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뿌리와날개 May 15. 2021

엄마 밥이 그리워진다는 것은

누군들 안 그럴까.



자식이 먹고 싶다고 해서 차려주는 엄마의 밥상은 당연히 최고일 거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먹고 자란 게 엄마의 밥이니까.



어느 식당에 가든, 누가 해준 요리를 먹든,

맵다, 짜다, 싱겁다, 달다, 밍밍하다, 감칠맛이 없다 등등..

모든 기준은 우리 엄마가 해준 밥 맛이다.



하지만 그런 엄마 밥에 우리는 매번 감탄을 하며 먹지는 않는다. 그건 바로 엄마 밥의 가장 큰 특징이 "당연함"이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나에게 밥을 차려주는 일은 내가 기억도 안나는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런 밥이 내 입맛에 꼭 맞는 것 또한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엄마의 밥을 먹으면서 엄청나게 감탄을 할 이유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내가 엄마의 밥을 먹으면서 정말 맛있다고 느끼고 칭찬을 하게 된 시점을 생각해보면 처음으로 집을 떠나 유학을 갔다 왔을 때였다.



그리고 그 뒤로 빈번히 집을 떠나 여러 곳을 다니면서 가끔 집에 찾아와야 먹게 되는 엄마 밥이 특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혼을 해서 외국에 살면서 세 끼 밥을 내 손으로 지어먹게 되면서 나는 엄마의 밥이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부스스 일어나 고픈 배를 잡고 주방으로 걸어갔는데 밥통을 열어도 밥이 없었다.

냉장고를 뒤져도 먹을 게 없었다.



내가 쌀을 안치지 않으면 밥이 없고, 내가 요리를 해서 냉장고에 차곡차곡 쟁여두지 않으면 밑반찬도 없다.

얼큰한 찌개도, 뜨끈한 국물도 내 손으로 차려먹지 않으면 없다.



갓 결혼한 새댁이 되어서 그 당연한 사실과 처음 대면하게 되었을 때의 당혹감이란...



주린 배를 잡고 그제야 주섬주섬 요리를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25년 간 내게 차려준 밥상이 얼마나 수고로운 일이었고, 감사했는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그런데 그 당연함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엄마의 밥이 당연한 그 시기는 어찌 보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근심, 걱정이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엄마의 밥이 특별하게 느껴진다는 뜻은 어떤 의미로든 무언가의 부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부재가, 내가 집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는 고향의 부재일 수도 있고,

몸이 아파 홀로 누워있다면 건강의 부재일 수도 있고,

아니면 밥을 차려줄 엄마라는 존재 자체가 부재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이더라도 엄마의 밥이 그리워진다는 것은 대부분 뭔가 서글픈 현실을 동반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에게  당연한 밥상을 차려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이가   있는  오래도록 철없이, 고마운 줄도 모르고 당연하게 내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을 먹는 아이이기를 바란다.



우리 이가  밥이 그리워지는 그런 일이 되도록이면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중에도 언제든 엄마 밥이 그리우면 찾아와 밥 달라고 할 수 있도록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



그러려면 우리 엄마한테 먼저 장 담그는 법, 김치 담그는 법, 각종 내가 좋아하는 요리들을 하는 방법을 어서 배워놔야 한다.



사랑은 정말 내리사랑인가 보다.

엄마의 밥상 얘기를 하면서도 나는 내 자식이 먼저 생각난다.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랑 제육볶음이 먹고 싶다.

엄마가 구워준 삼겹살이랑 버섯도 먹고 싶다.



뒹굴뒹굴 침대에 배 깔고 누워 티브이 보며 친구랑 문자로 수다 떨다가 밥때 되면 나와 먹으라고 부르던...

밥이 식던 말던, 알았다고, 이것만 하고 간다고 건성건성 대답하던...

하나 특별할 것 없던 그...



엄마가 해준 밥이 먹고 싶다.





*표지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검색어 "Traurige Frau"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이전 02화 아이가 버거워지기 시작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