의 수준에는 절대 다다를 수 없었습니다.  


이제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습니다. 내가 아는 것,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안다고 착각하는 것을 열심히 정리해 쏟아내는 것은 결코 답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느낀 것, 내가 고민한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더 좋은 전략입니다. 나 스스로 아무리 고민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을 학생들과 나누는 것이 더 좋은 전략입니다. 학생들에게 더 많이 생각하고 말할 기회를 제공하고, 그것을 정성스럽게 들어주는 것이 좋은 전략입니다. 


분명 너무 늦게 깨달은 것입니다. 더 슬픈 것은 또 실패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입니다. 어쨌든 긴장-계획-강박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한 학기 도전하려 합니다. 혹시 긴장하는 버릇을 극복하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살짝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남겨 좋은 악습관이 하나 더 있습니다. 낮과 밤이 바뀌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내일 9시 수업입니다. 오늘 밤은 일찍 잠이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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