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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Oct 31. 2024

네모난 파란 불과 동그란 파란 불의 차이

장롱면허 9년 차

어린 시절 두 발자전거를 배워둔 덕에 나는 자전거를 탈 줄 알았다. 내게 자전거를 선물해 준 친구도 그래서, 내가 자전거를 탈 수 있으니 자전거라는 물리적 수단만 갖춰지면 바로 아이와 기동력 있게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중고 자전거를 깨끗이 닦고 예쁜 리본까지 달아 선물하며 기뻐하는 내 모습을 떠올렸을 그녀의 기대 가득한 얼굴에 나는 난처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차도를 달리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자전거를 끌고 도로로 나가라니!


자신 없어하는 나에게 그녀는 지금 당장 안장에 올라 자전거를 타보라고 했다. 자전거 위로 살짝 뛰어올라 중심을 잡으니 20여 년의 세월을 훌쩍 건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추억 놀이도 잠깐!


그녀는 내가 자전거를 잘 타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뒷자리에 두 돌 된 우리 아들을 앉혀 안전벨트와 양 발의 고정장치를 채운 뒤 나에게 다시 타보라고 했다. 경찰다운 꼼꼼한 일처리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녀와 달리 쭈뼛쭈뼛 다가가 조심스레 자전거 핸들을 넘겨받는데 글쎄, 맙소사! 자전거가 크게 휘청했다.


15킬로그램의 아이가 뒷자리에 타면서 무게중심이 완전히 뒷바퀴에 쏠린 자전거는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자전거가 아니었다. 게다가 유아용 안장의 장착을 고려한 성인용 자전거가 아니어서였을까? 올라타지 않은 상태에서 핸들을 허술하게 잡으니 뒤에 앉은 아이 무게 때문에 여차하면 앞바퀴가 들릴 지경이었다.


자전거를 끌고 걷는데 자전거가 좌우로 비틀거렸다. 내 몸은 자전거 왼쪽에 있으되 오른쪽으로 두 팔을 뻗어 내 몸무게의 3분의 1 정도 되는 무게가 뒷바퀴에 쏠린 두 발자전거를 쓰러지지 않도록 핸들을 꽉 잡고 앞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새로운 균형감각을 익혀야 했다.








간신히 균형을 맞추며 자전거를 끌고 있는 나에게 그녀는 이제 올라 타보라고 했지만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자전거에 오를 수 없었다. 내 키에 비해 안장이 높아 두 발을 땅에 디딘 채로는 안정적인 탑승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이 없이 가벼운 자전거일 때는 살짝 뛰어올라 잠깐 비틀거리고 중심을 잡으면 그만이었지만 이제 아이 때문에 무게 중심이 달라진 자전거는 그렇게 타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며 쓰러지기 십상이었다. 그렇다고 자전거를 최대한 기울여 안장에 엉덩이를 걸치고 타자니 또다시 아이 무게 때문에 자전거가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키가 작은 나를 배려해 청소년용 자전거를 구입해 안장을 최대한 낮췄는데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타고 내리는 것이 불편한 것을 보고 친구는 내심 놀라는 눈치였다. 자전거가 너무 높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유아용 안장을 장착할 수 있는 자전거 중 가장 작은 사이즈이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옵션이 없다고 했다.


키가 작다는 이유로 얼굴을 붉혀본 건 사춘기를 지난 이래로 참말 오랜만이었다. 이제 나는 죽으나 사나 이 자전거를 타야만 했다.


다른 묘안이 없다면
정면돌파뿐이다!



자전거를 중심에 맞게 안정적으로 잡은 상태에서 오른발로 페달을 밟아 바퀴들이 굴러가게 만든 뒤 사뿐히 엉덩이를 걸치고 양 발로 페달을 밟아 가속하는 정공법을 익혀야 했다.


