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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와날개 Nov 07. 2024

서른세 번째 생일, 독일의 아우토반을 달리다!

장롱면허 12년 차

장롱 면허 10년이 넘어가니, 어느 순간부터 운전은 나에게 닿을 수 없는 꿈이 되어 버렸다. 


나는 왜 이렇게
운전이 힘든 걸까?


바쁜 일상을 살면서도 언제나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한 가지 질문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도대체 왜 운전을 할 수 없는 걸까....








일단 나는 운전이 미숙했다. 차체 감각은 물론, 자동차를 조작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감각도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물과 부딪히지 않도록 운전 내내 신경 써야 하는 자체가 매우 피곤했다.


복잡한 교통체계 속에서 신호를 보는 것 또한 어려웠다. 사방팔방 달려있는 신호등 틈에서 나에게 해당되는 등을 찾아 바로바로 지시를 따르는 것이 힘겨웠다.


길 찾는 능력이 발달하지 못한 것도 큰 몫을 했다. 걸어 다니면서도 헤매는 길을, 유연한 도로 상황에 맞춰 차를 몰며 찾아가야 한다니 꿈같은 일이었다.


주차도 당연히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차 안에 앉은 채로 다른 차들과 부딪히지 않게 미세한 각도를 계산해 가며 빈 공간으로 들어간단 말인가! 


무엇보다 나는 돌발상황이 많은 도로에서 실시간으로 빠른 판단을 내리고, 행동해야 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꼈다. 나의 순간적인 판단이 큰 사고로 이어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


생각이 여기까지 뻗으면 나는 이내 머릿속에서 잡았던 운전대를 내려놓아야만 했다. 내 몸이 조금 더 고생하고 말지, 그런 끔찍한 도박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전에 대한 갈망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운전할 줄 모르는 나를 당최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나를 어른으로 인정하는 세 가지 관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나 자신을 어른이라고 마음 놓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장, 영어 그리고 운전!


그 당시 데이트하던 남자에게 이 이야기를 했을 때, 그는 말했다. 


너는 자유를 원하는구나!


아하, 그랬구나! 그 순간 나에 관한 모든 퍼즐이 맞춰줬다.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세 가지는 결국 하나, 자유였구나! 


경제적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

그리고
이동의 자유!



그를 통해 나는 비로소 내가 원하던 것의 본질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자유로 수렴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운전은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남자의 한 마디에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와 운전대를 바꿔 잡았다. 


아직도 수동 기어 자동차가 대부분인 독일에서 특이하게도 오토를 모는 남자를 만난 것도 모자라 나에게 운전을 가르쳐주겠다니! 하늘이 주신 기회였다.


장롱면허 12년 차에 나는 그렇게 틈나는 대로 그에게 다시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11, 22, 33과 같이 모든 자리가 같은 숫자를 독일에서는 "Schnapszahl"이라고 부르며 특별하게 여긴다. 이런 수가 행운을 불러온다는 속설과 함께 이 숫자와 관련된 기념일 날 슈납스를 마시던 풍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의 서른세(33) 번째 생일날, 나는 결심했다. 내가 절대 해낼 수 없을 거라고 믿는 일 한 가지를 해내보자! 그것은 바로 운전이었다. 


내가 살던 독일 북서부에서부터 네덜란드까지는 대략 두 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무려 절반 가까운 거리를 내가 운전했다. 


비록 조수석에 앉은 그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지시를 받았지만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운전대를 잡았고, 무사히 운전을 해냈다는 사실이었니까! 


속도 무제한이라는 독일의 아우토반을 달린 일은 가히 내 생애 최고의 경험 중 하나였다. 지금도 살다가 새로운 일 앞에 문득 두려워지면 그날의 성공을 떠올린다. 


서른세 번째 슈납스짤 생일날 나는 그렇게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을 했고,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네덜란드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서른세 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팬케이크를 먹었다.


왼쪽은 당시 직접 운전해서 갔던 네덜란드의 어느 마을. 오른쪽은 그 곳에서 가장 유명한 팬케이크 집에서 하빈이 모습.


그리고 그 남자와 헤어진 뒤에도 운전을 향한 나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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