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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이너뷰Point of View Mar 04. 2022

명강사 L의 강의 비법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책에서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정확할지 모르겠습니다. 학문을 직업으로 할 수 있을지는 상당 부분 운이 좌우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20세기 초 독일이나 미국의 대학에서 강사들의 급여는 수강생의 머릿수에 따라 정해졌다고 합니다. 젊은 강사 시절을 잘 보내야 나중에 직업 학자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강의를 잘하는 재주는 타고나는 것이므로, 결국 학자자가 되기 위해서는 '운'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학자가 되기 위해 운이 중요한 이유


책은 잃어버렸고, 기억은 확실하지 않아 인용에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강의 능력은 타고난다는 점은 나이를 들 수록 점점 더 공감하게 됩니다. 단지 지식이 많다고 해서, 단지 유머와 위트가 넘친다고 해서 좋은 선생이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강의라는 독특한 '일대 다'의 관계를 이끌어갈 다양한 능력이 신묘하게 어우러져야 좋은 선생이 될 것입니다.


제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 중에 가장 강의를 잘하는 친구는 L입니다. 저보다 후배이기는 하지만 학부, 석사, 박사를 함께 지지고 볶았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료입니다. 제가 학위논문을 쓰고 있던 시절에, L은 처음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가 첫 강의를 하기 전날 밤 저에게 주었던 전화가 잊히지가 않습니다.


"형, 어떻게 해야 강의를 잘할 수 있어요?"


제가 조금 더 경력이 있다고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기특했고,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나는 에너지의 배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학생들을 위하는 열정 50%, 그리고 나 스스로의 발전을 위한 마음 50%"


대충 이런 식의 대답을 한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L은 모 대학에서 강의평가 1위를 놓치지 않는 좋은 교수가 되었습니다. 솔직히 부러웠고, 그래서 그의 좋은 강의의 비법을 알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제가 분석한 L의 비법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세 가지 비법


첫 번째, 안정감입니다. 긴장을 모르는 성격이고, 발성과 음색도 차분하고 명확합니다. 반면에 저는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이고, 목소리는 다소 가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정말 타고난 것이기 때문에 극복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개선의 방법이 없지 않습니다. 체력을 키우는 것이죠. 아무래도 체력이 좋아서 덜 지치면 목소리의 톤도 유지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일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학생에 대한 공감입니다. 관심을 갖고 필요하면 도움을 주려고 노력함으로써 '이 선생이 우리 편이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하기에는 정말 힘든 일입니다. 강단에 서려면 일단 선한 품성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세 번째, (저는 이것이 결정적이라고 봅니다) 옳고 그름에 관한 명확한 입장을 취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다 보면 세상에 완벽하게 옳은 것도 완벽하게 틀린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에서 강의에 나서게 됩니다. 솔직히 약간 흐리멍덩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명확한 입장을 갖지 않으면 누군가로부터 비난을 받을 가능성도 줄고, 언젠가 생각이 바뀌었을 때 말을 바꾼다는 공격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강단에 선 선생이라면 그 이상을 해야 하고, 학생들은 그 이상을 기대합니다. 선생은 더 치열하게 생각해서 입장을 정하고, 그것의 타당성과 한계에 대해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감수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신중한 것이 아니라 게으른 것이고, 사려 깊은 것이 아니라 비겁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배우고 따라 하려고 노력하니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언젠가 유감없는(섭섭한 마음 없이 흡족한) 강의를 하게 될 날이 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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