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싱글맘이 아프면 생기는 일

싱글맘 본격 개고생 1/2

by 뿌리와 날개

장례식에 다녀오고 몇 시간 뒤 아이가 열이 났다. 39도가 넘어 해열제를 먹이고 같이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아이는 열이 내렸는데 내가 아프기 시작했다.


평소 잘 아프지 않은 편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자고 일어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밤새 아파서 끙끙 앓느라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었고, 급기야 아침에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정말 아파서, 그래서 더 악착같이 일어났다. 아이를 놀이방에라도 맡기고 와야 3시간 남짓이라도 혼자 누워있을 수 있을 테니까...








아이랑 나랑 대충 양치만 한 채로 무슨 정신으로 옷을 입혔는지도 모르게 챙겨 나왔는데 그 와중에 도시락이랑 물은 그래도 잊지 않고 쌌다.


3층에서 1층까지 내려가는데도 온 몸이 부들부들,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아이는 안아달라고 보채서 기저귀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아이를 안고 내려오다 다리에 힘이 풀려 구를 뻔했다.


난간을 잡고 간신히 내려왔다.


지하실에서 유모차를 꺼내 밖으로 나와 아이를 태우고, 가방을 싣고 걸음을 옮기는데 하... 허리가 어찌나 아픈 지 끊어질 것 같았다.


정신없이 나오느라 바지도 한 겹만 입었더니 춥기는 또 얼마나 춥던지.


그래도 아이만 맡기고 오면 누워있을 수 있으니 정말 죽을힘을 다해 놀이방에 갔는데 놀이방 보모는 내 모습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아이도 어제 열이 났으니 잘 봐달라고 했다. 보모는 열이 난 지 24시간 이내이면 아이를 맡길 수 없다고 했다.


맞다.

독일에서는 유치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어도 보통 24-48시간은 열이 떨어진 상태였어야 (Fieberfrei) 아이를 맡길 수 있다.


너무 아파서 아이 생각은 전혀 못했던 것이다.


정말 울고 싶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겨우 3시간 반 맡기자고 기를 쓰고 도시락까지 싸서 오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데 아이를 보니 애도 눈 밑에 붉은 다크서클이 짙게 져 있었다.


원래 웬만큼 열이 나고 아파도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아이인 데다 내가 너무 아파서 신경을 못 썼는데, 애도 상태가 엉망이었던 것이다.


집에 다시 돌아가는데 눈물이 났다. 서러워서가 아니라 정말로 온몸이 너무너무 아파서...








다리가 풀려서 몇 번을 휘청휘청, 비틀거리면서도 유모차에 몸을 의지해 폴더처럼 허리를 접고 겨우겨우 돌아오는 길에 집 앞 병원에 들렸다.


유럽에 4년 넘게 살았지만 나는 한 번도 하우스닥터가 없었다.


아파야 찾아갈 텐데 그동안 병원을 가야 할 만큼 아팠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건강하다, 난.


이 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 정기검진을 다닐 치과를 알아보며 집에서 가까운 하우스닥터 위치만 몇 개 알아두고 나중에 가게 되면 좋은 데 골라서 가야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아파 죽겠으니 선택의 여지고 나발이고 없었다. 예약도 없이 갑작스럽지만, 일단 살고 봐야 했다.


병원 입구에 문턱이 3개였다. 죽을힘을 다해 유모차를 끌고 계단을 올라가 무겁디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접수원이 새 환자는 안 받는다고 돌아가랜다.


하... 여기가 아니면 다음으로 가까운 병원은 멀쩡한 컨디션으로 걸어도 10분 거리였다.


나는 아파서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접수대에 턱만 걸쳐놓고는 아파 죽을 것 같다고, 쓰러지기 직전이라고, 내가 차도 없어서 아이 데리고 도저히 다른 병원으로 갈 힘이 없다고, 다음부터는 안 올 테니 제발 오늘 한 번만 진료받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접수원이 다시 한번 야멸차게 안된다고 할 때, 의사가 밖으로 나와 내 꼴과 상황을 보더니 바로 진료실로 들어오라고 했다.


