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뿌리와날개 May 15. 2021

Mädchenname, 처녀 적 이름

전입신고도 하고, 내 이름으로 된 계좌도 만들다

2015.06.25.


25 목요일에는 G 암트에 가서 전입신고 했다.

내가 남편의 집에서 나와 따로 살기 시작했다는 걸 정부에 알리는 첫 단계였다.

번호표 뽑고 1시간 넘게 기다려 간단하게 전입신고를 하고 나니, 아래 사진과 같은 서류를 받았다.



서류 내용을 적자면,



Für  현주소

Tag des Einzugs  이사날짜

Bisherige Wohnung  구 주소


Folgende Person(en) wurde(n) am 25.06.2015 angemeldet


내 이름

아들 이름


대략 이러했다.






나와 아기 이름으로 전입신고가  서류를 보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아기와 내가 이젠 정말 독립된 길을 가기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에.



현주소는 여성 보호소가 안전가옥이기 때문에 주소를 노출할 수 없게 되어있다.

암트는 정부기관이라 서류에 실제 주소를 그대로 쓰지만 컴퓨터 열람을 할 때 빼고는 내 주소를 알 수 없다고 한다.



물론 남편이 암트로 전화를 걸어 내가 어디 살고 있냐고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G에게 나중에 우리가  집을 얻어 이사를 하면 그때도 이렇게 내가 전입신고를 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럼 그 새 주소도 남편 모르게 할 수 있냐고 했더니 요청하면 그렇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해달라고 했고, 며칠 뒤 허락한다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참, 전입신고하는 걸 Ummelden이라고 한다는 걸 이 날 배웠다.






2015.06.26.


일사천리였다.

집을 나온 지 4일 만에 드디어 내 계좌를 만들었다.

일을 진행해가는 매 순간이 뿌듯하고 기뻤지만, 지금까지 일 중에 가장 기뻤던 일이 아마 내 이름으로 된 계좌를 만든 일이 아닐까 싶다.



남편과 결혼하면서 유럽으로 넘어온 지난 3년 간 내가 가장 원했던 일 중 하나가 내 명의의 계좌를 갖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늘 계좌 만드는 일을 피했는데, 가장 큰 이유가 독일에서는 계좌를 만들면 매달 10유로씩 계좌 유지비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환율로 10 유로면 만 5천 원인데 열 달이면 15만 원 아닌가.



수입도 없는 전업주부 주제에 집에 가만히 앉아서 15만 원을 까먹을 수는 없지 싶어 그냥 그렇게 지냈던 3년이었다.

오늘에서야 알았지만 10유로가 아니라 5유로 몇 센트라고 했다. 남편은 나에게 이런 사소한 일도 거짓말을 해서 겁을 주고 못하게 막았던 것이다.







이제는 나도 양육수당이며 생활비를 받고 경제활동을 직접 해야 했기 때문에 내 명의의 계좌 개설은 당연한 일이었고, 당장 남편 앞으로 지급 금지시킨 양육수당을 내 앞으로 재신청해서 받는 일이 급선무였다.



시내에서  일을 보고 은행 위치를 알려주며 지나치려는 G에게 오늘 당장 만들겠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며 나를 돌아봤다.



원래 G나중에 같이 가자고 했지만 어차피 하루라도 빨리 계좌를 열어야 각종 수당을 지급받을  있는데 굳이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까지 기다리고 싶지도 않았고,  앞으로는 내가 스스로 하고 살아야   일이니까 두렵더라도 용기를 내기로  것이다.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지만, 내가 보호소 안전가옥에서 지내다 보니 거주지가 노출되면 안 되는 이유로, 서류작성이 좀 까다로운 듯 보였다.







멧혠나메(Mädchenname). 처녀 적 이름. 내 한국성을 여기서는 그렇게 불렀다.

독일에서는 남편 성을 쓰는데 내 여권에는 한국성이 쓰여있으니 이들에게는 헷갈렸던 거지.



결국 중요한 건 내 신분증, 여권에 쓰인 이름이라며 한국성으로 계좌를 열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시간쯤 걸려서 결국 계좌를 열었다.

핀넘버는 일주일 뒤에, 카드는 이주일 뒤에 은행으로 직접 찾으러 오라고 했다.

 주소지가 비밀인 이유로.



그렇게 원하던 내 명의의 계좌를 나는, 이혼하면서 내 이름과 내 한국성으로 갖게 되었다.

이제 나는 내 이름으로 된 계좌로 독일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뿌듯했다.



아래는 빨간 바탕에 S자 위에 찍힌 점이 상징인 독일 슈파르카쎄 바인더와 현금카드.

어딜 가든 저 새빨간 색이 보이면 슈파르카쎄다.

통장은 없고 서류만 한가득해서 바인더에 넣어준다.

서류 첫 장에 콘토눔머와 계좌에 관한 기타 개인정보가 다 적혀있다. 나머지는 아마 세부사항에 대한 설명인 듯..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이전 04화 보호소 생활의 시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