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철학#8
미국 유학 중 만난 여자친구들과 만나서 자주 이야기하는 토픽 중에 하나가 ‘청순한 남자’에 관한 이슈이다. 우리들에게 청순한 남자의 정의는 저마다 달랐지만, 합의된 공통사항은 부끄러워할 줄 아는 남자가 청순해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대화를 나누는 나와 친구들에게 ‘청순한 남자’는 매력적인 남성상이라는 점이 전제되어 있다. 왜 우리는 청순한 남자를 좋아하는가? 부끄러워 할 줄 안다는 것은, 과도한 자기 중심성을 요구받는 왜곡된 남성상을 강요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능력이다. 안타깝게도 한국남성들 중에서 당당하게 부끄러울 줄 아는능력을 가진 남성들을 발견하는 건 보기 드문 일이라는 것이 대화를 나눈 우리들의 공통된 경험들이었다. 청순한 남자에 대한 이슈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없는 사회적 맥락과도 연관되어있지만, 나는 이 지면을 통해서는 감정 그 자체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춰보고자 한다.
감정이라는 주제는 문화 예술 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주목받는 연구주제이다. 감정에 대한 많은 이론들 가운데 헤겔의 감정이론은 이성적 사유를 위한 가장 중요한 토대로서의 감정을 설명해주고 있다. 헤겔은 이성의 철학자, 사변철학자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의식 구조를 감정, 표상, 이성으로 구분하며 설명하는데, 모든 단계의 의식구조는 반드시 이성의 매개를 통하여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성으로 매개되지 않은 직접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이나 표상들은 온전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의식은 정지되거나 분절적인 사유를 지양하고, 무한성과 유한성이 서로를 초월하고 매개하는 사유다. 이성을 강조하는 헤겔은 철학자이긴 하지만, 이성을 통해 초월적 사유를 지향하기에, 나는 헤겔을 초월적 철학자라고 부르고 싶다. 헤겔에게서 가장 중요한건 한 곳에서만 규정적으로 머무르거나 멈추는 방식의 물화적 사유체계를 극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헤겔은 변증법적 운동을 사유의 제일 원칙이자 이성의 정체성으로 여긴다.
변증법적 이성을 그토록 강조한 헤겔이지만, 감정에 대한 그의 견해도 이성 못지 않게 독특하고 중요한 토대를 제공한다. 헤겔은 감정 이전에 존재하는 직접성(immediacy)의 단계도 설명하는데, 직접성의 단계는 아예 주체와 대상이 인식되지도 않는 상태이기에 이 단계는 매우 주관적인 확실성(certainty)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감정의 상태로 접어들면서 비로소 주관적인 주체가 객관적인 대상에 의해 오롯이 영향받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주체와 대상이 동시에 인지되는 상태가 감정인 것이다. 감정은 아직 매개가 일어나지 않은 직접적 상태로 존재하기에 아직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대상의 객관적 내용이 분명하게 분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감정을 넘어 이성적 의식의 단계에 들어서면, 비로소 주체와 대상이 분명하게 분리됨으로써 감정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 헤겔의 사유구조이다. 주체와 대상간의 변증법적인 운동을 가장 중요시하는 헤겔의 사유구조에는 물론 모든 인식구조에서 주체와 대상을 이성으로 매개하는 과정이 가장 우선시되지만, 감정 역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유의 토대이다. 이를 위해, 헤겔은 경험적인 감정과 종교적인 감정으로 나누어서 구분한다. 경험적 감정은 경험하는 주체에만 초점을 맞추어 일시적이고 즉흥적인데 반해, 종교적 감정은 객관적인 대상으로부터 주체에게 오는 ‘연결성’에 초점을 맞추기에 자아중심적이고 일시적인 감정상태에서 벗어나, 대상을 인식하는 변증법적 사유체계로까지 나아가게 한다고 보았다. 즉, 경험적이고 즉흥적인 감정은 헤겔의 사유구조 체계를 설명해주지 못하지만, 종교적 감정은 주체와 대상의 변증법적 운동의 기초를 만들어 주는 토대이자 이성적 사유구조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헤겔은 감정을 설명할 때 씨앗과 나무의 비유를 사용한다. 그는 앎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고 설명하는데, 표면적 지식과 다르게 ‘내면적 지혜’는 주체와 대상의 역동적인 변화와 한계적 사유를 넘어서는 초월적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종교적 감정은 내면적 지혜로 나아가게 하는데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헤겔의 감정이론에 따르면, 종교적 감정이란 주체와 대상간의 역동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 가운데에 있는 변화를 통해 사유체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헤겔이 말하는 정지된 물화적 사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감정에 제대로 충실해야 한다. 감정에 오롯이 충실할 수 있을 때 이성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단순히 일시적인 경험적 감정들에 충실하라는 말이 아니다. 객관적 진리의 대상으로부터 다가오는 내면적 지혜에 스스로를 개방하여 변화에 자신을 맡기는 감정의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을 헤겔은 종교적 감정이라고 설명했고, 종교적 감정을 통해서만이 주체는 초월적 이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헤겔이 지향하는 초월적 이성의 반대개념은 자기중심적인 물화적 이성이다. 자기 안에 머물기만 하는 이성적 사유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타자와의 연결성을 차단시킴으로써 객관적 진리로부터 오는 초월적 사유를 막는다. 헤겔에게 진리는 내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밖의 타자들로 부터 역동적으로 운동하는 가운데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헤겔의 자유개념 역시 내안에 머무는 것을 넘어서서 타자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나를 느낄 수 있을때 진정한 자유성취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서두에서 말했던 감정을 억압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유로운 주체가 되기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중심성에 사로잡힌 물화적 사유와 감정에서 벗어나야한다. 나만 홀로 있는 이기적 감정상태에서 벗어나, 모두와 함께 연결된 대상들(혹은 신이라는 대상)로 부터 얻는 종교적 감정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자아중심성으로부터 벗어나 타자와 함께함으로써 얻는 진정한 자유는 소외된 감정과 이성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낼 것이다. 헤겔의 감정이론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진정한 자유와 이성을 위해서 우리는 충분히 감정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정을 해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