대기환자가 많았는데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멎지 않는 기침, 허리 통증,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프고, 특히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지고 아파서 걸을 수가 없고, 열과 두통이 있었다.


내 증상을 설명했더니 의사는 전형적인 Grippe라고 했다.


그리페가 뭐냐니 요즘 아시아에서 유행하는 건데 너도 아시아에서 왔으니 걸린 게 아니냐고 뭐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아시아에서 유행 중인 병이라니 그게 뭐지 싶으면서도 불현듯 사스가 떠올랐다.


나는 태어난 이래로 이유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그것도 매우 아파 본 적이 처음이라 무서웠다.


심각한 거냐니 며칠 앓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고 아파서 걷지도 못하는 건 왜 그런 거냐고, 위험한 거 아니냐고 했더니 그것 역시도 전형적인 그리페 증상으로 근육통 때문이라고 했다.


근육통... 근육통 때문이었구나.


약을 처방해 준다는데 나는 약을 사러 갈 힘도 없으니 병원에서 바로 받아갈 만한 약으로 달라고 했더니 약국에 연락해 집으로 배달을 해준다고 했다.


아기도 전염되냐고 했더니 전염된다기에 빈이도 진찰해달라고 했다. 소아과에 갈 힘도 없다고...


청진기랑 체온계로 간단히 진료를 보더니 빈이도 미열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도 다른 가족에게 맡기고 혼자서 쉬라는 의사의 말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싱글맘이고 내 가족은 모두 한국에 있어요."



눈이 동그래진 의사는 나와 아이를 번갈아 한 번씩 보더니 이내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는, 정말 힘들겠네.. 했다.


아까 접수원이 새 환자는 받지 않는다던데 정말이냐고, 이 병원이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운데 정말 나는 다시 오면 안 되냐고 물으니, 의사는 아니라고 괜찮다며 다시 진료받으러 오라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했다.








병원에서 나와 바로 앞 찻길을 건너 한 건물만 돌아 지나오면 우리 집이었지만 나는 그 거리를 걸어오는데도 여러 번 쉬어야 했다.


사람이 왜 기절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유모차를 다시 지하실에 내려놓고, 가방을 드는데 가방이 천근만근이었다. 애는 안아달라고 난리인데 나는 정말 도저히 아이를 안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3층까지 혼자 올라가면 젤리 곰을 주겠다고 겨우 달랬더니 아이는 울면서 울면서 계단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어제 열이 끓었으니 저도 몸이 안 좋아 안아달라는 거였을 텐데... 내가 죽겠는데 도저히 아이를 안고 3층을 오를 수는 없었다.


내 한 몸 끌고 올라가는 것도 휘청휘청 너무나 힘겨운데...


아이가 울며 울며 3층까지 계단을 기어올라가는데 나도 울며 울며, 우는 아이를 달래며 난간을 잡고 기어 올라갔다.


집에 들어서니 집안꼴은 전쟁터가 따로 없는데 아이는 전날 저녁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먹은 게 없으니 뭐라도 해먹여야 했다.


기저귀 가방에 든 도시락을 꺼내 식탁에 앉혀 숟가락 쥐어 줄 힘도 없어 바나나 하나를 줬다. 아이가 까먹는 걸 보고 나는 침대에 쓰러졌다.


온몸이 부들부들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이불속 발 밑에 뜨거운 핫팩을 넣었는데도 밤새 발이 시려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서 방 안에 온도를 올렸더니, 온몸에서 땀이 나 옷이 축축한데도 추워서 몸이 부들거렸다. 집이 추운 게 아니라 오한이었다.


그 와중에 기침은 점점 더 심해지고 머리는 또 얼마나 깨지게 아프던지.


나는 그동안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식은땀을 흘리며 정신을 잃은 채 아파서 침대에 누워있고, 남자 주인공이 그런 여주 집에 찾아가 무작정 들쳐업고 병원으로 뛰는 장면이 당연히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아파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장면은 정말 오글거리고 꼴불견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꼭 티브이 속 그 장면처럼 거의 기절 직전의 상태로 온 몸을 덜덜 떨며 눈도 못 뜨고 누워있었다.


정말 그런 병이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6년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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