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나 아줌마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빈이와 오늘 장례식에 다녀왔다.
내 레몬차를 좋아하던 가족이라 크리스마스 선물로 큰 병 가득 담아뒀었는데, 갑자기 어머님이 아프시다며 나중에 보자기에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장례식장까지 가져가게 되었다.
요한나 아줌마는 작년 10월, 우리 엄마가 독일에 와 있었을 때 우리를 두고 돌아가야 하는 엄마 마음이 편치 않을 거라는 내 말을 기억했다가 엄마가 돌아가기 전 우리를 초대했었다.
엄마가 돌아가고도 요한나 아줌마랑 슈테판 아저씨, 그들의 스무 살 난 딸 레베카 그리고 할머니 젤다까지 우리를 잘 돌봐줄 테니 마음의 짐을 덜고 가시라며...
함께 커피를 마시며 빈이 재롱을 보고 웃었던 게 불과 넉 달 전인데... 크리스마스 전에 갑자기 쓰러지신 할머니는 1월 중순부터 병원에 입원하셔서 결국 2월 초에 돌아가셨다...
Meine Mutter ist heute morgen immer eingeschlafen.
내 어머니가 오늘 아침 영원히 잠드셨어.
라는 표현의 문자를 받고 나도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우체통에도 편지가 와 있었다.
장례식에 초대하는 편지였다.
독일에서의 장례식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내 이름으로 제대로 초대받아 가는 것은 처음이다.
장례식은 오늘 오전 11시에 시작돼서 나는 수업을 조금 일찍 마치고 꽃집에 가서 꽃을 산 뒤 아이를 놀이방에서 픽업해 바로 장례식장으로 갔다.
독일의 장례는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모이는 장소는 묘지공원이었다. 한국에서는 일반 동네 골목길을 걸어 다니며 공동묘지를 볼 일이 없지만, 여기서는 동 마다 하나씩 있는 것처럼 흔하다.
주택가 사이에 큰 공원이 하나씩 있는데 흔히 공동묘지 하면 떠올리는 볼록한 봉분 대신 다양한 모양의 비석들이 반듯반듯하게 세워져 있고 저마다 화려하고 예쁜 꽃들로 치장이 되어 있어서 얼핏 보기에는 아주 예쁜 꽃밭 같다.
외진 곳도 아니고 정말 주택가 사이에 산책공원처럼 만들어 놓아서 처음에는 멋모르고 유모차 밀고 산책도 갔었다.
묘지공원 입구에 작은 예배당이 있었고, 입구에 부의록이 있었는데 한국처럼 조의금을 내지는 않고 이름만 적었다.
유모차를 밀고 조용히 들어가니 사람들이 앉아있는 의자마다 찬송가 책이 놓여있었고, 연주자가 음악이 끊이지 않도록 계속 오르간으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엄숙하고도 아름다운 멜로디에, 어깨를 들썩이며 슬퍼하는 요한나 아줌마의 가족들까지 보니 나 역시도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났다.
시간이 되니 목사님이 들어오셨고, 예배를 보는 동안 아이가 칭얼거려 나는 밖에 나와서 기다렸다. 30분쯤 지나자 6명의 남자들이 관을 들고 나왔고, 요한나 아줌마와 가족들, 그리고 조문객들이 줄 지어 따라 나왔다.
아줌마는 밖에 서있던 나를 보자마자 내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쏟았고, 나는 어서 다가가 아줌마를 꽉 안아주었다. 그리고 함께 울었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부모님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조문객들은 관을 따라 이동했고, 정해진 자리에 관이 들어가자 한 명씩 차례로 관 위에 꽃을 던졌다.
그리고 묵념을 한 뒤 발 앞에 놓인 흙 상자에서 한 삽씩 흙을 퍼 관 위로 뿌렸다. 그런 뒤 가족들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이것이 독일 장례의 전통인가 보다.
첫 번째 장례식에서도 보았다.
그때는 던질 꽃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각자 가져온 꽃을 던졌다.
