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모난 돌이 정 맞는 법

by 뿌리와 날개

작가들은 독선적이고 아집 있다는 세간의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다. 독선은 혼자만이 옳다고 믿고 행동하는 성향을 말하며 아집이란,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자기만을 내세우는 것이다.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쓸 때마다 나는 왜 이런 선입견이 작가들에게 생기게 되었는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적어도 자신의 신념과 하는 일이 옳다고 믿지 않고서는 만인 앞에서 감히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본래 글을 쓴다는 일 자체가 그런 것이다. 발가벗은 들판에 서서 나를 모두 까발리는 일.


당연하다.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글을 쓰는 일이며, 생각에는 그 사람의 살아온 삶과 배움의 정도는 물론 타고난 인품과 성격에 현재의 삶까지 반영이 되니 말이다. 누군가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자기 생각을 숨기고 쓴 글 조차도 알 만한 사람들은 작가의 그런 글 밖의 의도까지 읽어내지 않는가.


이러쿵저러쿵 말 많은 세상,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인 세상에서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를 뾰족하게 드러내는 일이며 정 맞기 딱 좋다.


인파에 묻혀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한 명에, 그 마저도 익명성에 가려지지만 이름 내걸고 당당하게 글을 쓰는 사람은 수많은 손가락을 마주하고 서야 하니, 그것이 어찌 만만한 일이겠는가.


그런 일을 해내려면 적어도 어느 정도 독선과 아집이 있어야 한다. 어쩌면 그런 것이 있는 사람들만 남아 글을 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굳이 정 맞을 줄 알면서도 기어코 자기를 드러내고 할 말은 해야 하는 사람들.


현실의 상황이 어떻듯 지금까지 나의 브런치에서 그랬던 것처럼 계속해서 입을 다물고 있었더라면 굳이 미움받지도 않겠지만, 오늘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 내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생각과 글이 흥미롭고 궁금한 사람들이 모이는 이곳이 바로 나의 브런치이기 때문이다.


누가 어떤 생각을 하고 댓글을 달든, 도에 지나친 악플만 아니라면 그것도 상관없다. 그들도 그들의 사연과 삶과 경험이 있으며 그런 말을 하는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했듯이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독자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아 쌓아 온 힘으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내 글을 감히 올릴 용기를 낸다.


브런치의 다른 작가들은 어떤 생각으로 글을 쓰는 것일까?







코로나가 처음 퍼지던 2020년 봄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혼란스럽고 두렵던 시간들….


독일에서의 미적미적한 대응, 어설픈 대책을 보며 화끈하게, 일사불란하게 일을 착착 진행해가는 야무진 K- 방역이 은근히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때는 두세 달만 지나면 가라앉을 줄 알았으니까.


마스크 하나 쓰는 것도 불편해하며 난감해하는 독일인들을 보며,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불편해도 조금만 참고 협조하면 하루라도 더 빨리 정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는데 도대체 자유가 뭐길래 전염병이 도는데도 저렇게 혼자만 생각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스웨덴에서 집단면역을 시도한다며 마스크 의무를 없앴을 때, 사실 많이 놀랐다. 코로나 같은 전염병은 특히 노약자에게 위험한데 집단면역을 하겠다는 것은 그런 기저질환 환자나 노인들을 포기하겠다는 말이 아닌가.


일본에서는 코로나가 퍼지던 초반 몇 달간 코로나 검사 자체를 하지 않아 감염률이 거의 없다는 기사가 꾸준히 떴다. 일본에 사는 친구는 코로나가 없는 듯 생활한다고 했고, 스웨덴에 사는 친구는 코로나 검사고, 격리고 없이 기차로 독일과 스웨덴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했다.


나는 일본이나 스웨덴에서 정말 큰일이 날거라 생각했다. 몇 달 뒤면 떼죽음을 당했다는 기사가 나겠구나….


당시 한국의 여론은 유럽이 선진국이라는 환상에서 깨라며, 저렇게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이니 흑사병이 돌지 않았냐는 등의 말까지 나왔었다. 크게 공감했다. 코로나를 대하는 나의 태도와 주변 독일인들의 태도가 초반에는 정말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코로나 판도가 금세 달라질 거라 예상했다. 저렇게까지 훌륭한 방역이라면 정말 잡힐 줄 알았다.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꼼꼼하고 야무지던 한국의 방역이 정말 방역에 의미가 있었고, 80%가 넘는 예방접종률에 부스터 샷까지 착실하게 맞아가는 현 상황이 앞으로도 의미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백신 접종 부작용이나 사망자, 백신 패스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논외로 하겠다.








