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읽고 봄에 쓰고 둔다
옛날, 중국에서는
『찻집』 / 라오서/ 오수경 옮김/ 민음사 /2022
중국에도 사람이 살았구나
중국이라는 나라를 잘 알지 못한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아는 중국은 교과서 속에 있다. 넓은 땅과 많은 인구. 5천 년 역사 동안 수시로 우리를 침범한 나라. 살수에서 안시성에서 물리쳤던 당나라 군대, 그리고 몽골과 여진에게 시달린 역사, 인해 전술과 고지전으로 기억되는 한국 전쟁, 역사 속 어느 장면에도 긍정적인 평가가 어렵다. 아편 전쟁과 서양 열강의 침탈로 이어지면서 중국은 세계사 영역으로 넘어갔다.
툭하면 백만 대군을 몰고 다니는 수많은 왕조가 발흥했다 몰락해 간 나라의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까지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 ‘찻집’에는 관심밖이었던 중국 사람들의 삶이 있다. 사실 중국 작가의 작품은 읽어 본 적도 없고, 그 시대의 중국을 알지도 못하기에 다시 생각했다. 중국에도 사람이 살았구나.
3막의 희곡, 버티는 사장님
북경에서 나름 유명한 찻집을 운영하는 주인공 왕이발이 보고 겪는 약 50년 간의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다양한 등장인물만큼 세밀하게 중국의 일반인, 도시 서민들의 상태를 보여준다.
역사의 한복판에서 지탱하며 버티고 살아가는 서민들의 애환이라는 면에서 앞서 읽었던 카밀로 호세 셀라의 『벌집』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전개 양상은 전혀 다르다. 일단 상연을 전제로 한 희곡으로 장소와 등장인물 숫자에 제약이 있다. 전체 3막은 각각 무술년 정변 시기, 신해혁명 전후 군벌들의 경쟁 시점, 일본 패망 후 민국 수립 이전의 무질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 세대와 대를 이어 후세대가 등장하고,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며 명맥을 이어가던 찻집이 마지막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한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권력자가 등장하고 그에 빌붙어 기회를 노리는 자들과 오로지 전통 생활만을 고수하며 시간을 죽이는 노인들 사이에서 변화를 따라가며 힘들게 명맥을 유지하던 왕이발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최후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인생인가. 자영업자의 최후인가.
나랏일은 이야기하지 맙시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지만 찻집에는 ‘나랏일은 이야기하지 맙시다’라는 주의문이 붙어 있다. 찻집의 평화 유지와 손님들의 안녕을 바라는 왕이발의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1막에서는 청나라 말기의 황폐한 모습을 보여주듯 자식을 먹이지 못해 팔러 나온 어미가 등장하고, 아이들 사가는 것은 부패의 상징인 환관이다.
그렇게 팔려간 아이는 2막에 성인이 되어 돌아온다. 몰락한 환관에게서 벗어난 강순자는 환관의 양자로 팔려갔던 강대력을 데리고 새 삶을 찾아 찻집으로 왔다. 그리고 강대력은 3막에서 혁명에 참여하며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삶의 희망과 생명력을 보여준다. 반면 아이를 팔았던 중개상 유마는 찻집에서 말 한마디 잘못하여 탈영병으로 몰려 죽었고 그 아들 소유마는 3막에서 새로운 권력을 등에 없고 찻집을 뺏기 위해 돌아온다.
약자는 계속 약자인 체로 희망을 말하지만 나쁜 놈은 더 나쁜 놈으로 세대를 바꾸며 변하는 모습에 울컥하며 혀를 차게 한다. 그렇게 복수라고 할까 아니면 제물이라고 할까. 소유마의 탐욕에 왕이발은 버틸 수 없었다.
늙고 힘들고 주변의 사람들도 떠났다. 정치와 거리 두고 장사만 열심히 했는데 그놈의 권력이 사람을 죽인다. 나랏일에 관심두지 않고 자기 일만 열심히 해도 세상이 나빠지면 영향받는다. 내버려 두지 않는다.
역사 속에 개인은 자유로울 수 없다. 백면 대군 중 한 명 죽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지만 그들의 삶은 소중하다.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 이 작품을 쓴 라오서 조차도 이후의 문화 혁명 과정에서 역사 속에 희생된 한사람으로 생을 마무리한다. 우리가 공부하는 역사 안에는 실제 숨 쉬고 억척대며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있다. 중국이라는 나라만큼 많은 사람이 덧없이 죽은 나라는 많다. 나랏일에 관심을 같고 더 좋은 방향을 찾아보자. 그게 덜 죽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