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 본격 맘고생 2/5
4월에 독일어 B1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시험인지 누구보다 내 상황을 잘 아는 율리아인데, 갑작스러운 통보였다.
율리아는 당장 아이를 맡기지 말라는 게 아니니 차차 상의해 결정하자고 했지만, 그날 아이를 맡기고 독어 수업에 간 나는 전혀 수업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건 다 제치고라도, 내 아이를 맡을 의사가 없는 사람의 손에 내 아이가 맡겨져 있다는 것이 그렇게 마음이 불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내 마음대로 안 나갈 수 있는 수업이 아니니까.
아이들은 정말 신기하다.
그 어렵고 긴 독일어로 율리아가 나에게, 왜 우리가 놀이방에 나올 수 없는지 설명을 마치자 그동안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율리아 싫어. 놀이방 싫어."
그러더니 율리아 무릎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갔다.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그 독일어들을, 아이는 직관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녀가 더 이상 자신을 돌보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독어 선생님 다리아에게, 수업을 듣지 않고도 4월 B1 시험을 치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또 최대한 빨리 언제부터 수업을 듣지 않아도 시험을 치를 자격이 되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내 독일어는 이미 B1 시험을 통과하고도 남는다. 그것이 내가 12월에 있을 시험을 4월로 당긴 이유니까.
중요한 것은 600시간을 채우지 않고도 시험 자격이 되는지였다.
다리아와 마그다는 독어 수업에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내 사정을 듣더니 정색을 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처사냐고.
나는 내가 교육을 잘 못 시켜 우리 아이가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고, 내 잘못이라고 했다.
다리아는, 그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Tagesmutter(탁아소 보모)는 두 달 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자격이 주어지는 보육교사라며 그 사람 말을 전적으로 믿지 말라고 했다.
마그다는 더욱 흥분했다. 나도 파리에서 5년 동안 유치원 선생님을 했지만 아이가 문제가 있으니 나가라는 케이스는 본 적이 없다고.
물론 다루기 쉬운 아이가 있고 어려운 아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것도 선생님의 능력이라고 했다.
아직 두 살도 안된 아이를 문제가 있다며 내쫓는 것은 당연히 선생님의 역량 부족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덧붙여, 네가 작은 동양 여자인 데다 성격도 유순하니 만만하게 보고 자기 편한 대로 쫓아낸 것이라고 했다.
내가 유순하다라...
그랬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면서 나는 늘상 자기주장이 강하고 센 아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 나라 독일에서 독일 여자들과 부딪혀보니 훗. 이 여자들은 정말 세다. 말도 못 하게 세다.
목소리가 크고 덩치가 커서가 아니라 키가 작은 여자든, 키가 큰 여자든, 말라비틀어진 여자든, 옷이 터져나가게 뚱뚱한 여자든, 자분자분한 여자든, 우악스러운 여자든...
하여간 베이스 자체가 한국에서 세다는 여자들보다 몇 단계는 위에 있다. 그리고 그녀들이 보는 내 모습은 율리아 말대로 깨지기 쉬운 도자기 같은 여자인 것이다.
그것은 이 독일 사회에서 결코 좋은 말이 아니었다.
나는 그전까지는 아이가 놀이방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전적으로 나의 잘못과 아이의 문제에서 생각을 했다.
그런데 폴란드인인 그들의 관점은 조금 달랐다.
독일에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지, 과연 이 상황을 얼마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조금씩 의문이 생겼다.
아이가 마음에 걸려 나는 목요일에도 도저히 제대로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원래는 2월 말까지는 수업에 나가려고 했으나 그날 저녁, 다리아에게서 언제든 수업을 관둬도 시험을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2월 22일 월요일부터 나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18일 목요일 저녁부터 빈이는 집에 있게 되었다. 그날부로 나는 더 이상 독일어 공부를 하지 않았다. 저녁마다 보던 뉴스도, 독일어 라디오도 끊었고 책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19,20,21일까지 내리 3일 동안 빈이와 놀아주는 것과 요리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요리 조차도 빈이 손에 칼을 쥐어주고 함께 만들었다.