내가 쓰는 글의 어느 부분에 방역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깎아내리고, 무시하는 부분이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나는 방역 업무를 하는 사람들을 비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업무를 진행하는 사람들에게 상부의 지시를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행사할 권한이 없다는 인과관계 정도는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나 역시 그 자리에서 말하는 대신 질병청에 연락을 했다. 질병청은 일선에서 뛰는 사람들보다 피로도가 덜해서 그런지 훨씬 상대하기 나았다.


코로나에 대한 대응방식과 지금까지의 결과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 것이 방역을 열심히 한 사람들의 노고를 폄하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도 신기하다. 본인이 직접적 영향을 받는 방역조치에 대해서 글로써 의견을 피력하고 실효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일이 왜 방역업무 종사자 개인에게 정신적으로 무례한 일이 된단 말인가.


PCR 검사 방식을 양국에서 체험하고, 그 비교를 통해 한국 사람들이 받고 있는 PCR 검사가 필요 이상으로 사람들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는 개인의 생각을 적었다. 내가 의료종사자가 아닌 것은 나도 알고 독자들도 안다.


다른 PCR 검사를 받는 한국인들은 얼마나 만족하며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받지 않을 방법이 있다거나, 더 편안하게 받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을 때 과연 지금의 PCR 검사를 구태여 받겠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안이 없으니 그냥 받는 것이고, 내가 그냥 받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상당히 위험하다.


독일은 PCR 검사가 유료다. 올 초까지는 50유로였는데 이제 60유로로 올랐다. 약국에서 하는 일반 검사는 작년 가을에 잠깐 유로로 전환되었다가 다시 무료로 바뀌었다. PCR 검사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한국에서는 무료라 깜짝 놀랐다.


독일에서는 60유로나 되는 돈을 내야 하는데 왜 한국에서는 이것이 무료로 가능할까? 독일에서는 그렇게까지 고통스럽게 깊숙이 밀어 넣지 않아도 검사가 가능하고 결과도 한국 정부에서 인정하고 있다. 그러니 한국 영토로 인정되는 국적기 비행기 탑승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는 그런 검사방식을 고수하는 것일까?


PCR 검사를 하는 데 있어서 독일은 돈으로 핸디캡을 주고, 한국은 검사방식의 불편함으로 핸디캡을 주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핸디캡을 주는 데에는 나름의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양상이 이해되지 않을 때에는 행간을 집어보아야 한다. 말이 안 되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지금 벌어지는 엉뚱한 상황이 말이 되도록 논리를 찾는 것이 더 적절하다.


정부 입장에서는 특별한 업무 인력과 예산, 시간이 들고, 시민의 입장에서는 개개인의 불편과 고통, 그 이후의 위험(뇌척수액 누출, 비강 상처를 통한 세균 감염 및 그로 인한 질병 유발)을 감수해야만 하는 PCR 검사는 자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런 면에서 지금 논의되고 있는 PCR 대상자 고위험군 우선선발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코로나 관련 언급을 최소화해왔던 이유는 현실에서의 피로감이 컸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아도 지난 2년 간 현실에서의 생활은 온통 코로나로 가득했다.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해도, 결국 대화의 흐름은 코로나로 흘렀다.


불안하고, 슬퍼하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서로 편을 갈라 다투고, 반목하고, 상처 주고….


한국의 PCR 검사소에서 내가 목도한 풍경은 내 마음을 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본인의 업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검사를 실시해야 했을까? 지난 2년 사이 실랑이며, 몸싸움이며, 욕설도 때로는 오고 갔을 것이다.


나와 눈 마주치기를 거부하는 그들을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항에서부터 선발 진료소까지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한 가지 톤으로,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채 오로지 기계적 친절만 남아 안내해주는 것을 보며 이러한 현실이 낯설고도 슬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기다란 면봉을 들고 서서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예능프로그램에서 희화화된 말투로 성대모사에 쓰이는 그 특유의 간호사 말투로 검사를 진행한 검사자. 그녀는 다른 사람들처럼 깔끔하고 얌전하게 검사를 받지 못하는 우리에게 짜증을 내는 대신 일말의 감정도 없이 방역수칙에 위배가 된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아이가 울든, 면봉이 비상식적으로 길든, 정해진 규칙에 따라 명쾌하게 본인의 업무를 이행하는 그녀를 보며 그 진료소에서 나는 “더 리더”라는 영화에 나온 케이트 윈슬렛을 떠올렸다.