두 돌 짜리 아이를 뒤에 태운 채 자전거 연습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어린 자식이 있는 사람은 자전거를 배우더라도 절대로 넘어져서는 안 되었다. 아이의 15킬로그램은 내 몸에 익어있던 무게 중심을 헝클어놓고, 탈 줄 안다고 생각했던 자전거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누군가에게는 쌀 한 포대도 되지 않는 그 15킬로그램이 나에게는 싱글맘으로, 외국인으로 낯선 땅에서 부지런히 삶을 재건하는 와중에도 단 한순간도 내려놓을 수 없었던 거대한 가장의 무게, 그 자체였다.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독일에서는 자전거와 차가 함께 달린다. 차도에서 함께 자동차의 신호대기를 받고, 깜빡이 대신 왼팔로 수신호를 하며 자동차와 함께 좌회전을 하는 자전거는 이미 자동차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아이를 앉히고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자 곧바로 도로로 나왔다. 그때까지 보행자 신호등 외의 다른 신호등에 신경 써 본 적이 없던 나는 심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초록 불이면 가고, 빨간 불이면 멈추는 것은 동일했지만, 네모난 불과 동그란 불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차도 맨 오른쪽 자전거 도로에 서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릴 때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초록 불이 끝나기 전에 사거리를 지나 다시 안전하게 자전거 도로 안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길은 가파랐고, 아이를 태운 자전거는 천근만근이었다. 그럴 때면 자전거에서 폴짝 뛰어내려 바로 옆 인도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곤 했다.


이혼하고 가장 고통스러웠던 첫 1년을 막 넘긴 참이었다.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한 채 24시간 아이를 끼고 살았으니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 체력도 이미 바닥난 지 오래였다. 악으로, 깡으로 어찌어찌 일상은 버텨내도 자전거까지 탈 수 있는 체력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내 등 뒤에서 해맑게 세상 구경 하는 우리 아기 옆으로 LKW(물류차, 화물차)가 확 지나갈 때면 손가락 끝이 찌릿찌릿하며 순간 땀으로 손바닥이 미끌미끌해졌다.


자전거 도로의 폭은 1미터였지만 내게는 10cm 남짓한 외줄처럼 보였다. 이렇게 좁은 길로 도대체 어떻게 다들 자전거를 타고 다닌단 말인가! 내 옆을 지나는 집채만 한 차들의 속도감을 느낄 때마다 심장은 터질 듯이 요동쳤고 두려움에 눈물이 차올랐다. 정말이지 이런 짓거리, 때려치우고 싶었다!


알루미늄합금으로 무장한 채 수시로 나와 아이의 목숨을 위협하는 독일의 차들…. 반면 그들의 차도와 내 자전거 도로 사이를 구분하는 선은 너무나도 하찮았다. 나는 나약했고, 우리는 언제든 그 괴물들로부터 우리의 공간을, 생명을 침범당할 수 있었다.








20번만 타자!

딱 20번만!



아기를 키우며 일관성 있는 양육을 하기 위해 내가 고안해 낸 방법이다. 10번은 익숙해지기에 너무 적고, 30번은 시도하기에 너무 많으니까! 이 방법으로 나는 아기가 모유를 먹던 신생아 시절 2주 만에 공갈젖꼭지를 물리는 쾌거를 이루었고, 70일 차에는 아기에게 7시간 통잠을 선물했다.


'래, 20번만 타자, 20번만.' 처음 네댓 번까지는 힘들지만 어찌어찌 열 번까지만 오면 그다음부터는 그럭저럭 할 만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일이 그러했으니, 자전거 역시 예외는 아니리라.








도로를 달리는 차들과 나란히 달리는 것에 대한 공포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충분히 자전거를 잘 타고 있었지만, 두 달이 넘어가도록 내 몸은 두려움을 떨치지 못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읽었던 글귀를 떠올렸다.


스키를 타며
나무에 부딪히지 않으려면

나무가 아니라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보라!


쌩쌩 지나는 차들 때문에 심장이 내려앉을 때마다 심호흡을 하며 자전거 도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른 차들이 얼마나 빨리 달리건 개의치 않고, 오로지 내 앞에 뚫린 자전거 도로에만 집중했다.


어느 순간 1미터 남짓 좁디좁은 자전거 도로가 넓어지며 시야 안에 가득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코 앞만 보고 겨우 페달을 밟았는데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저 끝까지 일직선으로 뻥 뚫린 자전거 도로를 처음 발견한 순간이었다.


한번 넓어진 도로를 경험하고 나니 그때부터는 더 이상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았다. 그렇게 배운 자전거로 눈 오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같이 1.7킬로미터 떨어진 아이의 유치원 등하원을 시키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자동차 운전을 위한 트레이닝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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