눈을 뜬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오직 아이 하고만 놀았다. 그리고 안아주었고, 쓰다듬어주었고, 뽀뽀해주었다. 아이가 해달라는 모든 것을 해주었다.
빈이가 나에게 원한 것은 초콜릿도, 젤리 곰도 아닌 단 한 가지였다.
"엄마. 책 읽어줘."
처음으로 아이가 원하는 만큼 책을 읽어주었다. 한 시간 정도 읽어주니 졸리다며 빈이가 먼저 책을 덮고 얌전히 잠자리에 들었다.
늘 더 읽어달라는 책을 내가 먼저 덮었고 빈이는 한동안 울다가 잠이 들었는데.. 한 시간은 읽어줘야 만족이 되었던가보다.
그리고 빈이는 당장 19일부터 그동안 해왔던 모든 문제 행동들을 멈추었다. 그 3일간 빈이는 단 한 번도 나에게 혼날 짓을 하지 않았다.
사랑스러웠고, 사랑스러웠고, 또 사랑스러웠다.
나는 아이를 재워놓고, 밤마다 거실에 앉아 많은 생각을 했다. 율리아가 나에게 한 말들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내가 놓친 것은 없을까, 행간을 읽고자 무척이나 애를 썼다.
생각하고 생각하니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내가 늘 피곤해 보인다... 아파 보인다라..
화장기술을 더 연마해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눈썹 그리는 게 어려워 지난 반년 간 매일 다른 눈썹을 그리는 것도 모자라 짝짝이 눈썹인 날도 많았는데, 눈썹 신경 쓰느라 다크를 채 못 지운 허접한 내 화장기술이 원망스러웠다.
나이 삼십 먹도록 색조화장도 못하는 여자. 창피했다.
늘 바쁘고 일이 많아 보인다라..
내가 남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은 없다.
여느 아이 엄마들이 그렇듯 나도 밥하고, 빨래하고, 살림하고 아이 돌보고 산다. 거기다 플러스 독일어 공부가 하나 더 있을 뿐.
다만 나는 남편이 없을 뿐이다. 집에 곰팡이가 펴도 내가 사람을 불러야 하고, 보험사와 일이 생겨도 내가 통화를 해야 한다.
일을 분담할 사람이 없어 내 몫이 많아지는 건 당연한 데다 옷에 달린 주머니처럼 아이를 늘 옆에 달고 다니는 것도 당연하니 일은 더 많아지고, 시간은 더 걸릴 수밖에.
게다가 모든 일에는 기한이 있고, 근무환경 좋은 독일이란 나라에 사는 통에 금요일 오전이면 이미 주말이고, 여차하면 마감시간이라 나는 늘 가방 메고 유모차 밀고 종종걸음이다.
아이랑 집에서 쉬며 안정을 하라는데, 누구는 몰라서 안 쉬나!
이렇게 바쁘게 돌아다녀도 2017년이나 돼야 엉덩이를 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가만히 집에 앉아 있으면 진전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도대체 누가 내 앞가림을 해줄 거냐고.!!!
4월에 시험 보고 나면 한숨 돌릴 수 있어 그때까지 전력 질주하려던 건데 허리가 꺾인 기분이었다.
당시 내 생활은 6시 기상. 오전에는 독어 수업 가고, 오후에는 빈이랑 놀아주고, 주 2회 문화센터 아기 수업도 가고, 저녁 7시에 아이 재워놓고 7-9시까지 밀린 집안일하고, 9-12시까지 독일어 공부하고 12-6시 수면.
늦어도 6시면 일어나 바쁘게 아이 도시락 싸고 아이랑 나랑 씻고 아침 먹고 나갈 준비하고 8시에 빈이 놀이방 데려다주고 다시 하루 시작.
