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 본격 개고생 2/2
그건 바로, Grippe.
사전을 찾아보니 그리페는 독감이었다.
독감이 그렇게 무서운 놈인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독감은 곶감보다도 무서운 놈이었다 정말...
아이가 침대를 오르락내리락, 놀아달라고 나를 잡아끌고, 이거 달라 저거 달라 요구를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아이를 쳐다보고 진지하게 말했다.
"빈아. 엄마가 너무 아파. 정말 너무너무 아파. 그래서 엄마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엄마 좀 도와줄래? 가서 혼자 놀아 빈다. 엄마 조금만 쉴게. 부탁해."
아이는 침대로 올라와 내 옆에 딱 붙어서는 내 이마를 짚고, 팔자 눈썹을 한 채로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엄마 너무 아파. 엄마 너무 아파"를 반복했다. 그 말이 인상 깊었나 보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 심정은 당연히 아이를 대신해 내가 아파주고 싶다.
하지만 정말 나와 아이 중에 누가 아프겠냐고 고르라 한다면, 지난 반년 간의 경험을 통해 나는 주저 없이 아이라고 고르겠다.
그것이 독고다이 육아를 하는 싱글맘이다.
아이가 아프면 밤을 새워서라도 내가 돌보고, 급할 때는 맨발로 업고 뛸 수라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프면, 그것은 정말로 최악이다.
아이보다 먼저 건강해야 하는 게 엄마다. 그래야 아이를 돌 볼 수 있으니까.
엄마는 내가 그렇게 아프자 누구 다른 사람한테 도움이라도 청하라는데, 사실 나는 누구에게 무슨 도움을 청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 친정 가족들이 있다면 와서 청소도 해주고, 밥도 해주고, 당연히 아이도 봐줄 테고, 장도 봐다주고, 나와 아이를 데리고 병원도 가 줄 테지만...
아무리 지인이라 해도 안 지 일 년도 안 된 남들이다.
와서 밥 좀 해달라고? 집 좀 치워달라고? 그런 부탁이 어디 쉬운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를 맡길 곳이었지만, 한두 시간도 아니고 적어도 하룻밤에서 2-3일 아이를 봐주고 소아과도 데려가 달라는.. 그런 부탁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게다가 평일 오전 시간에 누가 일도 안 하고 집에 있겠나.
나는 엄마에게 그냥 좀 쉬면 된다고 했지만 몸은 점점 더 아파왔다. 약국에서 약 배달은 영업시간이 끝나는 저녁에나 가져다준다고 했다.
나는 아침에 놀이방 보모가 임시방편으로 준 아스피린이 떠올랐다. 일단 그거라도 물에 타 한 컵 마셨더니 30분 정도 지나자 조금 나아졌다.
여전히 머리가 아프고, 기침이 났지만, 근육통이 나아지니 그래도 살 것 같았다.
어떻게 그렇게 누가 두들겨 팬 듯이 아플 수가 있을까..
그런데 약 기운이 두 시간을 채 못 갔다. 내 몸은 정말 심상치 않았다.
어렵게 용기를 내 차가 있는 한국인 언니에게 퇴근할 때 장을 봐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언니는 당연히 그러마 했다.
나는 베아테에게도 내가 아프다는 것을 알렸다. 차로 3시간 반 거리에 사는 베아테에게 와달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시지를 보냈는데 베아테는 바로 내게 전화를 걸었고, 나와 통화를 마치고 몇 시간 뒤 다음 날 바로 우리 집에 오겠다고 했다.
다행히 다음날이 금요일이니 오전 근무만 하고 12시쯤 출발하겠다고.. 얼마나 고맙던지.. 우리를 보살펴 줄 사람이 오는 것이다.
장례식이 10일 수요일이었다.
나는 그날 오후부터 아프기 시작해 약이 배달된 11일 목요일 저녁 7시까지 가장 아팠다. 약을 먹은 뒤로 상태가 나아져 12일 금요일 정오 베아테가 출발할 무렵에는 이미 혼자 힘으로 집안을 걸어 다닐 수도 있었다.
나는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굶다가 11일 저녁 언니가 사다준 샌드위치를 먹고, 12일 오전에는 빈이랑 식빵에 누텔라와 땅콩버터를 발라 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3일 동안 침대에서 식빵과 물, 사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런 줄만 알았는데...
22개월 아이는 기특하게 혼자서도 부지런히 바나나며 사과, 귤을 찾아 먹었던가보다. 집안 곳곳 과일 껍질들이 놓여 있었다.
내 새끼.
너 어디 내놔도 굶어 죽지는 않겠다.
