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한없이 작고 초라한 나

싱글맘 본격 신세한탄 3/3

by 뿌리와 날개

복지국가의 맹점이다.


내가 무능력해도 사회안전망이 견고해서 절대 나락으로 곤두박질 칠 일도 없고, 최소한 사람답게 살만큼 보장도 된다.


하지만 복지국가의 납세의무를 감당하고도 남을 만큼 돈 벌 능력이 있지 않는 한은 어설프게 사회보장제도를 박차고 나와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적은 시간 일하고 돈을 억수로 많이 벌만큼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내가 그런 여자였다면 애당초 이렇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다른 평범한 싱글맘들도 마찬가지이다.


특출 난 능력이 있는 여자라 해도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결국 뭔가는 희생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 돈과 승진을 얻으면 아이가 희생된다.


맞벌이 부부만 돼도 일하는 엄마가 아이를 케어하는 게 쉽지 않은데 아빠의 빈자리를 메우며 돈까지 벌어야 하는 싱글맘이란......


처음 이렇게 되고 나서 직장을 얻어볼까 했을 때 나는 정말 무시무시한 말을 들었었다.


독일에 20년 넘게 살았지만 한국 대학, 그것도 이공계도 아니고 인문대 졸업장으로 독일회사에 번듯하게 취직한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애 딸린 여자가 그게 가능할 것 같냐고..


그런 사람 있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질 테니 데려와 보라며 꿈 깨라고.


그 당시에는 나도 그 말이 너무 막말처럼 보였다. 무섭기도 했고, 또 설마 그렇게까지야 싶었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 비약은 아닐까 했지만 지난 반년 간 봐온 봐로는 구구절절 진실이었다.


누구보다 내가 처한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저런 말을 하신 것이었다. 저 말은 그 뒤로 나의 블로그를 통해 독일 각지에서 연락을 주신 많은 분들을 통해 검증이 되었다.


한국에서 경력이 있든 없든, 독일어를 얼마나 잘하든 아직까지 내가 들은 예로는 예외가 없었다.


독일회사에 취직하려면 기본 조건은, 회사에 취직이 잘되는 과독일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야 한다.








1,500유로로 살만하다는 그녀는 남편이 있었다. 맞벌이 부부라면 여자가 1,500을 번다는 것은 집안 경제에 한몫 제대로 하는 것이다.


유치원 선생님도 먹고살만하다는 그분은 독어가 유창하고 집과 차가 있었고, 남편과 혼인기간이 길었던 만큼 재산분할도 받았다.


그나마 나와 비슷한 처지였던 그분은 다른 건 다 제치고라도 독어와 영어가 완벽했다. 그리고 차와 영주권이 있었다. 그래서 그분은 투잡을 하신다......


내가 아는 또 다른 대단한 싱글맘도 투잡으로 집을 샀다. 그분은 1,000유로 이상 근무를 일부러 안 한다고 한다. 그리고 최저생계비에서 부족한 200유로를 늘 정부 몫으로 남겨둔다고..


그러면 자기도 능력껏 돈을 벌면서 오전 근무만 하니 아이가 집에 오면 함께 보낼 시간도 많고, 정부에서 일부 보조를 받으면 각종 복지혜택이 살아나기 때문에 마이너스가 나지는 않는다고.


그리고 사적으로 다단계 같은 걸 했다고 한다. 돈 버는 수완이 좋으신..


내가 언급한 사람들 중에는 한국인도, 외국인도 있지만 어쨌든 그녀들의 공통점은 문제없는 독일어와 영주권이었다.


독일에서 싱글맘으로 직업을 얻어 살아남으신 분들 중에 독어를 못하고 영주권이 없는 사람은 아직 못 봤다.


그런데 나는 독어도 잘 못하고, 영주권도 없다.


나는 독일 남자와 이혼하면서 재산분할도 못 받았고, 혼인 3년 뒤면 당연히 받는 그 흔해빠진 영주권조차도 못 받았다.


보통 애가 있으면 당연히 애 키우는 엄마가 살던 집에 눌러앉고 남편이 집을 얻어 나간가는 것조차 나는 반대로 내가 집을 나와 죽을 똥 살 똥 이 집을 얻었다.


나는.. 독일 남자랑 결혼을 해서 공짜로 받은 게 하나도 없다. 영주권은커녕 힘들 때 팔아먹을 결혼반지도 하나 없이 새끼 하나 데리고 맨 몸으로 쫓겨났으니......


나는 그에게서 단 하나, 내 아들을 얻었다. 그것도 내가 열 달 품어 내 배 아파서 낳은 내 자식이니 그에게서 공으로 얻은 것은 정말로 단 하나도 없는 것이다.


독일 땅에서 사는 거? 이걸 굳이 덕이라고 친다면 남편 덕이 아니라 자식 덕이거니와 그 덕 볼 자식마저 없었더라면 나는 미련 없는 독일 땅, 진작에 떴다.








독일 남자에게 이렇게 기가 막히게 이혼당하고 블로그를 연 것도 내가 최초인 것 같은데, 영주권도 없이, 이 모자라는 독일어로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내가 최초가 되어야 할까..


될 수가 있기는 한 걸까...?


누군가 이미 있다면.. 부디 연락 좀 주세요. 정말......








돌아가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회사에 이력서라도 돌려볼까 싶다.


