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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May 15. 2021

3일 만에 살아 돌아온 내 폰

2015.07.28. 화요일

엄마도 친구들도 갑자기 나와 연락이 안 돼서 다들 걱정할 텐데...

특히 엄마가 걱정이 많을 텐데...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다시 나갈 채비를 했다.



내가 보호소에서 나갈 채비를 한다는 것은,


일단 7시에 일어나 아이 기저귀를 갈고, 냉장고에서 식사 거리를 챙겨 들고 아이와 1층 공동부엌으로 내려와 아침식사를 해 먹고, 설거지를 마치고, 다시 방으로 올라가 내 몸을 씻고, 아이를 씻기고, 아이 옷을 입히고, 그 사이 아이가 어지른 방을 치워가며 기저귀 가방을 꾸리고, 우리 방과 우리가 사는 2층 화장실 두 개와 변기 세 개를 닦고, 복도 바닥과 화장실, 그리고 계단까지 물청소를 마친 뒤 마지막으로 나도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다시 짐과 아기를 들고 1층으로 내려와 버스 시간에 맞춰 유모차를 밀고 문 밖을 나선다는 뜻이다.   



오늘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고 했다.



오늘은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었다.

비가 많이 왔지만 그래도 어제보다는 나았다.



뭐 곧 있으면 새 폰도 생기니까.







대리점에 도착하니 새로운 직원이 오픈 준비를 하며 오픈까지 아직 20분이 남았으니 기다리랜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픈 8분 전에 웬 노부부가 순서를 가로채고 대리점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나도 냉큼 따라 들어갔다.

이미 순서를 가로채고 그 노부부가 볼 일을 보고 있었다.



독일 사람들 융통성 없고 시간 개념 칼 같다며.. 누가 그랬어..!!

오픈 시간 딱 맞춰 손님 받을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가 보다.

억울했다.



앞으로는 나도 한국서 살던 대로 융통성 있게 행동하련다.

아무튼, 그들의 볼일은 생각보다 길어졌고 나는 제일 먼저 와서 두 번째 손님으로 20분을 더 기다린 뒤 볼 일을 볼 수 있었다.



뭐 그래도.. 곧 있으면 새 폰이 생기니까.









그런데...

계약이 성사되지 못했단다.......



응? 이게 무슨 말이지?



왜냐고 물었더니 자기들도 모른단다.

프뤼풍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유가 뭐냐니까 모른단다.

그러고는 대리점 직원은 가라, 마라, 기다려라 말도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그냥 가만히 서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어제 나는 분명히 계약서 4군데에 서명을 했고, 내 은행카드와 신분증도 그들에게 내어줬었다.



핸드폰 개통은 그럼 영영 안 되는 건지, 내 정보가 모두 기입되고 내 서명이 된 서류는 그럼 어떻게 되는 거고, 나는 이제 뭘 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또 그들이 말하는 프뤼풍이 뭔지도 모르겠는데 그게 통과가 안돼서 계약이 안된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한국에서는 그냥 대리점 가서 계약하고 계좌이체 통장번호만 알려주면 끝이었는데 여기는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니 답답했다.



혹시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러냐니까 꼭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꼬치꼬치 되물으니 어쩌면 크레딧 때문일 수 있다고 애매한 답변을 내놓았다.



크레딧 때문이라는 말은 또 뭐지ㅡㅡ?

이 나라에서 내 이름으로 계좌를 만든 지 한 달 밖에 안 됐는데 내가 신용이 불량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독일에서 산 기간이 너무 짧아서 그럴 수도 있고, 아무튼 자기도 뭐라 대답할 수 없다고 했다.



내가 내 명의로 핸드폰 개통도 하나 못하는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 이유를 담당자도 알 수 없다는 게 더 황당했다.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지..ㅡㅡ?