나는 그동안 아이 기저귀만 겨우겨우 갈았을 뿐 전혀 아이를 돌 볼 수 없었다. 요리는커녕 내 몸도 씻지를 못했는데 집안일이라고 했을 리가 만무했다.
3일을 앓아누워 집안일을 올 스톱했으니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주방은 며칠 전부터 쌓아둔 그릇들로 넘쳐났고, 환기도 제대로 못 시킨 집안 공기 하며, 마구 벗어 놓은 옷가지들, 널브러진 신발들...
베아테가 오기 전에 대충대충 큰 것들 만이라도 정리를 했다.
4시가 좀 넘어 베아테가 도착했다.
장을 잔뜩 봐온 베아테는 거지꼴을 한 우리를 번갈아 안아주고는 나를 침실로 밀어 넣고 한숨 자라며 문을 닫았다.
놀이터이자 덤블링 장이었던 침대가 갑자기 고요해졌다.
내 배 위로, 등 위로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빈이가 사라지고, 드디어 3일 만에 온전히 쉴 수 있게 되었는데 도리어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오전 근무만 하면 화창한 주말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일을 마치자마자 그 먼 길을 운전하고 와서는 또 장을 보고, 집에 오자마다 달그락달그락 분주한 베아테에게 고맙고 또 미안했다.
내가 몸이 이렇게 아프고 힘들 때에, 이렇게 요긴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게다가 마음이 없이는 해줄 수 없는 일이니까 그게 더 감사할 뿐이고..
문을 열고 나가니 우리 집에 꽃병이 없어서 그랬는지 컵 3개에 내가 좋아하는 튤립이 나뉘어 담겨 있고, 베아테는 이미 거실과 주방 정리 및 설거지를 끝내고 치킨 수프를 끓이고 있었다.
치킨 수프는 독감에 특히 좋다며.
엄마가 온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엄마는 내가 다 죽어가자 당장이라도 날아 올 기세였지만 내가 말렸다. 엄마가 표 끊어 도착할 때면 나는 이미 다 나았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베아테 이모가 온다고 하자 엄마가 더 고마워했고, 감동했다.
아이는 베아테가 사 온 노래책을 들고 신이 나 있었다. 3일간 저도 많이 힘들고 심심했을 것이다.
베아테가 끓여준 치킨 수프는 정말 최고로 맛있었다. 나는 3일 만에 처음으로 따뜻한 음식을 입에 넣었고, 두 그릇을 비웠다.
그날 오후 또 다른 언니가 북어죽을 끓여다 주었다. 몸이 제일 아팠을 때 다른 한국인 언니에게, 혹시 내가 정신을 잃을까 봐 그러니 다음날 연락이 안 되면 한번 찾아와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랬더니 혼자 있을 내가 밥을 못 먹고 있을까 봐 죽을 끓여온 것이다. 그 언니는 바로 전날 한국에서 막 독일로 들어온 터라 먹을 걸 해다 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죽을 받아 들고 나는 한동안 가슴팍이 뜨거워졌었다.
혼자 아팠던 이틀 동안 정말 많이 아팠고, 너무 아파서 서러울 틈도 없었는데 베아테가 있는 우리 집은 참으로 따뜻하고, 깨끗하고, 포근했다.
베아테는 우리에게 독감이 옮을까 봐 거실에 매트리스를 깔고 혼자 잤고, 일요일 오전까지 우리를 돌봐주다 돌아갔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부터 나는 기침을 제외한 모든 증상이 사라졌지만, 내가 낫자마자 아이가 열이 끓으며 아프기 시작했고 베아테도 바로 월요일부터 꼬박 한주를 아파서 누워있었다고 한다.
하... 이 놈의 독감은 정말 염치도 없지.
왜 베아테한테까지 옮아서...
아이는 일요일, 월요일까지 아팠고 월요일에 소아과에 다녀온 뒤로 나아졌다.
나는 이미 너무 오랫동안 앓아누웠기 때문에 늦어도 수요일에는 독일어 수업에 나가야 했다.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수업이라 출석률이 중요한데 이미 탁아소 보모의 병가로 나는 이틀 무단결석을 해야만 했고, 독감 진단서도 화요일까지가 끝이었다.
그래서 수요일에 아이를 데리고 놀이방에 갔는데...
탁아소 보모는 우리 아이를 더 이상 맡을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그날 놀이방에 더는 나오지 않는 게 좋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2월 17일의 일이었다.
그리고 2월 말까지 나는 다시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아팠던 몸이 낫자마자, 마음이 아픈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6년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