요한나 아줌마의 가족은 빨간 장미를 한 송이씩 던졌다. 독일에서는 색깔도, 꽃의 종류도 상관이 없단다.
꽃집에서도 나에게 흰 장미를 추천했지만 나는 장미가 영 그래서 국화와 가장 비슷하게 생긴 Mumis라는 흰 꽃을 샀는데... 내 차례가 되어 꽃을 던지고 흙을 뿌리며 관을 들여다보니 각양각색의 꽃들로 화려했다.
89세까지 사셨고, 고통스럽지 않게 돌아가셨으며 무엇보다 한평생 예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다 가셨으니 우리 식으로 치자면 호상이다.
좋은 곳으로 가시길 진심으로 빌었다.
장례가 끝나고 다 같이 예약된 카페로 가서 커피와 함께 간단한 빵을 먹었다.
아침부터 진눈깨비가 거센 바람과 함께 내린 데다 아주 추운 날씨였다. 그래서 요한나 아줌마는 조문객들에게 수프도 시켜주었다.
Hochzeitsuppe라는 이름이었는데 육개장이랑 맛이 아주 흡사해서 맛있었다. 그 뒤부터는 한국의 장례식장 식사 풍경처럼 다들 담소를 나누고, 호상인만큼 종종 웃음도 띄우고 했다.
아줌마는 나와 빈이가 장례식에 와줘서 너무 기쁘고 고맙다고 했다.
우리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따뜻하게 안아주신 고마운 분들인데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내가 더 감사한 일이다.
천천히 눈이 녹고 곧 봄이 오듯이 그들의 슬픔도 조금씩 나아지기를 바란다.
날씨가 안 좋아서 그랬는지 집에 돌아와 빈이는 갑자기 열이 끓기 시작했다. 39.8도까지 올라가서는 내내 울길래 놀이수업도 안 가고 해열제를 먹여 재웠다.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끌어안고 나도 한숨 잤는데 일어나니 나 역시도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아플수록 잘 먹어야 하니 서둘러 밥을 해서 소고기 가지볶음으로 간단하게 저녁을 해 먹고, 감기 뚝 떨어지라고 빈이랑 목욕을 했다.
물장구를 치며 해맑게 노는 빈이를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진눈깨비.. 매서운 날씨.. 장례식..
빈이를 보고 귀엽다고 너무 귀엽다고 웃던 그 할머니..
슬퍼하던 요한나 아줌마..
땅 속에 놓인 관과 그 위에 아름다웠던 꽃들..
그리고 따뜻한 수프와 달콤한 케이크..
울다가 웃다가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
한국에 있는 보고 싶은 나의 가족들..
불안한 미래.. 두려움.. 막막한 현실..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나와.. 물장구를 치며 노는 하빈이...
그러다 문득 "내가 만일"이라는 노래가 듣고 싶어 졌다. 내 마음을 꼭 담은 한 편의 시와 같은 이 노래를 빈이에게 불러주었다.
세상의 그 무엇이라도 빈이를 위해 되어주고 싶은 내 맘..
지금 여기 내 곁에 존재만으로도 기쁨인 나의 아가..
이렇게 소중하고도 예쁜 너를 사랑하는 데는 아무런 능력도, 조건도 필요하지 않아 다행이다.
옴짝달싹하는 모든 게 다 돈인 세상에서 가진 것 없는 엄마가 너를 사랑하는 일만큼은 유일하게 돈이 들지 않으니 참말 다행이다.
한 때 그 어떤 뜨거운 사랑을 했을지라도 마음 돌아선 옛사랑을 되새기며 그래도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하면 미쳤다, 속 없다 비웃음을 들을 텐데..
남녀 간의 사랑이란 언제나 '네가 나를 사랑하는 한'인 사랑이라.. 고작 그런 것일 뿐이라..
무엇이 진짜 사랑인지, 진정한 사랑인지 당최 모르겠는 지금 나에게..
그래도 너를 사랑하는 일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허락되어서 다행이다.
너를 끝없이, 원 없이
사랑해도 되어서
참말,
다행이다.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6년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