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 남자의 정체

by 뿌리와 날개

용기를 내 그 대학 동기에게 메시지를 보내보기로 했다. 이름이 필립이었던가…?



입학 초기에 수업이 겹치는 사람이면 대부분 번호를 교환했더니 대학교 연락처 그룹에는 모르는 사람 투성이다.



그나마 남자가 적은 과라 다행이었다. 쓱쓱 훑어내리니 프로필에 그 친구 사진이 보인다.



다시 봐도 비슷하다. 그런데, 이름이 다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의 이름은 필립이었는데 생판 다른 이름이 적혀있다.



살짝 고민하다가 프로필에 적힌 이름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 내가 얼마 전에 너랑 비슷한 사람을 봤어. 그래서 네가 떠올라서 적어 봐. 잘 지내니?”


“안녕! 아… 그럼 역시 너 맞는구나. 나도 긴가민가했어. 우리 본 지 엄청 오래됐잖아. 넌 잘 지내? 마침 메시지 잘 보냈네. 난 지금 일광욕 중이야.”


“뭐? 그럼 그게 너였어?”


“응, 맞아. **마트에서.”


“어, 거기. 신기하네!”


“그러게. 하하.”


“내가 사람을 잘 헷갈려. 인사 못한 거 미안해. 근데 너랑 닮았다고 생각은 했어.”


“나도 가끔 그래. 그래도 메시지 보낸 거 잘했어. 어떻게 지내?”


“그냥 그래. 썩 좋은 건 아니지만 뭐... 그런대로... 넌?”


“난 뭐 불평할 게 없지. 잘 지내. 넌 썩 좋진 않다니 유감이다. 내가 뭐 도와줄 게 있을까?”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


“그래. 괜찮아. 그런데 넌 그 마트 근처에 살아?”


“재밌네. 나도 그거 물어보려고 했는데. 응. 거기 내가 항상 다니는 마트야. 너도 근처에 사니?”


“응.”


“그래? 근데 왜 난 너 한 번도 못 봤지?”


“난 **길에 살아….”


“오, 우리 집은 **길!”


“와, 진짜 가깝네.”


“그러게 말이야. 이 정도면 우리 앞으로 자주 볼 수도 있겠는데?”


“그러게. 언제 한번 보자.”


“너 지금 몇 번째 학기 다니는 중이야?”


“네 번째.”


“아…. 내가 지금 온라인 수강 신청을 해야 하는데 사실 문제가 많거든. 넌 어떻게 돼가고 있어?”


“나도 몰라. 시간표 맞춰서 수강 신청 제대로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다 바뀌어서 지금 엉망진창이야.”


“이런…. 나만 난리 난 거 아니었구나.”


“전부 온라인으로 바뀌고 취소됐다고 메일 왔어.”


“너 요즘 사람들 많이 만나고 다니니? 나는 아이랑 집에서만 지낸 지 꽤 됐거든.”


“나도 일하는 거 말고는 만나는 사람 없어. 같이 사는 애들 정도.”


“그렇구나. 내일 저녁에 내가 시간이 비어서 만날까 싶어서 한번 물어본 거야. 나는 코로나 터지고서 버스랑 전철도 안 타거든….”


“응. 그럼 내일 볼까? 너도 괜찮다면.”


“그럴까? 그럼 나 수강신청 좀 도와줄래?”


“그래!”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막 아비 (Abitur/ 대학 입학자격시험)를 마치고 배꼽티와 망사스타킹을 신고 파티를 찾아다니는 열여덟, 열아홉의 독일 학생들, 자유와 마리화나를 사랑하는 눈 풀린 히피들과 울트라 아우라를 풍기는 시커먼 고스족들 사이에서 방황하던 내가 소속되기로 결정한 그룹은 30-50대 엄마 대학생들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공부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데다 학사일정 관리도 꼼꼼하고, 똑똑하고, 책임감 있고, 게다가 성실하기까지 한 그녀들 틈에 섞인 것은 정말 신의 한 수였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다들 아이와 집에 묶여 있느라 함께 공부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나는 그들로부터 더 이상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집안에 고립된 채로 아이 보육 문제와 조석으로 변하는 학사일정에 매일 어쩔 줄 몰라하던 차였다.



그런데 마트에서 마주친 그 남자가 나를 구해줄 줄이야!



그랬구나, 너의 정체는 바로 내 구세주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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