하지만 중문과 졸업한 지 4년에 중국어 실력은 이미 독일어에 추월당한 지 오래인 어설픈 나를 뽑아준다 한들 비즈니스 과목 없이 순수 문학과 중국어를 전공한 나를 뽑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면접에서 중국 출장 가능하냐는 질문 한마디면 나는 바로 탈락이다. 일반 기업체가 직업교육으로 일하는 것보다 돈을 많이 주는 만큼 당연히 근무조건도 더 얄짤없다.


안 그래도 어린애 딸린 싱글맘은 결근, 조퇴가 잦아 독일에서도 대놓고 말만 안 할 뿐 이력서 중에서 추려내 일단 맨 밑자리로 밀어 넣는다는데 거기다 대고 면접에서 이미 4시 칼퇴, 출장 불가, 맙소사...


게다가 애 방학 때는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사회는, 자본은 냉혹하다.








그래서 요 며칠 마음고생 중이다.


미래에 대한, 생계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것을 압도한다. 매일 같이 이런 생각하면 숨이 막혀 못 산다. 걱정으로 온몸이 쪼그라드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4개월 전부터 일부러 이 생각을 안 했다. 그러다가 다시 슬슬.. 생각들이 나를 잠식했다.


열심히만 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열심히는 기본이고 돈 잘 벌 능력까지 있어야 한다니. 그 능력을 제대로 못 갖추면 일을 하는 대신 평생 복지혜택이나 받아먹으며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니. 정말 쇼킹하다......


나는 자존심이 세지도 않고, 남들 부러워도 잘 안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기초생활수급자로 평생을 사는 건 자존심이 너무너무 상한다.


비참하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일을 해서 마이너스를 낼 수는 더더욱 없다. 내 자존심 상하는 것 빼고는 아직까지는 현실적으로 독일 땅에서 복지혜택 받으며 사는 게, 한국땅에서 빈이는 아빠 없는 혼혈아라고 편견과 무시를 받으며 자라고 나는 주말도 없이 죽어라 일해서 앞가림하고 사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외롭고 힘들지만 그래도 독일에 남아서 버텨보려고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나.


부족하고 많이 해줄 수 없는 엄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두 가지, 한독 이중언어 구사력과 소득에 관계없이 공평하게 받을 수 있는 훌륭한 공교육이 있으니.








만약 내가, 돈을 버는 것보다 안 버는 게 이득인 상황에 놓이는 날이 온다면 나는 자식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독일에 남아 한심한 잉여인간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게 될까 아니면 그 비참함을 못 견디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까.


독일에서의 비참함은 내가 마음속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에서 느낄 비참함은 당장 귀로 들리고, 눈으로 보이는 것들일 것이다.


실질적 이득을 놓고 본다면 독일에 남는 것이 옳겠지만 그것은 명예살인과도 같다. 비참하니까.


하지만 정말 현실로 닥친다면...... 능력도 없는 주제에 체면 차린다고 자식 앞날을 망치는 것은 아닐지...... 하......


이런 생각들이 끝없이 가슴속에서 회오리치기 시작하니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슬퍼져 엄마와 전화통을 붙잡고 꺼이꺼이 울었다.


어쩌다 내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솔직히... 버텨낼 자신도 없고, 능력도 없고, 혼자 감당해내기 너무 버겁다.


엄마는 아이가 이렇게 예쁜데 슬퍼 말고 힘내라 했지만, 정말 나는 아이 때문에 여기까지나마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너무나 예쁘고 소중해서... 그래서 버텼다.








아이가 예뻐서 더 슬프다.


너무너무 예쁜 아이인데, 나처럼 가진 것 없고 못난 엄마에게 와서 고생문이 훤한 것 같아 가엾고 한없이 미안하다.


작고 초라한 엄마라 가슴이 아프다.


좋은 부모 있으면 보내고 싶다는 말... 정신 나간 소리인 줄로만 알고 살았는데, 이미 그런 상황에 처해 본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에휴..


구질구질해서 이런 내 속마음 얘기까지는 정말 쓰고 싶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맨날 팔자 좋은 년 마냥 좋은 얘기만 쓰는 것도 웃기고......


한편으로는 입 다물고 조용히 살지 어쩌자고 이런 블로그를 시작해서 내가 독일 사회 최하층민 입네 하고 만천하에 공개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계란말이를 한 번도 성공해 본 적이 없는데, 엄마랑 찔찔 짜며 통화를 하는 와중에 성공을 했다.


여러 가지 요리를 한 번에 하는 게 아직 어려운데 나는 오늘 꺼이꺼이 울며 토마토 홍합탕까지 맛있게 만들었다. 참나...


맛있다고 옴족옴족 입에 넣어 먹는 내 새끼를 보니 예쁘고도 아려서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가 꾹 참았다. 앞으로도 울 일이 쌔고 쌨을 테지만 아이 한테만큼은 강한 엄마이고 싶다.


먹고살 길이 막막했던 어느 날 엄마가 눈물로 말아 성공한 계란말이를 네 입에 넣어주며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는 이 말을.. 언젠가 웃으며 얘기할 날이 올 수 있을까...








아무리 힘을 내보려고 해도 힘이 나지 않는 그런 날이 있다.


작아지지 않으려고, 당당해지려고 안간힘을 써도 쪼그라드는 그런 날이 있다.


백지장 위에 샤프심으로 콕 찍어놓은 점 마냥...


나는 지금이 그렇다.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6년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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