알아듣지도 못하겠는 독일어 폭탄 속에서 뒤에 손님들이 줄을 쫙 서있는 와중에, 그래도 내 신상명세와 서명이 들어간 서류는 챙겨야겠기에 그거라도 내어달랬더니 직원은 슈마이쎈 어쩌고 했다.



슈마이쎈.. 뭔가 버린다는 뜻으로 보호소 여자들 틈에서 얼핏 들었던 것 같다.

아마도 계약이 성사되지 않은 서류는 폐기 처분한다는 뜻 같았다.

정말이냐고 몇 번이고 되물어 체크를 한 뒤에 나는 대리점 문을 나섰다.








하... 힘이 쫙 빠졌다.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핸드폰 없이 벌써 3일째였다.

정말 울고 싶었다.



그때 마침, 갑자기 카톡이 마구마구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고 보니 대리점 바로 옆에 스타벅스가 보였다.

어제는 스타벅스를 지나도 와이파이가 안 터졌는데, 핸드폰이 맛이 가긴 정말 갔나 보다.



아무튼 오늘은 와이파이가 터지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스타벅스에 들어가 커피를 하나 시키고 앉았다.

와이파이가 연결되고 나는 내 폰 상태를 모두에게 알렸다.



엄마와도 통화를 했다. ㅜㅜ

그리고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마침 아이 산책 중이었는데 내가 핸드폰 때문에 고생 중이라니 이곳으로 와준다고 했다.



어머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보다.



카페에 앉아 밀린 연락을 받으며 친구를 기다렸다.

10분쯤  그녀는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밀고, 애완견 레트리버 데리고 카페로 왔다.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그녀는  핸드폰으로 알디톡 잔고를 확인하더니 전에 충전한 10유로 중에 43센트가 남았다며 재충전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충전한 지 이틀이 채 안됐었고, 특히 인터넷은 전혀 쓰지도 못했는데 그 10유로가 어디로 간 거냐고 물었다.



그녀도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

나는 선불폰 사용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정식으로 통신사 계약을 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쌀쌀한 날씨 속에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내가 핸드폰 계약을 하려다 실패한 일을 얘기했더니 그녀는, 그렇게 비싼 약정을 할 뻔했냐며 20유로 선에서도 얼마든지 계약할 수 있다고 했다.



역시 현지 사정에 어두운 외국인이었나 보다, 나는...










그녀가 찾아낸 다른 대리점에 들어가 그녀의 도움을 받아 물어보니 정말 20유로 선에서 내가 원하는 계약을   있었다.


 

물론 핸드폰 없이.

그런데 그녀는 그것도 비싸다며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알디톡이 정말 저렴하고 괜찮은데, 그렇게 못 쓰겠냐고 묻길래 너무 어렵다고 했다.



처음 알디톡을 샀을 때는 10유로로  달을 버티면서 엄청 빠른 인터넷도 일주일 넘게 펑펑 썼고, 통화도 서너 시간은 사용했던  같은데,  혼자서 충전한 10유로는 이틀 만에 없어진 것도 이유를 모르겠고, 사용법이 하나도 이해가  된다고 했더니 그녀는  핸드폰 사용내역을 차근차근 물어봤다.



그 이틀간 내가 한 거라고는...

한국인 아주머니와 한 시간 가량 통화를 한 게 다였다.



친구는 그게 원인인  같다고 했다.

그녀가 나에게 처음 세팅해준 알디톡은  달짜리로,  기간 내에 충전을 하면 다시 세팅할 필요 없이 그대로 충전이 되어 그냥 사용하면 되는 거라고 한다.



세팅이라는 말은, 같은 돈을 충전해도 인터넷 사용량을 더 많게 할 수도 있고 통화나 SMS 사용량을 많게 할 수도 있는데, 내 경우에는 독일 지역 내 통화나 SMS는 엄청 저렴하고, 빠른 인터넷 사용을 위주로 해놨었다.