그래서 정말 바빴다.
거울을 보니 눈이 퀭한 게 한눈에 봐도 얼굴이 홀쭉해 체중계에 올라가 봤다.
세상에.. 42킬로였다. 42킬로..
중학교 이후로 본 적이 없는 몸무게다. 내 정상체중은 46킬로고, 나는 살이 잘 찌지도 않지만 잘 빠지지도 않는 스타일이라 10년 넘게 한결같이 46킬로 대였다.
주변에서는 나더러 잘 먹으라고 했지만, 42킬로는 안 먹어서 나올 수 있는 체중이 아니다.
딱 한번, 웨딩사진 찍는다고 3개월을 식이요법 하며 요가와 수영을 병행했을 때 44.5킬로까지 내려가 봤고, 감기로 쓰러져서 일주일을 누워있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45킬로 밑으로 내려가면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을.
45킬로는 내가 건강하기 위해 떨어지면 안 되는 마지노선의 몸무게다.
그런데 내가 지금 옷을 다 입고도 42킬로로 12킬로의 아들을 한 손으로 번쩍 들고 다른 손으로는 10킬로가 넘는 짐을 들고 매일같이 3층을 오르내리며 살고 있다.
내 정상체중의 약 1/11이 날아가버린 현재 상태.. 42킬로는 단순한 몸무게가 아니었다.
내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 바로 그 자체였다.
그 와중에 빈이가 놀이방에서 잘렸다는 소식을 듣고, 다들 한 마디씩 했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말은 아이를 때리라는 말이었다. 말을 해서 듣는 아이가 있고, 못 알아듣는 아이가 있는데 네 아들은 지금 때려서 잡지 않으면 매일 유치원이고, 학교고 불려 다닐 거라고.
이미 더 큰 아이를 키우는 다른 엄마들에게서 종종 들어왔던 말이었다.
가정형편이나 인종에 따른 차별은 하지 않아도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모범생 아이를 예뻐하고, 공부 못하고 통제 안 되는 아이들은 문제아로 낙인찍어 아주 철저하게 외면하는 게 독일학교라고 했기 때문이다.
부모도 관심을 두지 않는 너 같은 아이를 왜 내가 신경 써야 하니?라고 한단다.. 교사가...
나는 사랑의 매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특히나 문제가 있는 아이라면 더더욱이 필요한 것은 매가 아니라 사랑과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자기 말을 들어주고, 자기 마음을 알아주고,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을 만날 때 변화한다. 그것은 나의 변하지 않는 신념이고 내 교육관의 근간이다.
임신 중에 남편과도 딱 한 가지 약속을 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때리지 말자고. 그런데 나는 지금 네 자식은 때려야 말을 듣는 아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었다.
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매가 아니라 사랑과 관심이라고 하자,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이라고 했다.
아이를 때리지 않기로 한 것은 남편과 함께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기로 한 단 한 가지 교육방침이라고 하자 아버지가 없기 때문에 더더욱 때려야 한다고 했다.
엄마가 아들을 다루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아느냐고.
너랑 친하다는 **엄마가 니 아들 버릇없어 싫어하는 거 눈치 못 챘느냐고.
나는 그때도 정말 깜짝 놀랐다.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기로서니 정말 그랬을까? **엄마의 표정과 행동들이 머리를 스쳤다.
그제야 마음에 걸리는 말들이 몇 가지 떠올랐다. 그때 그런 말들이.. 정말 나 들으라고 돌려 말했던 걸까.
그 엄마 성격에, 정말 그리 생각한다면 충분히 돌려 말했을 법 하긴 하지만.. 정말 이 사람 말이 맞는 걸까?
내가 그렇게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었고, 내 아이는 그동안 주변으로부터 그렇게 눈치와 미움을 받고 있었던 것일까.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6년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