나치 부역자로 일을 할 당시 왜 불이 난 건물에서 유대인 수용자들이 죽어갈 때 도망쳐 살 수 있도록 문을 따주지 않았냐는 판사의 물음에 그녀는 아주 당황하며 말했다. 범죄자들을 도망가게 둘 수는 없지 않으냐고. 자신은 그저 성실하게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나라면 어땠을까? 과연 그때 감히 수용소의 문을 열 수 있었을까?


나치 독재가 법이고, 도덕이던 시기. 지금이야 그 시대, 그 나라도 아니니 인간의 목숨이 더 중하다고 쉽게 말하겠지만, 내가 정말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의학적으로, 유전적으로, 우생학적으로 불순하다고 검증되었던 유대인들, 그래서 다수의 독일인들을 위해 말살시켜야 한다고 했던 그 정책의 보호 아래 밥을 벌어먹고사는 사람이었더라면 과연 그 상황에서 모든 책임을 지고, 오로지 도덕적 가치판단에 의해 수용자들을 풀어줄 수 있었을까?


코로나가 다 지나가고 나면, 그래서 어느 정도 역사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알게 될 것이다. 과연 코로나가 앗아간 것이 사람의 건강과 생명뿐이었는지….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무수히 앗아간 것이 있다면 그것이 정말 코로나뿐이었는지도….








우리 인간에게는 시기심이라는 것이 있다. 나만 힘들기는 억울하다. 그러니 내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면 다 같이 못 빠져나가는 것이 나는 못 빠져나가도 남들은 빠져나갈 수 있는 것보다 나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불안하면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믿고 싶은 것이다. 믿고 의지하고 따르면, 지금의 이 사태가 가라앉을 거라는.


그리고 또 우리 인간은 내가 믿는 것이 진실이기를 바란다. 때로는 그 마음이 너무 커져서 내가 믿고 의지하는 이것에 의구심이 들 때 조차도 되짚어보기보다는 믿던 것을 계속해서 믿고 싶어 진다. 그리고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불안을 야기하는 사람을 쳐내고 싶어 한다. 두렵기 때문이다.


편을 갈라 적을 만드는 것은 한 집단의 기틀을 흔들고 유리한 여론을 유도하는 기본적인 방법이자, 핵심을 호도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기도 하다. 접종자의 불만은 미접종자에게, 미감염자의 불만은 감염자에게, 그리고 방역의무를 충실하게 지키고 있는 내국인의 불만은 해외 입국자에게 향하도록 하는 것.


우리 법체계는 헌법 - 법률 - 명령 - 조례 -규칙 순서로 내려온다. 그리고 하위법은 상위법을 위반할 수 없다. 현재 우리에게 내려온 방역 강화 조치 행정명령은 말 그대로 명령이며, 법이 아니다.


이렇게 엄격하게 실행되는 지금의 조치들 조차 헌법과 법률보다 낮은 단계인 것이다. 코로나 법률이 제정되는 날이 온다 하더라도 그 법률 역시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없다.


서구권의 사람들이 우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들도 내적으로 의견이 분분하며, 한국 사람들만큼 공동체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에서도 자신의 건강과 몸의 권리를 지키고자 불이익을 감수하며 소신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듯이.


다만, 그들은 수많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왔던, 뜨거운 물에 서서히 삶아지는지도 모르고 가만히 있다가 삶아져 죽은 개구리들을 잊지 않을 뿐이다.


우리가 민주적이라 믿는 현재 세상의 이 시스템은 200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마저도 우리가 나서서 지키지 않으면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는 경계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다.


코로나 사태라는 명목 하에 모든 것이 통제 하에 놓이는 것도 모자라 강압적인 조치가 이루어지는 데에도 최소한의 불만을 제기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가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지금, 전 세계가 진정 원하는 것은 편을 갈라 싸우고, 반목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건강하고 자연스럽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최상위 목적 역시 방역지침 준수가 아니라 건강한 일상으로의 회복이며, 코로나 방역수칙이 헌법 위에, 헌법이 없다 한들 우리 인간 위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미지 출처>

https://lemondays.de/allgemein/ein-eigenes-buch-schreib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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