그래서 기한 내에 충전을 하면 내 10유로는 7월 한 달처럼 다시 인터넷 사용량으로 천천히 빠져나가고 그 외 통화나 SMS는 거의 돈이 들어가지 않고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걸  몰라서   기한이 끝난 뒤에 충전을 했고, 그로 인해 그녀가 해준 세팅은 리셋이 되는 바람에  10유로가   시간 통화로  날아가버린 것이다.

어려웠지만 어쨌든 이유는 알아냈다.



그녀, 내가 도와줄 테니 한번  알디톡을 써보고 이번에도  안되면 그때 가서 정식 계약을 알아보자고 했다.

나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차피 나는 계약이 성사되지도 않는, 이유도 불분명한 신용불량자 ㅡㅡ;;










우리는 알디로 향했고, 나는 버스를 타고 가자고 했다.

 근처 산책을 나왔다가 갑자기 나를 만나러 와준 거라 친구는 버스카드가 없다며 걸어가자고 했다.



버스를 타도 서너 정거장은 되는 거리다. 독일은 정거장이 짧으니 한국으로 치면 두 정거장쯤 되는 거리.

비바람이 몰아쳐서 우산을 들고 걷기도 힘들었고 추웠다.



게다가 둘 다 한 손은 유모차, 한 손은 우산이 아닌가.

불쌍한 그 집 애완견  생고생인가...



얇은  재킷을 걸치고 목이 휑하게 드러난  유모차에 앉아 비바람을 맞고 있는 그녀의 딸이 너무 마음에 걸렸다.

그녀는 괜찮다고 했다. ㅜㅜ



이미 집에서 카페까지 족히 20분은 걸었을 텐데, 카페에서 다시 알디 마트까지 20...

그리고 그들이 집으로 돌아가려면 40분은 다시 걸어야겠지.



나는 고마운 건 둘째치고 너무나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돌아갈 때는  교통카드를  테니 타고 가라고 했지만 그녀는 괜찮다고 했다.

어떻게 남 일에 이렇게 열심히 도와줄 수가 있는지...









나는   친구와 덜덜 떨어가며 차가운 비바람을 뚫고 알디까지 가는 길에 다시 한번 내가 그동안 얼마나 이기적으로 살아왔는지 다시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요즘 들어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매 순간 나를 돌아본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돕고 살았는지...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에 얼마나 귀를 기울였는지...



그럴 때마다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어진다.



어쩌면 시련은 부족한 나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늘이 주는 감사한 기회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그런 생각 끝에 마트에 도착해 나는 다시 알디 카드를 샀고, 이번에는 5기가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19.99유로짜리를 샀다.



5유로는 음성통화로, 나머지 14.99유로는 인터넷 몫으로 세팅을 다시 하고 날짜도 기억했다.

다음 달에는 기한 내에 미리 충전을 해서 번거롭게 다시 세팅할 필요 없이 자동으로 되도록.



그녀 언제든지 모르겠으면  물어보라며 환하게 웃었다.

너무나 고마웠다.



3일 만에 살아 돌아온 내 폰..

그리고  폰을 살려준 그녀.



핸드폰 계약이 성사되지 못한 게 차라리 잘 된 것 같다.

어쨌든 매달 50유로씩 나갈 뻔한 돈이 굳었으니.

그리고 이 친구 말대로 알디앱을 깔았더니 훨씬 간편하게 충전을   있었다.



계약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저렴하고 약정에 묶일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알디톡을 많이 쓴다고 한다.

이 친구 그래서 알디톡을 쓴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알디톡끼리는 음성통화가 무료라고 한다.

나도 앞으로 그냥 정식으로 계약하지 말고 이렇게 계속 알디톡을 사용할까 싶다.



아무튼 큰 산을 또 하나 넘은 화요일이었다.






*표지 이미지 출처 : Google 이미지 검색, 검색어 "Traurige Frau"

*이 글은 현재 사건이 아니라 2015-2018년 사이에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겨온 것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 원본과 사진은 아래 블로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blog.naver.com/frechd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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